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응급처치법 정확히 아는 성인’ 10명 중 1명 불과”
“정확한 응급처치 숙지한 성인은 약 10%”
학교 교육 실시율 약 99%…“실효성 의문”
“자동심장충격기 실습 교육 등 확대 수요↑”
“골든타임 내 CPR이 중요, 트라우마 우려”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현재까지 154명 사망자가 나온 ‘이태원 참사’에서 경찰, 소방 외 일반 시민들이 심폐소생술(CPR)에 나서 구조를 도왔다. 신속한 응급처치의 중요성이 대두됐지만 실제 응급 처치 방법을 정확하게 숙지하는 성인은 10명 중 1명이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참사로 응급처치 교육 전반을 돌아볼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헤럴드경제 취재에 따르면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12월에 발표한 ‘응급처치 교육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응급처치 교육 이수자 중 CPR 등을 제대로 숙지하고 있는 사람의 비율은 9.9%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특정 직업 종사자 외 일반인은 응급처치 재교육 기회가 부족해 심정지 환자 발견 시에도 대응력이 부족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당시 보고서는 응급처치교육 실효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소비자원이 최근 3년간 응급처치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는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급처치 교육 이수자 232명 중 정확한 응급 처치법을 알고 있는 사람은 23명(9.9%)에 불과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이 교육을 받은 곳은 ▷직장(180명·36%) ▷예비군·민방위 훈련(141명·28.2%) ▷학교(81명·16.2%) ▷사설 교육기관(50명·10%) 순이었다.
학교보건법에 따르면 학생과 교직원은 심폐소생술을 비롯한 응급처치 교육을 받아야 한다. 소비자원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중 자료를 확보한 15곳(인천·세종 제외)의 응급처치 교육 실시율은 2019년까지 99% 이상이었다. 다만 2020년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비대면 수업 등으로 실시율이 96.4%에 그쳤다. 그러나 최근 4년 내 고교에서 응급처치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는 대학생 163명 중 응급처치 내용(응급처치 순서, 심폐소생술, 자동심장충격기 사용)을 모두 숙지하고 지식 수준을 갖춘 학생은 11.7%(19명)에 불과했다.
면접 조사에 따르면 고교생들 ▷체육 수업(37.4%) ▷창의적 재량활동(30.7%) ▷정규 보건수업(27.6%) 순으로 응급처치 교육을 받았다. 조사 대상 중 87.7%는 고교 재학 중 응급처치 교육 시간이 ‘10시간 미만’이라고 답했다. 절반 가까이(53.3%)는 ‘5시간 미만 교육’만 받았다고 했다. 고교 응급처치 교육 강사는 보건교사(30.1%)가 가장 많았고 전문강사(27.6%), 119 구조대원(16.6%) 등 순이었다.
면접 조사에 참여한 대학생들은 학생 응급처치 교육의 보완점으로 ‘자동심장충격기(AED) 실습 확대’(93.8%)를 가장 많이 꼽았다. ‘심폐소생술 실습 확대’(90.1%)와 ‘의무 교육 시간 축소 및 획수 확대(52.1%)가 그 뒤를 이었다.
정기 교육도 부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면접 조사에 참여한 대학생들 중 고교 졸업 후 재교육을 받은 학생은 18명(11%)에 불과했다. 조사 대상 대부분(93.9%)은 ‘고교 졸업 이후에도 추가적인 응급처치 교육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이들 중 절반 가까이(49%)는 ‘대학(원)생 대상 교육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실제 경기 군포시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박모 씨는 CPR과 관련해 “이번 참사 뉴스를 본 뒤 군대에서 배운 기억이 있다”면서도 “몇 초에 몇 번씩 어느 속도인지 하는 이론적인 부분은 희미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실습 경험이 줄며 긴박한 상황 시 대응력이 떨어진다는 우려도 있다. 한 4년제 대학 간호학과를 졸업한 김모(24) 씨는 “코로나 때 학교 실습에서도 인공호흡 부분은 실습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 희생자들의 주요 사인으로 추정되는 심정지의 경우 골든타임이 4~6분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이 신속한 응급처치(심폐소생술, 자동심장충격기 등 사용)은 환자의 생존에 큰 영향을 미친다. 2019년 통계청 보고서에 따르면 의료인 외 심폐소생술 시행 시 생존율은 15.0%로 미시행 시 6.2%에 비해 2.4배 가까이 높았다.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스위스에서는 운전면허 취득 위한 응급처치 교육이 필수라며, 일상생활과 연계해 응급처치 교육 기회를 확대했다고 이 보고서는 분석했다. 특히 미국의 경우 39개 주에서 고교 졸업 자격요건으로 심폐소생술 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고도 부연했다.
전문가는 응급 상황 대비를 위한 응급처치 교육 활성화와 골든타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조성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골든타임이 지난 후 CPR은 오히려 트라우마나 후유증을 낳을 수 있다”면서 “현장 시민들의 CPR 가능 여부 자체를 이번 참사의 본질로 보는 접근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hope@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옷 찢긴 언니에 맨투맨 입혀주신 분 찾아요”…이태원 은인 찾아나선 동생
- 배우 윤홍빈 “20분간 CPR, 끝내 못 살렸다…사방에서 ‘제발 눈떠’”
- “박병화 오는 줄 알았으면 절대 방 안내줬다” 원룸 주인 분노…화성시장 “강력 저지”
- BJ 케이 "나 때문에 사고? 말도 안된다"…'이태원 참사' 루머 해명
- '프듀2' 출신 배우 이지한, 이태원 참사로 숨져…24세
- [영상] 참사 전 벽 타고 탈출한 외국인…“순간 선택이 목숨 살려”
- “SNS 접겠다”던 조국, 26일만에 올린 사진보니…
- “더 살리지 못해 죄송”…이태원 현장 출동 경찰관의 심정
- 한양대 유학생 아들 잃은 美아빠 “수억번 동시에 찔린 것 같다”
- “후기만 믿고 배달 음식 시켰는데” 거짓 리뷰 이 정도일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