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원전 수주 첫 단추 뀄지만… 美 견제는 풀어야 할 숙제

이윤정 기자 2022. 10. 3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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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원, 폴란드와 원전 개발계획 LOI 체결
웨스팅하우스 소송에 본계약 전망 ‘불투명’
”美 설계·韓 시공 합하면 세계 시장 제패”

한국수력원자력이 폴란드 민간발전사 제팍(ZE PAK)과 ‘한국형 원전(APR1400)’을 중심으로 원전 개발계획을 수립하는 협력의향서(LOI)를 체결하면서 본 수주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최근 미국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가 ‘APR1400’에 자사 기술이 쓰여 한수원이 독자적으로 원전을 수출할 수 없다며 지식재산권 소송을 제기해 안심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한·미 원전 동맹’은 흔들림없이 나아간다는 입장이지만, 세계 원전시장 영향력 확대를 위해 이번 소송전에 미 정부가 개입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정부의 개입이 없었더라도 원전 수출 시장을 공략하려면 미국과의 협업이 필수적인 만큼 이번 기회에 웨스팅하우스와의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야체크 사신(오른쪽) 폴란드 부총리가 지난 23일(현지시각) 워싱턴DC에서 제니퍼 그랜홈 미국 에너지부 장관을 만난 뒤 폴란드의 신규 원전 사업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폴란드 기후환경부 제공

한수원은 31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 호텔에서 제팍, 폴란드국영전력공사(PGE)와 폴란드 퐁트누프 지역 원전 개발계획 수립을 위한 LOI를 체결했다. 이 계획은 바르샤바 서쪽 240㎞에 위치한 퐁트누프 지역에 한국 원전 기술인 APR1400을 기반으로 원전 개발계획 수립을 추진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폴란드 국유재산부 역시 양국 기업이 추진하는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협력하기 위해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막판에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를 딛고 LOI 체결에 성공하면서 정부와 한수원 등은 한시름 놓는 분위기다. LOI 체결 열흘 전인 지난 21일(현지시각) 웨스팅하우스가 미국 컬럼비아 연방지방법원에 APR1400 수출을 제한해달라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한 것이 우려의 발단이었다. 웨스팅하우스는 APR1400에 자사가 확보한 기술이 적용됐다며 이를 다른 나라에 수출하려면 자사와 미국 에너지부(DOE)의 허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웨스팅하우스는 한수원이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전 4기를 수출할 때도 같은 이유로 문제를 삼은 바 있다.

◇ 美 정부 개입 여부 따라 소송전 여파 달라져

이번 웨스팅하우스의 소송을 놓고 업계는 두 가지 해석을 내놓고 있다. 먼저 한국과 원전 동맹을 강화하려는 미국 정부의 뜻과는 별개로, 기업 가치를 올리기 위해 웨스팅하우스가 행동에 나섰다는 시각이다. 웨스팅하우스를 보유한 캐나다 사모펀드 브룩필드는 최근 웨스팅하우스 지분 49%를 캐나다 우라늄 업체 카메코에 매각했다. 나머지 지분 51% 매각에서 최대한 좋은 값을 받기 위해선 원전 수주를 따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자신들의 기술 경쟁력을 부각하고 한국을 견제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 경우라면 이번에 LOI를 체결한 폴란드 원전 개발 본계약은 물론, 향후 추가 수주에서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는 “APR1400은 수출 통제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웨스팅하우스가 수주전에서 협상력을 확보하기 위해 무리하게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1997년 한국전력은 웨스팅하우스와 원전 기술의 범위 및 사용 조건 등을 규정하는 ‘기술 사용협정’을 맺었는데, 이를 통해 APR1400을 국내외에서 영구적으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 역시 “웨스팅하우스 몸값을 올려 매각하기 위해선 호재가 필요한 상황이라 (소송 이슈를) 터트린 것으로 보인다”며 “수주에 큰 문제는 되지 않겠지만, 웨스팅하우스가 이미 기술 사용협정을 통해 우리에게 돈을 받아가놓고도 소송을 거는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선 크게 지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창양(맨 오른쪽)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6월 30일((현지시각) 폴란드 바르샤바 쉐라톤호텔에서 ‘폴란드 원전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한 한-폴란드 기업간 원전분야 협력 MOU 체결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반면 미국 정부가 이번 소송에 개입했다면 원전 수출 전선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주현 단국대 교수는 “미국 정부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을 통해 자국 원전 공급망을 회복시키려 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선 대규모 자금과 프로젝트가 필요하고 폴란드, 체코 등은 미국 입장에서도 놓칠 수 없는 좋은 호재”라며 “미국 정부가 이번 웨스팅하우스 소송에 개입하고 있다면 심각하게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협조를 얻어내지 못하면 추가 수주전에서 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은 체코 두코바니 지역에 원전 1~2기를 짓는 사업에서 웨스팅하우스, 프랑스전력공사(EDF)와 경쟁 중이다. 사우디는 2030년까지 1.4GW(기가와트) 규모의 원전 2기를 짓는 사업을 추진 중인데, 한국은 지난 5월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과 함께 입찰제안서를 제출한 바 있다. 특히 사우디는 이란의 핵개발을 견제한다며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 사찰을 거부하고 있어 미국이 이를 이유로 사우디 원전 수출에 제동을 걸 수 있다.

문 교수는 “한국은 제3국에 원전을 수출하려면 미국에 수출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수출 통제 심사 기간을 최소한으로 단축하고 보다 자유로운 수주를 위해서라도 미국의 협조가 필요하다”며 “웨스팅 하우스 소송에 미국 정부가 개입하지 않았다 해도 수출 허가 등을 내줄 때 웨스팅하우스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웨스팅하우스는 최적의 파트너… 협력 강화해야”

웨스팅하우스, 나아가 미국과 보다 공고한 협력관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한·미 원전동맹을 보다 공고히해 양국이 시너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웨스팅하우스는 원전 설계 역량을 갖추고 있지만, 원전 시공 부문에선 다소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한국은 미국 기술을 적용했지만 UAE 바라카 원전 등 최근까지도 원전을 저렴하면서도 빠르게 지은 경험이 있다.

자금과 외교력을 갖춘 미국과 시공능력을 갖춘 한국이 합심해야 세계 원전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용훈 교수는 “이번에 폴란드 정부가 추진하는 6기 규모의 원전 사업은 웨스팅하우스가 가져갔는데, 이 사업에 국내 산업계가 참여할 가능성이 열려있다”며 “향후 추가적으로 수주할 때에도 결국 협력해야 할 대상”이라고 말했다.

문 교수 역시 “미국이 예산과 기간을 맞추려면 한국이 최상의 파트너”라며 “러시아가 지금은 전쟁 때문에 주춤하지만, 향후 원전 시장에서 다시 활동할 경우 한국과 미국이 고전할 수 있어 힘을 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웨스팅하우스의 소송을 예의주시하면서도 미국과의 원전 동맹에 균열은 없다는 입장이다. 박일준 산업부 2차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양국간 원전 분야에서 협력하자는 큰 틀에선 이견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웨스팅하우스는 민간 기업인 만큼 기업 비즈니스 전략과 국가 정책과는 결이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송은 소송대로 진행하며 다양한 협력 가능성은 열려있다 생각하며, 미국과 긴밀히 협력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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