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직후 정치적 이슈 제기 정치인 SNS "아픔을 수단처럼"
"재난의 정치적 이슈화, 사회적 신뢰 깨트리는 2차 트라우마 이어져"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이태원 참사로 인한 사망 소식에도 일부 정치인들의 SNS는 논란을 생산했다. 여야 정당의 'SNS 자제령'이 내려졌지만 정치권의 논쟁이 멈추지 않고 있다. 수많은 희생자와 재난경험자가 발생한 재난을 정쟁화하거나 갈등으로 그리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참사로 인한 사망자 발표가 잇따른 30일, 정치분야 보도에선 남영희 민주연구원(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 부원장의 페이스북 발언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남 부원장이 이태원 참사의 원인을 '청와대 이전'으로 규정하면서 윤석열 대통령,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사퇴를 촉구한 내용이다. 이에 야권에서도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오자 해당 글을 삭제한 남 부위원장은, 논란의 글에 자신의 과거 웃는 사진이 사용된 기사를 지적하는 글을 다시 올렸다. 관련 논란은 31일 현재까지도 기사를 통해 재확산하고 있다.
이태원 소재지인 서울 용산구의 박희영 구청장은 참사 발생 후 SNS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하고, 상당 시간이 지나서야 입장을 밝혀 물의를 빚었다. 통상 사회적 재난이 발생한 지역의 단체장은 SNS를 통해 주요 경과, 수습 상황, 대응 계획 등을 알리는데 되레 그 창구를 닫아버린 것이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첫 입장문은 압사 관련 신고가 처음 접수된 시점(29일 오후 10시경)으로부터 약 18시간이 지난 30일 오후 4시에 나왔다. 용산구는 이후 SNS 비공개와 늦은 입장문 이유로 '사고 수습에 전념하기 위한 취지'라는 입장을 언론에 밝혔다.
사회적 참사 관련 정치인들의 SNS 논란이 처음은 아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김문수 경기도지사(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가 페이스북에 참사를 주제로 '자작시'를 써올린 일이 대표적이다. 기록적인 수도권 집중호우로 사망자가 발생했던 8월엔 박강수 마포구청장이 식사를 하며 손가락으로 브이(v) 표시를 지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게재하고는, 이를 지적하는 페이스북 이용자들과 댓글로 공방을 벌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혀를 차며 비판만 하기에는 정치인들의 SNS 메시지가 미치는 해악을 무시할 수 없다. 일상의 공간에서 최소 154명이 한 순간에 목숨을 잃은 이번 참사의 경우, 재난이 정쟁화될수록 직접적인 재난경험자들의 피해회복이 어렵고 더뎌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세월호 참사 직후 단원고 학생들의 심리치료를 맡았던 김은지 마음토닥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31일 “재난이나 트라우마는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안전한 줄 알았던 길에서, 배에서 사고가 나고, 갑자기 세상이 믿을 수 없는 위험한 곳이 되는 경험”이라고 강조했다. 그렇기에 “재난 직후 이를 정치적 이슈로 가져가는 건 그 아픔을 수단으로 삼는 것처럼 보인다. 목숨이 왔다갔다 했고, 자식을 잃은 고통보다 정치적 이슈가 중요한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세상에 대한 신뢰가 깨지는 것이 2차 트라우마”라는 지적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재난경험자들에게 사회에 대한 신뢰를 줘야 하고, 정치인들의 고민도 이 지점에 닿아야 한다. 김 원장은 “세월호 생존학생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건 봉사하고 응원하고 배려해줬던 사람들의 모습이 '다시 신뢰할 사람이 있다'는 심리적 자원이 된 것”이라며 “사회지도층 중 하나인 정치인들이 어떻게 더 공감하고 간접 피해를 줄일 수 있을지 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언론이 보도 지침(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준수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굉장히 긴 시간 보여줬다. 정치권은 이런 SNS나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데 있어서 재난경험자들의 정신건강 보호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궁금하다”고도 덧붙였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참사를 접한 국민을 향해 “(정치인들이) 마음이 전달될 수 있는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로를 주든 원인을 진단하든 어떻게 해야 한다는 제언이든, 아무리 날카로운 지적이라도 국민이 공감할 수 없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지금의 정치인들은) SNS를 잘못 활용하고 있다”며 “자신을 반짝 알리려고 활용을 하는 것인지, 피해자의 아픔을 어루만지려는 것인지, 이 현상을 바라보며 국민과 함께 호흡하는 것인지는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참사와 관련해 직·간접적인 재난경험자를 아우르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당부가 나온다. 김 원장은 “SNS에서 무분별하고 노골적인 (참사 당시) 장면들이 올라오는 상황이기에 심리적 어려움이 있던 분들은 단순한 사진 한두 장에도 정신건강이 무너질 수 있다. 특히 20대는 세월호 참사를 경험한 세대”라며 “공동체 안에서 직접 피해자와 간접 피해자를 나누고, 간접 피해자를 제대로 치유하지 않을 때 트라우마와 적개심이 서로를 비난하는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직접적인 피해자와 간접 피해자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방향이 제시될 거라고 믿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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