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지금은 같이 아파하고 애도할 때
믿을 수 없고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비통하고 안타까운 참사가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에서 발생했다. 지난 29일 밤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일대에 핼러윈을 앞두고 수만 명의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150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사망한 최악의 압사 참사다.
속보가 뜨고 말도 안 되는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방송사의 실시간 보도를 지켜보면서 SNS를 검색하고 또 검색했다. 손을 덜덜 떨며 언론브리핑을 하는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의 모습에, 그의 발표에 현실임을 자각하고 참담함이 밀려왔다. 전국민이 현장의 급박한 상황과 무섭게 늘어나는 사망자 수에 마음 졸이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을 것이다. 대형 참사인 만큼 현장 수습에 오랜 시간이 걸렸고, 사고 원인을 파악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목격자들을 통해 여러 얘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현장에서 돌던 루머들까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공유되면서 사고 다음날인 30일은 혼란 그 자체였다.
비극적인 사고를 두고 남영희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려 "이태원 참사는 청와대 이전 때문에 일어난 인재"라고 주장해 분노를 샀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은 아니다"라고 해 논란이 됐다.
수많은 비난과 화가 확인되지 않은 내용과 함께 비정상적으로 퍼지고, SNS 등에서 사고 현장의 처참한 영상과 사진이 여과 없이 노출되면서 온라인은 시끄럽기까지 했다. 결국 트위터를 비롯한 국내외 주요 소셜미디어와 포털에서는 참사와 관련한 잔혹한 영상과 허위 사실들이 확산하지 않도록 해 달라며 이용자들의 자제를 당부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31일 '이태원 사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인터넷, SNS 등을 통해 사상자들을 혐오하는 발언이나 허위조작 정보, 자극적인 사고 장면을 공유하는 행동을 절대 자제해주길 간곡히 부탁한다"고 말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는 공식 성명을 내고 현장 영상과 사진을 퍼뜨리는 행위는 고인과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2차·3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유포를 멈춰달라고 촉구했다. 또 유가족과 현장에 있었던 생존자들에 대한 혐오 표현을 자제하고, 언론 보도 과정에서 참사와 관련한 인권 침해가 벌어지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현장 영상이나 뉴스를 과도하게 반복해서 보는 행동은 스스로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자제를 권고했다. 모두가 적나라하게 공개된 아비규환 현장을 봤다. 전문가들은 생존자·유가족뿐 아니라 전 국민의 트라우마가 될 우려가 있다고 짚었다. 실제로 취재를 위해 많은 영상을 찾아보고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참담함이 가시지 않아 괴로움을 느낀다.
김선현 대한트라우마협회장(연세대 원주의대 교수)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조용한 애도의 시간"이라며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곳에서 너무도 큰 사고가 났기 때문에 모두가 마음에 안정을 찾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정찬승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홍보위원장은 "국민들이 비난과 혐오로 이 사고를 대하기보다는 서로를 위로하고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대응하도록 그 방법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강의·정도언 전 서울대 교수가 미국의 스트레스 전문가인 토마스 홈즈와 리처드 라헤의 사회 재적응 평가척도(SRRS)를 우리나라 사정에 맞게 진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식의 죽음이 점수가 가장 높았다. 자식의 죽음을 경험한 이들의 스트레스가 배우자·부모를 잃은 사람들보다 큰 것으로 조사됐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맞닥뜨린 유가족의 슬픔과 아픔 정도를 감히 비교할 순 없겠지만, 이제 고작 20여 년 산 자식을 허망하게 보낸 부모의 심정을 헤아리고 애도하는 게 남은 우리의 역할이다.
정부는 11월 5일 24시까지를 국가애도기간으로 정했다. 여야는 사고 수습 때까지 정쟁을 중단하겠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전국 대부분의 행사와 축제도 멈췄다. 정부와 행정당국의 책임론이 일고 있고 있으나 단정하긴 어렵다.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해 밝힐 때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에만 집중하자. 그리고 함께 극복하자. 박은희기자 ehpark@dt.co.kr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어머니의 통곡…"밝고 성실한 우리 아이, 되돌릴 수 없는 현실 마음 아파"
- "밤새 시신 50구 날랐다"…20대 업소 직원이 전한 그날 참상
- `이태원 압사 참사` 군인·군무원 등 3명 숨져…음주회식·골프금지
- 이태원 참사, 여성 사망자가 왜 많았나…"100명 밀리면 압력만 5톤"
- 실종자 가족들, 생사 확인 후 희비 엇갈려…"살아있다니 다행" vs "사망했대"
- "김영선 좀 해줘라" 尹대통령-명태균 녹취록 공개 파장… 대통령실 "공천 지시 아냐, 그저 좋게
- 생산·소비 `동반 추락`… 설비투자 홀로 8.4% 반등
- `합병 SK이노` 1일 출범…무자원 산유국서 `친환경` 에너지강국 도약 이정표
- "기술혁신이 ESG"...AI로 고령화 해결 나선 제약바이오기업들
- "가계대출 총량규제 맞춰라"… 신규억제 넘어 중도상환 유도하는 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