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서울 이태원서 스러진 ‘지방 청년들의 꿈’[이태원 핼러윈 참사]
사망자 154명 중 수도권 외 지방 주소지 22명
‘이태원 핼러윈 참사’는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꿈을 키우던 지방 청년들도 함께 앗아갔다. 사망자 154명 중에는 가족 품을 떠나 서울에서 ‘홀로서기’를 해왔던 지방 청년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걱정하지 말라”며 씩씩하게 가족들을 안심 시켜 왔던 평범한 청년들이다.
정부의 사망자 집계 자료를 보면 주소지 기준 서울과 인천·경기 등 수도권 지역 사망자가 106명, 지역 22명, 외국인이 26명 이다. 서울에 살지만 주소가 지역으로 돼 있으면 지역 사망자로 분류된다. 연령대별로는 20대가 102명으로 가장 많고 30대 31명, 10대 12명 등이다.
31일 전남의 한 군지역 장례식장에서는 19살 청년이 ‘국화꽃 다발’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가족들은 환한 표정의 딸 얼굴을 볼 때마다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A씨는 전남 지역 한 미용 관련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로 향했다. 그는 지난 6월 서울 강남의 미용실에 자리를 잡았다. A씨는 고향에 내려올 때면 아버지의 머리를 염색해주고 용돈 봉투를 놓고 갔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딸’ 이었다.
A씨는 직장 동료들과 이태원을 찾았다가 사고를 당했다. 참사 당일에도 A씨는 아버지와 휴대전화를 대화를 나눴다. 아버지에게 사진을 보내면서 “아빠 사랑해”, “예쁜 딸래미지?”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A씨의 가족은 “무슨 수를 써도 딸이 돌아오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연신 휴대전화만 들여다봤다.
“자랑스러운 딸이 되겠다”며 지난 2월 취업을 위해 광주에서 서울로 향했던 B씨(23) 역시 싸늘한 주검으로 가족들 품으로 돌아왔다. 은행에 계약직으로 취업했던 B씨는 얼마 전 정규직 전환 소식을 가족들에게 전하며 뛸 듯이 기뻐했다고 한다.
광주 광산구에 마련된 빈소에서 만난 B씨의 아버지는 “딸이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하던 모습만 떠오른다”면서 “‘이태원에서 놀다 오겠다’는 말에 ‘조심해서 다녀와라’고 했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고 고개를 떨궜다.
B씨와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가 숨진 C씨(23)의 빈소도 같은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B씨와 C씨는 광주에서 초·중·고교를 함께 다닌 평생의 단짝이었다. C씨도 올해 초 상경해 백화점에 취업한 사회초년생 이었다. C씨의 가족은 “엄마를 유독 잘 따르던 딸이었다”며 “늘 밝았고 가족들을 무척이나 잘 챙겼는데 너무 허망하다”고 말했다.
광주 서구의 한 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된 D씨(26)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용돈을 마련했던 성실한 청년이었다. 대학 졸업 예정자인 D씨는 졸업후 사업 아이템 구상을 위해 서울을 여러 차례 오갔다. D씨는 지난 27일 취업에 성공한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을 다시 찾았다가 참변을 당했다.
D씨의 고모는 “가족에게 힘든 내색 한번 하지 않고 언제나 웃고 활기차던 아이였다”면서 “돈을 많이 벌어 호강을 시켜준다던 조카였는데 이렇게 돌아오다니 믿기질 않는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한결같이 이태원 참사가 ‘인재’라고 입을 모았다. B씨의 가족은 “정부가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마련하지 않아 결국 애꿎은 젊은 청년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라고 말했다.
기우식 참여자치21 사무처장은 “이번 참사 희생자 중에 지방에서 상경한 청년들이 많다는 것은 서울이 아니면 꿈을 펼치기 어려운 한국의 사회 현실이 반영돼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각자 사정과 관계없이 청년들이 함께 모여 즐기려는 욕구는 당연하다. 이들을 비난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짓”이라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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