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 이태원 참사와 '재해의 심리학'
우주선 폭발 위험 낮춰 잡는
의사결정 편향 연구 없이
대통령 탓하기론 재해 못 막아
사실 퍼거슨의 말 그대로 지도자는 복잡한 네트워크에서 한 명의 허브일 뿐이다. 재해와 관련된 의사결정은 그 복잡한 네트워크에서 여러 사람들이 개입해 이뤄진다. 문제는 그들에게는 각자 지켜야 할 이익과 가치가 있다는 점이다. 그것을 지키려다 보면 재해 발생 확률을 과소평가하게 된다. 재해 대처를 하지 않게 된다.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 사고가 그런 경우다. 엔지니어들이 추운 날씨에는 폭발 위험이 있다고 발사를 연기하자고 했지만 미국 항공우주국(NASA) 관료들은 그 말을 무시했다. 엔지니어들은 사고 발생 확률이 1%라고 했지만, NASA는 그보다 1000배나 낮게 봤다. 결국 NASA 중간관리자들은 챌린저호 발사를 결정했다. 사고 원인을 조사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파인먼은 "NASA가 성공적인 기관임을 정부에 확신시켜 자금 지원을 확보하려고 했기 때문일 수 있다"고 했다.
물론 NASA가 고의로 사고 확률을 낮춘 건 아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보고자 하는 우리 마음속 편향 탓이다. NASA 같은 전문기관도 이 정도라고 하니 일반 관료들은 더할 수 있다. 핵전쟁 같은 대재앙마저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있다.
1962년 쿠바 위기가 기억이 난다. 미국은 소련이 쿠바에 설치한 핵무기를 철수하라면서 쿠바 해역을 봉쇄했다. 소련 잠수함을 쫓아 연습용 폭뢰를 터뜨렸다. 공격을 받았다고 생각한 잠수함장은 이미 3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걸로 믿었다. 핵어뢰 발사 준비를 명령했다. 다행히도 다른 장교들이 함장을 설득했다. 결국 잠수함은 미군 지시에 굴복했다. 수면 위로 올라왔다. 덕분에 핵전쟁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장교들에게는 불벼락이 떨어졌다. 안드레이 그레치코 국방부 부장관은 안경을 회의 테이블에 내리쳐서 산산조각을 냈다. "치욕이야. 조국의 명예에 먹칠을 했어." 사실 이 같은 질책은 당시 소련의 최고 권력자인 니키타 흐루쇼프의 의중과는 전혀 부합하지 않았다. 흐루쇼프는 핵전쟁만큼은 피하려고 했다. 미국의 봉쇄 조치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아래 소련군 장성은 달랐다. 그에게 중요한 건 군의 명예였다.
나는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들곤 했다. 만약 나중에 그 장교나 후임들이 똑같은 상황에 처하면 어떤 결정을 하게 될까. 수면 위로 올라올까, 아니면 핵어뢰를 발사할까. 수면으로 올라가면 군의 명예에 먹칠한 장교가 될 게 뻔하다. 결국 핵어뢰를 발사해 미군 항공모함 한 척을 격파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지 않을까.
재해 예방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한 실무자가 좁은 골목에 사람이 몰리면 다치는 사람이 나올까 걱정했다고 해보자. 통행 인원수를 제한해 사고를 막았다고 해도 그 혜택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 실무자는 통행에 불편을 끼쳤고 상인의 장사를 어렵게 했다는 이유로 상부의 질책을 받았을 수도 있다. 만약 그랬다면 그 실무자는 사고 예방 조치를 더는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태원 참사에서도 이런 식의 의사결정 오류가 있었던 건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재해가 발생하면 형사처분에 집중한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의사결정 네트워크에서 누가 참여해 어떤 결정이 있었으며, 어떤 편향에 빠졌는지 조사하는 게 최우선이어야 한다. 누구를 감옥에 넣고 대통령을 탓한다고 대책이 나오는 게 아니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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