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꽃다운 나이에" 추모 물결···'얘들아 미안' 눈물의 피켓도

이건율 기자 2022. 10. 31. 17:5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조문행렬 이어진 합동분향소
"야외보다 집 좋아한 아이였는데"
중학생 1명·고등학생 5명 숨져
6~7세 아이들도 국화꽃 헌화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될 참사"
숙연한 분위기 속 시민들 발길
31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을 한 후 이동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31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에서 조문객들이 슬퍼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서울경제]

29일 발생한 이태원 압사 참사 이후 아들과 연락이 두절된 50대 여성 A 씨가 서울 용산구 한남동 주민센터에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상대방의 목소리가 연거푸 들린 뒤에야 A 씨는 입을 뗐다. “···사망했대.” 곧바로 전화를 끊은 A 씨는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흐느꼈다. 가녀린 A 씨의 등이 요동치며 흔들렸다. A 씨의 울음이 주민센터의 무거운 적막 위로 터져 나왔다.

31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성남중앙병원 장례식장에는 서울 소재 고등학교 2학년생 B 군(17)의 빈소가 마련됐다. B 군은 사고 당일 친구들과 함께 이태원을 방문했다가 인파에 밀려 세상을 갑작스레 등졌다. 장례식장 한 편에서 애끓는 통곡 소리가 들렸다. B 군의 지인은 “야외 활동보다 집에서 여유를 즐기는 걸 좋아했던 아이였다”며 “도대체 무슨 일인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온 가족이 황망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로 사망한 중고등학생은 총 6명이다. 중학생 1명도 이번 사건으로 사망했다.

이태원 대규모 압사 사고로 가족 및 지인들과 연락이 끊긴 사람들이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주민센터에서 실종 신고를 접수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김남명 기자

이날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는 대규모 사망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를 기리기 위한 합동 분향소가 차려졌다. 각지에서 찾아온 시민들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굳은 얼굴로 추모했다. 분향소에 마련된 하얀 국화 더미 앞에서 눈물을 쏟는 시민도 있었다.

참담한 표정으로 추모를 마친 황성호(27) 씨는 “사고 당일 이태원 현장에 있었지만 많은 인파에 일찍 빠져나왔다”며 “내가 있던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명을 달리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좋지 않아 추모하러 나왔다”고 말했다. “얘들아 미안하다”라고 적힌 피켓을 준비해 분향소를 찾은 이인숙(63) 씨는 “몇 번째 반복되는 참사인지 모르겠다”며 “꽃다운 나이의 아이들이 세상을 떠나 참담하다”고 울먹였다. 한 시민은 “너무 잔인한 늦가을”이라며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 될 참사”라고 말했다.

이번 참사가 당국의 대비와 대응이 미흡해 발생한 인재(人災)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10만 명 이상의 인파가 이태원 인근에 몰릴 것으로 예상된 만큼 경찰 인력을 배치했어야 했다는 주장이다. 앞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30일 브리핑에서 안전 대비가 미흡했다는 지적에 대해 “경찰·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서울 중구 황학동에 거주 중인 김시용(33) 씨는 “경찰은 주최자 없는 행사에 인력을 배치하지 않는다고 설명하지만 이태원에서 열린 핼러윈 축제는 이미 몇 년째 이어지고 있던 행사”라며 “책임을 회피하기보다는 이제라도 이런 행사에 충분한 경찰 인력을 배치해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대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아침부터 평택에서 국화를 사 들고 왔다는 최완섭(68) 씨는 “경찰관만 제대로 배치했어도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언제까지 이런 일이 반복되게 둘 것인가. 이번 사건 이후에도 몇 년 뒤에는 또 안일해져 비극이 반복될 수 있다”고 울화통을 터트렸다. 최 씨는 “(비극을 막을 수 있다면) 분신을 시도할 의향도 있다”며 자리에 주저앉기도 했다.

이날 사망자 154명의 신원 확인이 완료되면서 유가족들은 본격적인 장례 절차에 들어갔다. 다만 일부 유가족은 해외 체류 등 당장 빈소를 마련할 수 없는 상태라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고를 수습하고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한 정부 대책도 나왔다. 행안부는 이태원 압사 참사 사망자에 대해 장례비를 최대 1500만 원까지 지급하고 이송 비용을 지원할 방침이다. 또 유가족과 지자체 전담 공무원을 일대일로 연결해 소통하는 한편 전국 31개 장례식장에 공무원을 파견해 장례를 도울 예정이다.

부상자들은 치료비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으로 이들의 실치료비를 우선 대납하고 중상자는 전담 공무원을 통해 일대일로 집중 관리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구호금과 함께 세금, 통신 요금을 감면하거나 납부를 유예하는 등 각종 지원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건율 기자 yul@sedaily.com김남명 기자 name@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