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밟힌 청춘들 절규에 아무도 응답하지 못했다

이혜영 기자 2022. 10. 31.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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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 측 없어 매뉴얼 적용 못했다는 정부, 후속 대응도 도마에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10월3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담당 부서가 아니라서 잘 모른다."

"주최자가 없는 행사는 법령과 매뉴얼상 안전관리 책임자가 없다."

31일 이태원 압사 참사 이후 두 번째로 진행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브리핑에서 쏟아진 정부 관계자들의 말이다. 서울 도심 한 가운에서 발생한 대형 참사를 마주한 정부는 '예상치 못한, 불가항력적 사고'라는 우산을 펼쳐들었다. 10만 명 넘는 인파를 정부도, 지자체도, 경찰도 알았지만 국민을 향한 우산은 없었다. 국가적 재난을 예방할 컨트롤타워가 사고 이전에도, 이후에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모양새다. 

3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이태원 압사 참사로 인한 사망자는 현재까지 154명이다. 20대 희생자가 103명으로 가장 많았다. 30대 30명, 10대 11명으로 희생자는 10~30대에 집중됐다. 중상자 33명을 포함한 149명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사상자 303명, 한국이 비탄에 빠졌던 2014년 4월 세월호 이후 최악의 참사다. 8년 만에 대형 참사가 되풀이되면서 한국 사회가 무늬만 '안전'과 '재난 예방 강화'를 외쳤다는 사실도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월30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핼러윈 인파 압사 사고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 연합뉴스

인파 운집 예견됐지만, 대책은 빈 손

전문가들은 참사를 예견한 '강력한 신호'가 곳곳에 있었지만 이를 관리하고 컨트롤 하는 곳이 부재한 탓에 인명피해 규모가 커졌다고 입을 모은다. 

경찰과 서울시 및 용산구에 따르면, 이들 기관은 모두 핼러윈을 앞둔 지난 29~30일 주말 동안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이태원에 집중될 수 있음을 예견했다. 용산구청은 사고 발생 사흘 전 점검회의를 열었고, 회의에서 인파 운집으로 인한 우려도 제기됐다. 그러나 실질적인 대책 수립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올해 핼러윈을 앞두고 용산구청이 SNS를 통해 시민들에게 전파한 내용도 거리두기와 소독 등 방역수칙에 관한 것이 전부다. 

참사 당일 경찰과 지자체 행정력을 동원한 도로 및 거리 통제, 6호선 이태원역 무정차 통과를 통한 시민 흐름 분산 등 예방책이 하나만 제대로 작동했더라도 대규모 참사로 이어지진 않았을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과거의 경우 핼러윈을 앞둔 주말에 이번보다 훨씬 많은 20만 명 넘는 인파가 몰리기도 했지만 참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당시 경찰은 이태원역 출입구에서부터 현장을 통제하는 등 폴리스라인을 치고 사고가 발생한 해밀턴 호텔 옆 골목에도 경력을 집중 배치해 통제했다.

과거에도 '주최자'는 없었다. 인파가 몰릴 경우 시민 안전이 우려되고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점을 감안한 시와 구청, 경찰의 선제적 대응에 따른 조치였다. 

재난안전기본법에 따른 행안부의 축제 등 행사 관리 매뉴얼에도 순간 최대 인원이 1000명을 넘어서는 경우에는 안전 계획을 수립하도록 돼 있다. 

올해 경찰은 예년보다 많은 137명을 현장에 배치했다고 설명한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브리핑을 통해 '현장 인력 부족으로 발생한 사고가 아니었음'을 강조했다. 수치상으론 맞다. 2017~2019년까지 30~90명 수준으로 투입됐던 경찰 수에 비하면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올해는 마약 단속이나 취객, 다툼 등에 대응하는 인력 위주로 편성되면서 아비규환이 된 현장을 통제하는 인력은 사실상 전무했다. 

당시 참사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과 주변 상인들은 사고 당일 오후부터 해당 골목으로 급격히 많은 시민들이 몰렸고, 수 시간동안 통행이 불가능할 정도의 상태가 연출됐다고 증언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넘어지면서 소방당국으로 신고가 접수되기 전까지 그 누구도 이를 통제하고 관리하지 않았다.

홍기현 경찰청 경비국장은 이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상당한 인원이 모일 것은 예견했다"면서도 "다수 인원의 운집으로 인해 대규모 인명피해는 예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예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인파가) 모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며 "현장에서 급작스러운 인파 급증은 못 느꼈다고 한다"며 목격자들과 배치되는 발언을 쏟아냈다.  

10월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및 경찰 관계자 등이 '핼러윈 압사 참사' 현장감식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참사 후에도 "모른다" "처음 듣는다" 혼선

사전 준비에 이어 정부의 사후 대응도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사상자 가족들은 정부가 약속한 신속한 지원과 충분한 안내가 없었다며 상당 시간이 흐르기까지 사실상 '방치'돼 큰 혼란을 겪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관계 기관 간 혼선이 고스란히 노출되면서 후속 대응에도 잡음이 일었다. 

김성호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중대본 1본부 총괄조정관)은 이날 열린 참사 관련 상황과 지원대책 등을 발표하는 브리핑에서 민감한 질문이 쏟아져 나오자 "질문을 모두 다 소화해야 하나"라며 난색을 표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 전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한 데 대한 협의 상황을 묻는 질문에도 김 본부장은 "이 부분은 지금 처음 접하는 상황이다. 구체적으로 얘기를 들어보고 검토하겠다"며 관계 기관간 엇박자를 냈다.

용산경찰서가 평소 주말보다 많은 200명의 경찰기동대 인력을 이태원에 배치했다고 밝혔다가 이후 137명으로 대폭 조정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도 다소 황당한 답변이 나왔다. 브리핑에 배석한 경찰청 강력범죄수사과장은 "최초에 200명을 배치하겠다는 계획에 대해서는 지금 처음 듣는다"며 정확한 상황을 설명하지 못했다.

일단 행안부와 경찰은 이태원 참사와 같이 주최자를 특정할 수 없어 안전관리 매뉴얼이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한 개선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의사 출신으로 참사 당시 직접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벌인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대형 압사 사고는 골든타임을 유지하기 매우 힘들고, 소생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결국 예방을 하는 방향으로 국가대책이 있어야 되는 것"이라며 "결국에는 앞으로 사고가 안 나도록 어떻게 예방할 것이냐에 대한 대안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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