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할 사람 없어 더 맘아파”···어른스럽고 착하던 ‘보통’의 희생자들[이태원 핼러윈 참사]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추모공간에서 31일 시민들이 이태원 핼러윈 피해자들에게 헌화 및 묵념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매일 운동하면서 자기 몸을 얼마나 아꼈는데요. 성격이 좋아서 어딜 가든 적응도 잘하고 웃기도 잘해서 사람들이 다 좋아했어요. 원래 토요일까지 일을 하는데, 그날은 하루 쉰다고 친구들하고 같이 놀러갔다가….”

“안전에 엄청 민감한 친구예요. 사람 많은 곳을 원래 안 좋아하는데…. 웬만하면 빠져나왔을 거예요. 혼자 돈 모아서 어학연수도 갔다오고, 되게 열심히 사는 친구였어요.”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서 유명을 달리한 27세 동갑내기 청년 A씨와 B씨를 애도하기 위해 31일 장례식장을 찾은 사람들은 두 사람을 이렇게 기억했다. 고인들은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던 20대 청춘들이었다.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했던 ‘보통의 20대’인 그들은 창졸간에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핼러윈을 즐기려 함께 이태원을 찾은 A씨와 B씨, A씨의 여자친구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경기 고양시의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A씨와 B씨의 빈소를 침통함에 잠긴 가족과 지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절친한 사이였던 두 사람은 생전 모습도 비슷했다. A씨는 대학생인 동생, 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A씨의 아버지는 “동네에서 칭찬이 많았다”며 “잘 자라줘서 고마웠던 아들”이라고 했다. 동생을 살뜰히 챙기는 착한 형이기도 했다. 직장인인 A씨는 통상 매주 토요일까지 일했는데, 하필이면 참사 당일인 29일이 ‘쉬는 날’이었다고 한다. “금요일 저녁에 집에 와서는 ‘간만에 내일 쉬니까 친구들하고 술 한 잔 하러 나간다’고 한 게 마지막이에요.”

친구 B씨도 “어른스러운 사람”으로 기억됐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함께 다닌 친구 박종호씨(27)는 “매주 연락하는, 동네에서 손꼽히는 친한 친구였다”며 “착하고, 친구들과도 같이 잘 어울렸다”고 B씨를 기억했다. 황경욱씨(27)는 “매사에 열정이 넘치고, 생각이 깊고, 진짜 어른스러웠다”고 했다.

고인이 된 두 사람 모두와 친구라는 20대 남성은 B씨의 빈소에서 “바로 얼마 전까지도 만났는데, 너무 어이가 없고 허무하다”며 “원망할 사람이 없는 게 더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사고로 30대 아들을 잃은 어머니 이모씨(67)는 “우리나라 최고라는 대통령 있는 바로 옆에서, 서울 한복판에서 이렇게 걸어 다니다가 죽는 게 말이 됩니까”라고 절규했다. 이씨는 사고 소식을 들은 당일 이태원부터 순천향대병원, 한남동 주민센터, 용산경찰서까지 참사 현장 인근에서 헤집지 않은 곳이 없었다고 했다. “신경만, 관심만 가졌으면 될 놈의 것을 이게 뭡니까. 돈이 들어요 뭐가 들어요? 세월호 사고에 수십년 전 씨랜드 사고까지 다 똑같아요. 그건 이유라도 있지, 이건 걸어다니다 죽고. 없는 아이 낳으라고 하면 뭘 합니까. 있는 아이 잘 지켜야지!”

다른 수도권 장례식장에서는 어린 자녀를 남기고 세상을 뜬 40대 희생자들에 대한 애통함이 빈소 바깥으로 흘러 나왔다. 이번 참사로 40대 아들을 잃었다는 어머니는 내내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밥도 맛있게 잘 먹었는데, 잠깐만 나갔다 온다고 하더니….” 40대 딸을 떠나보낸 어머니는 “뭐가 그렇게 급했느냐”며 가슴을 쳤다.

중학생 1명과 고교생 5명이 이번 참사로 세상을 떴다는 사실이 이날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엄마와 이모의 손을 잡고 핼러윈 축제장을 찾았다 숨진 중학생은 선후배·동급생과 모두 잘 지내던 학생이었다고 한다. 충격과 슬픔에 빠진 동급생과 교사들로 인해 학교는 수업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함께 다니던 친구 2명도 참사로 세상을 등졌다. 갑작스러운 비보를 접한 학교는 이날 온통 침울한 분위기였다. 이들이 평소 앉던 교실 책상에는 친구들이 놓은 추모의 국화꽃이 놓였다고 한다. 피해자들과 동급생이라는 한 학생은 “메신저를 통해 소식을 들었다”며 “다들 침울하고 속상해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또 “(고인들과) 가장 친했던 친구가 같은 반 학생 외에는 빈소 방문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해당 학교 교사는 “모두가 마음으로 추모하고 있다”고 했다.

<유경선 기자 lightsun@kyunghyang.com,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신주영 기자 jy@kyunghyang.com,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