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뚝이' K원전
40兆대 민간 프로젝트 수주 물꼬
한국수력원자력이 31일 폴란드 최대 민간발전사 제팍(ZEPAK), 폴란드전력공사(PGE)와 폴란드 퐁트누프 지역에 원전을 짓는 사업의향서(LOI)에 서명했다. 한국과 폴란드 정부도 이날 이 프로젝트를 지원하기로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한국이 폴란드에 최대 40조원대 원전을 수출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프로젝트는 제팍의 퐁트누프 갈탄 발전소 부지에 1.4GW 규모의 한국형 원전 2기 또는 4기를 짓는 사업이다. 한국이 단독으로 LOI에 서명했다. 폴란드 정부가 미국 웨스팅하우스에 주기로 한 원전 6기 건설 사업과는 별개 프로젝트다.
한수원과 제팍은 올해 말까지 자금 조달 방안, 총예산, 공정 기한 등을 포함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내년부터 현장 부지를 조사하기로 했다. 2026년 착공해 2033년께 원전을 가동하는 게 목표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업 규모가 최대 40조원을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사업자가 선정된 이집트 엘다바 원전 4기의 사업 규모가 총 300억달러(약 42조원)라는 점에서다.
폴란드 정부는 기존에 짓기로 한 원전 6기의 건설 파트너로는 미국 웨스팅하우스를 택했다. 하지만 퐁트누프 원전 프로젝트는 세계 최고 수준의 시공 능력과 방산 분야 협력을 감안해 한국에 맡길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야체크 사신 폴란드 부총리 겸 국유재산부 장관은 MOU 체결 후 열린 언론간담회에서 한국수력원자력이 이 사업의 본계약을 체결할 가능성을 묻자 “짧게 대답한다. 100%다”라고 말했다.
"한수원, 폴란드 원전 2~4기 수주 가능성 100%"
한국과 폴란드의 한국형 원전 건설사업 추진 계획은 폴란드가 원전 파트너로 한국과 미국을 동시에 선택한 결과로 분석된다. 폴란드는 원래 루비아토보·코팔리노 일대에 원전 6기를 짓는 사업을 추진했다. 이 사업엔 한국수력원자력과 함께 미국 웨스팅하우스, 프랑스전력공사(EDF)가 3파전을 벌였다. 폴란드는 이 사업에선 웨스팅하우스를 선택했다. 대신 제팍과 폴란드전력공사가 주도하는 민간 원전 프로젝트에선 한수원과 사업의향서를 맺으면서 미국 외 한국도 ‘원전동맹’으로 끌어들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폴란드가 자체 에너지 개발 계획에 맞춰 원전을 확보하기 위해선 한국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현실적 계산이 깔렸다. 계획된 공기와 예산을 맞추면서 원전을 짓는 한국의 시공능력은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등을 통해 입증됐기 때문이다. 한국과 폴란드의 방산 분야 협력도 고려됐다. 한국은 최근 폴란드에 국산 다연장로켓(MLRS) ‘천무’를 비롯해 K-2 전차,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를 수출하는 계약을 맺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순방 때 폴란드 정상과 만났고,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취임 후 첫 출장지로 체코와 폴란드를 찾아 원전 세일즈에 힘을 실었다.
이번 원전 프로젝트는 한국이 UAE 이후 첫 원전 수출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원전 건설을 고려하는 국가가 늘고 있는 만큼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한국 원전에 관심이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정부의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원전 수출을 확대하려면 미국과의 공조가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웨스팅하우스는 최근 APR1400이 자사 원천기술을 사용했기 때문에 수출 시 미국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미국 법원에 소송을 냈다. 한국 정부와 한수원은 웨스팅하우스의 주장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한국은 이미 원전 기술 자립에 성공했다는 점에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특별허가대상국이 아닌 체코·폴란드 등 일반허가대상국은 미국의 기술통제 대상도 아니다. 하지만 미국과 갈등을 빚으면 원전 수출을 늘리기 어렵다는 관측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소송은 한국 원전업계를 견제하려는 전략”이라며 “양국 원전 동맹이 흔들리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협력이 절실하다”고 했다.
이지훈/김소현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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