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현장정리도···警, 확성기로 안내만 했어도 피해 줄였을 것"
警, 평소보다 인원 늘렸다 했지만
추가배치 76명 불과···26명만 교통
현장 붐비고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직접 통제·구조 제대로 안돼" 지적
참사 몇시간전 "내려가는 분 먼저"
여성 통솔에 '무사통행' SNS글도
경찰이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에 대해 코로나19 이전인 2017~2019년 핼러윈 기간에 배치된 인력이 37~90명 수준이었지만 올해는 137명을 투입했다고 강조했다. 경찰 관계자는 “지역 경찰 인력을 증원하고 교통·형사·외사 기능으로 합동 순찰팀을 구성했을 뿐 아니라 시도청 인력까지 포함한 수준으로 투입했다”며 “올해뿐 아니라 과거에도 현장 통제보다는 불법 단속과 범죄 예방, 교통 소통에 중점을 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의 해명과 달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에서는 시민들이 경찰을 대신해 일대를 통제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목격자들의 증언들이 속속 이어지고 있다. 현장에 배치된 경찰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게 사고 대처 방식에 착오를 키우는 데 한몫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사고 직후 한 누리꾼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여성분 덕분에 집 갔어요”라는 글과 함께 현장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사고 발생 직전 해밀톤호텔 옆 골목 내리막길 윗부분에서 수많은 인파가 좁은 길에서 옴짝달싹 못 하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사람들이 인파 속에 갇혀 있던 때 호텔 계단 쪽에서 한 여성이 큰소리로 “앞으로 전달해주세요. 여기 뒤에 꽉 막혀 있으니까 못 올라온다고”라고 외쳤다.
그는 팔을 머리 위로 올려 흔들며 “올라오실 분 잠시 대기해주시고 내려가실 분 이동해요. 앞으로 전달해주세요”라고 여러 번 외쳤다. 여성의 큰 목소리에 떠들썩한 골목은 잠시 조용해졌고 여성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은 “내려가! 내려가!”를 합창했다. 그러자 올라오려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돌리며 막혀 있던 사람들이 아래쪽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와 진짜 내려가진다”며 감탄했다. 여성은 다시 한 번 “올라오실 분 올라오지 말고 기다리세요. 내려가는 거 먼저예요”라고 외치며 침착하게 골목을 통제했다.
이를 두고 경찰이 구름 인파를 직접적으로 통제하지는 못해도 ‘확성기로 인도만 해줬어도 대규모 사상자를 조금은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술집에서 흘러나오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대규모 인파가 외치는 비명 등을 고려하면 구조나 통제 신호가 제대로 전달될 리 만무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유튜브 등 SNS에 공개된 사고 영상에는 경찰관 4~5명이 해밀톤호텔 옆 내리막길 아래쪽에서 압사 직전의 시민들을 직접 꺼내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담기기도 했다. 경찰관들은 인파 더미에 낀 사람들을 직접 꺼내려 했지만 겹겹이 쌓인 인파의 무게에 속수무책이었다.
이날 밤 핼러윈 축제를 대비해 이태원 일대에 추가적으로 배치된 경찰 인력은 76명(형사 50명, 교통 26명)에 불과했다. 경찰은 당시 137명의 경찰 인력이 배치됐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지역 주민의 민원과 치안을 담당하는 파출소 인력 32명과 외국인과 관련된 범죄를 담당하는 외사 경찰관 35명이 포함된 숫자다. 이마저도 76명 중 50명은 불법 촬영 등 성범죄, 마약 범죄 등을 단속하기 위한 형사 인력이었고 나머지 26명도 경비가 아닌 교통 인력이었다.
시민들과 인근 주민들은 경찰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탓에 사고 대처 방식에 허점을 키웠다고 비판했다. 사고 현장 바로 옆 건물 주민인 남 모(81) 씨는 “처음에 맨 아래쪽에 깔린 사람부터 빼내려고 했는데 도저히 빠지지 않아 직접 내리막길 위쪽으로 다시 올라가 뒤로 빠지라고 소리치며 정리했다”며 “내리막길 골목이 꽉 막혀 다른 길로 돌아서 올라가느라 시간이 한참 걸렸다”고 회상했다. 사고 당일 핼러윈을 즐기기 위해 이태원을 방문했던 30대 남성 고 모 씨는 “애초에 대규모 인파를 통제할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경찰관 개개인이 그렇게 급박한 순간에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느냐”며 “감당할 수 없는 인파가 한꺼번에 비명을 지르면 누가 와도 패닉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NYT)는 사고에 휘말렸다 살아남은 생존자를 소개하면서 “현장이 너무나 붐비고 시끄러운 탓에 불과 몇 m 앞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데도 주변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한 채 사진을 찍거나 화장을 하고 주점 주인과 언쟁을 벌이는 등 상관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NYT에 출연한 생존자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해 핼러윈 때도 큰 인파가 몰렸다. 올해는 사람이 더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 정부가 더 많은 경찰을 배치해 군중을 통제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사고가 발생했던 날 오후 1~2시 서울 중구 세종대로와 삼각지역 일대에서 열린 진보·보수 단체의 집회에는 기동대 4000여 명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NYT는 “한국은 수십 년간 정치적 시위 및 종종 폭력적 결과를 부른 경찰 병력 진압을 수반한 대규모 집회를 겪어오면서 군중 통제에 대한 경험이 있는 나라”라며 “이번 토요일 밤의 이태원 상황은 최근의 정치적 시위 현장에서 민간인보다 경찰이 많은 것처럼 보인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고 지적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31일 기자 간담회에서 “상당한 인원이 모일 것은 예상했으나 구체적인 장소가 특정된 것이 아니었고 불특정한 시간대에 사람들이 몰린 탓에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는 예견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강동헌 기자 kaaangs10@sedaily.com박신원 기자 shin@sedaily.com이건율 기자 yul@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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