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통행 없애서 이태원 참사? 루머 팩트체크 해보니
29일 밤 서울 이태원 폭 4m의 좁은 골목에서 150여명이 압사하는 참사가 벌어지자, 인터넷에서는 ‘팩트체크만 하고 싶다’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인기를 끌었다. 여기엔 ‘사고 골목에 예전에는 일방통행 통제가 있었는데, 올해는 그러한 통제를 없애서 들어가려는 사람과 나가려는 사람이 뒤섞이며 사고가 났다’는 주장이 담겼다. 문재인 대통령과 박원순 서울시장 시절 가동되던 군중 관리 시스템이, 윤석열 대통령과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 폐지되면서 참사가 났다는 주장이었다.
31일 아침, 이 주장을 방송인 김어준씨가 전파에 실어 퍼뜨렸다. 그는 참사 후 첫 라디오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는 폴리스라인을 치고 한쪽으로만 통행하게 했어요. 1㎡당 10명 이상이 못 모이게. 그 왜 일방통행 설정을 이번에 안 했을까. 그게 참 의문이거든요”.
김씨는 “작년 영상도 봤다. 연도는 정확하게 기억 안 나는데 그 분명히 일방통행이었다”며 패널에게 “기가 막히지 않으십니까”라고 했다.
‘일방통행’ 주장을 뒷받침하는 듯이 보이는 사진과 영상도 동원됐다. 이번에 사고가 난 문제의 골목 입구를 경찰이 막아선 영상, 폴리스라인을 쳐놓은 모습 등이었다.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에 확인해봤다. 용산구청 측은 “담당 과장을 통해 확인한 결과, 과거 핼러윈 때도 구청의 대응은 올해와 다르지 않았다”며 “주최자가 존재하지 않는 행사여서 구청이 직접 관리하지 않았고, 일방통행 조치를 내린 적도 없다”고 했다.
경찰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일방통행로에 대해서는 “운영한 바 없다”고 밝혔다. 폴리스라인에 대해서는 “2017년에 친 적이 있는데, 인도 위 보행자들이 찻길(이태원로)로 밀려 내려오지 말라고 친 것이지, 골목의 통행을 분산·유도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고 했다. 이어 “폴리스라인은 상황에 따라 치기도 하고 인력을 직접 배치하기도 하는데 2017년 뒤로는 친 적이 없고, 경찰 인력으로 대신해왔다”고 했다.
조선닷컴은 과거 영상 기록도 확인해봤다. 지난해 이태원 핼러윈 축제 현장을 담은 유튜브·트위터·방송뉴스 영상 10건이 대상이었다.
조선닷컴이 확인한 영상에서는 보행자가 한 방향으로만 다니는 모습이나, 그렇게 통제하는 장면을 찾을 수 없었다. 해밀튼호텔 뒤편 큰길인 ‘세계음식특화거리’는 물론이고, 이번에 사고가 난 골목을 포함한 주변 골목 어디든 마찬가지였다. 역 근처 대로변에서 찍힌 영상에서는 경찰이 서 있는 모습이 담겼으나, 시민들이 한 방향으로 이동하도록 안내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트위터에는 ‘호루라기를 불며 골목 진입을 차단하는 경찰관 트위터 영상’이 ‘과거 일방통행’의 근거로 제시됐다.
하지만 확인 결과, 이 경찰관은 ‘일방통행’과는 상관이 없었다.
작년 핼러윈 주말 당시엔 코로나 사태에 따른 야간 영업 제한이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오후 10시 이후에는 경찰관들이 호루라기를 불고 경광봉을 흔들면서 영업 제한 조치를 알리고 시민들에게 빠른 귀가를 독려했다”며 “그래도 일부 시민이 귀가하지 않고 길에서 음주를 하는 등 방역수칙을 어기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메인거리를 통제하고 술집거리 방면 진입을 막았다”고 했다.
결국 예년이든 올해든 주최자 없이 인파가 몰리는 ‘크리스마스 명동’ ‘핼러윈 이태원’ 등의 상황에 대해, 정부나 지자체가 일방통행로 운영 등과 같은 군중 관리(crowd management)를 한 적은 없었고, 사고 위험도 늘 잠복돼 있었던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핼러윈 직전 토요일 이태원 방문객이 예년 대비 폭증하면서 결국 참사가 터졌다.
서울교통공사가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 소속 이승복 시의원(국민의힘)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핼러윈 직전 토요일 오후 지하철 이태원역 하차 승객 수는 코로나 사태 직전 3년간(2017~2019년) 5만8000~6만4000명이었고, 국내에 코로나 사태가 시작된 2020년 이후론 1만7000명과 3만2000명을 각각 기록했다. 그러다가 올해는 8만1000명으로 급증했다.
정부도 이러한 상황을 어느 정도 예상, 올해는 투입 경찰 인력 숫자를 137명으로 과거 5년(연 37~90명)보다 크게 늘렸지만, 군중 관리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결국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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