국화꽃 든 시민 뒤 유가족 ‘오열’… 줄이은 애도행렬 [이태원 비극 이어지는 추모]

노유정 2022. 10. 31.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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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속 합동분향소·장례식장
오전 일찍부터 조문객들 몰려
갑작스러운 비보에 유족 ‘실신’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었는데”
시민들 입모아 황망한 마음 전해
尹대통령·최태원 회장 등도 조문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0월 31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헌화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시민들과 외국인들이 10월 31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희생자 애도를 위해 기다리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열 분 정도 심폐소생술(CPR)을 했는데 그중 한 분만 살아났어요."

10월 31일 오후 2시20분께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녹사평역광장 합동분향소를 찾은 40대 김모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사건 당시를 설명했다. 김씨는 "이미 사망한 줄도 모르고 대로변으로 옮겨 계속 CPR을 했다"며 "너무 살리고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지나 있던 게 정말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 이틀이 지났지만 합동분향소와 빈소를 찾은 피해자의 지인과 가족들, 시민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 있는 모습이었다. 일부 시민은 조문 후 쓰러지기도 했으며 유족들은 "어떡해"라는 말을 하며 오열하기도 했다.

■분향소에서 조문객 쓰러지기도

이날 오전 10시30분께 마련된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광장 합동분향소 앞에는 오전부터 20여명의 조문객이 몰렸다. 친구를 잃은 김모씨(20)는 빈소까지 가지 못하고 녹사평역광장 분향소를 찾았다. 사고 당일 김씨는 친구와 연락이 되지 않자 걱정 속에 밤을 지새우다 다음날 서울시에 연락해 사망자 명단에 있는 친구를 확인했다고 했다. 김씨는 "(친구의 죽음이 믿기지 않아) 어이가 없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보다 앞선 오전 9시30분께 검은 옷차림의 한 여성 조문객이 쓰러지기도 했다. 조문객은 병맥주와 빨간 장미 한 송이, 흰 꽃다발을 놓고 절을 한 뒤 몇 걸음 걸어 나가다가 그대로 쓰러졌다. 사고 피해자의 지인이라는 그는 의식을 잃지는 않았으나 인근 골목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몸을 추스른 뒤 겨우 분향소를 떠났다.

충격과 슬픔을 느낀 일반 시민들도 헌화하며 떠난 이들의 넋을 기렸다. 시민 김모씨(28)는 "처참하고 죄책감을 느껴 분향소를 찾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뉴스를 보면서 '옆에서 사람이 죽는데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이 나쁘다'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정작 나도 사고 당시 집에서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있었고, 내 주변에는 아무도 죽지 않았으니까 평화롭게 보냈다"고 밝혔다. 이어 "나 자신도 그 사고를 모욕한 가해자가 된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서울시청 앞 합동분향소를 찾은 안모씨(33)는 "친구의 친구가 이번 사고로 사망했다"며 "상경해 서울에 자기 집을 마련하려고 월급의 상당수를 저축하면서 열심히 살았던 사람, 그냥 일반적인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들었다. 남 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아이고 어떡해" 유족들 오열

사고 직후 14명의 피해자가 이송됐던 동국대학교 일산병원 장례식장은 이날 오후 3시 기준 4명이 안치돼 있다.

이 중 사망자 2명의 빈소가 차려진 가운데 이날 오전 10시 A씨(22) 유족은 입관식을 했다. 참석한 유족들은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연신 흐느꼈다. 일부 유족은 주변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이동했다.

한편 이동환 고양시장은 이날 오전 피해자들의 빈소를 찾았지만 유족들의 거부로 조문하지 못한 채 돌아갔다.

이날 오후부터는 조문을 하려는 시민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인근에 거주하는 한 중년 여성은 국화꽃을 들고 장례식장을 방문했다.

동국대병원 측은 장례식장 지하 1층에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추모공간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병원 관계자는 "병원 내 직원 1000여명 및 시민들이 추모할 수 있도록 조성했다"고 전했다.

한편 동국대병원 내 빈소가 마련된 이들을 제외한 2명의 희생자는 아직 장례절차가 결정되지 않았다. 이 중 한 명은 한국과 오스트리아 이중국적자로 이날 오후 3시50분께 오스트리아에 거주하는 유족이 장례식장을 방문했다. 다른 한 명은 호주 국적으로 빈소 마련 여부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尹 대통령, 애도…최태원 SK 회장 등 기업인 조문

이날 분향소에는 윤석열 대통령 조문에 이어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 기업인들이 방문해 슬픔을 나눴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이날 오전 서울시청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에서 헌화와 묵념을 하면서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윤 대통령은 현장에서 메시지를 내지 않고 조용히 조문을 마쳤다. 전날 대국민담화에선 오는 5일까지를 국가애도기간으로 지정하고 서울 용산구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한 바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자격으로 서울 중구 서울시청 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최 회장은 조문 뒤 방명록에 "생명을 잃은 분들을 추모하고 부상을 당한 모든 분들의 쾌유를 빕니다. 미래의 더 나은 사회를 만들도록 잊지 않고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최 회장은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대한상의도 더 좋은 사회를 만들도록 같이 노력을 하고, 사건을 잊지 않고 새로운 발판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권오갑 HD현대 회장을 비롯해 한국조선해양 가삼현 부회장, 현대오일뱅크 강달호 부회장, HD현대 정기선 사장, 현대오일뱅크 주영민 사장 등 현대중공업그룹 임원들도 같은 날 서울광장 합동분향소에서 조문했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이동근 상근부회장 등 경총 임원진과 분향소를 찾았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도 1일 합동분향소를 방문해 조문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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