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룰라 당선…남미서 우파 포퓰리즘 퇴출 "중요한 전조"

2022. 10. 3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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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보호 등 환경 관련 국제 무대서 역할 커질 듯…'선거조작설' 보우소나루 패배 시인 미뤄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브라질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77) 전 대통령이 현직 자이르 보우소나루(67) 대통령을 꺾고 당선됐다. 룰라 전 대통령의 승리로 브라질은 남미 주요국을 휩쓸고 있는 좌파 물결에 합류하게 됐다. 박빙의 차로 당선되며 국내 정책 시행 때 우파와의 타협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기후 변화가 세계적 의제로 부상한 상황에서 아마존 보호를 공약한 룰라 전 대통령이 다른 국가들과 연대해 부유한 국가들의 지원을 압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은 30일(현지시각) 치러진 브라질 대선 결선 투표에서 룰라 전 대통령이 50.9%, 보우소나루 대통령 49.1%를 득표해 룰라 전 대통령이 근소한 차로 승리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WP)와 영국 BBC 방송 보도를 보면 1.8%포인트 차의 초접전 끝에 승리한 룰라 당선인은 당선이 확정된 뒤 행한 연설에서 "두 개의 브라질"은 없다며 "브라질 국민이 단 하나의 승자"라고 통합을 강조했다. 그는 이날 승리가 "나 개인 혹은 노동당 혹은 나를 지지한 이들을 위함이 아니라 정당, 개인의 이해, 이념을 넘은 거대한 민주적 운동의 승리"라며 "승자는 민주주의"라고 덧붙였다. 통상 승리 연설에 앞서 낙선 소감이 더 먼저 발표되지만 외신들은 이날 밤 늦도록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침묵을 지켰다고 보도했다. 1997년 이후 1회에 한해 연임이 가능하도록 한 브라질에서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한 것은 처음이다. 지난 2003~2010년에 이어 또 한 번 대통령에 재임하게 될 룰라 전 대통령은 브라질 첫 3선 대통령으로서 내년 1월 1일에 정식 취임한다.

룰라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브라질이 남미 주요국을 휩쓴 좌파 물결에 합류하며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에 이은 '핑크 타이드(분홍 물결·중남미의 온건 좌파 집권 정치 흐름)'가 다시 등장하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2018년 멕시코에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선출된 것을 시작으로 아르헨티나, 칠레, 콜롬비아, 페루 등 중남미 주요 국가에서 좌파 정권이 줄줄이 들어섰다. <뉴욕타임스>(NYT)는 극우 성향으로 분류되는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이웃 국가의 좌파 정권을 비판하며 브라질과 다른 남미 국가 사이의 관계가 냉각된 상태에서 룰라 전 대통령 당선으로 이들 국가 간 관계 회복이 기대된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이번 대선을 우파 포퓰리즘이 수그러들고 좌파 중심축이 공고해지는 중남미 정치 지형의 "중요한 전조"라고 봤다.

룰라 전 대통령은 선거 운동 과정에서 빈곤과 기아를 퇴치하고 국민 삶을 개선시키겠다고 공약하며 당선됐다. 그는 높은 물가상승률에 맞춰 최저임금을 높여 "식탁에 음식이 놓이게 하겠다"고 약속했고 성별 임금 격차 개선도 공언했다. 공공 서비스에 대한 정부 투자에 집중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공교육에 대한 투자 및 인터넷 접근성 개선도 약속했다. 전 집권기에 시행했던 저소득층에 대해 생계비 지원 확대를 중심으로 한 '보우사 파밀리아' 정책도 부활시킬 예정이다. 부유한 이들에겐 더 많은 세금을 매기겠다고도 제안했다. 다만 <워싱턴포스트>(WP)는 파울로 칼몬 브라질리아대 정치학 교수를 인용해 "룰라 전 대통령은 모든 정책이 재정적으로 지속가능해야 한다는 것과 진보적 사회 정책을 위한 큰 폭의 예산 적자가 역효과를 낳는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보도하며 룰라 정부가 들어서도 큰 폭의 재정 지출과 급격한 재분배 정책이 시행될 것으로 보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고 짚었다.

룰라 전 대통령의 당선은 지구 온난화와 관련한 국제 협력의 필요성이 나날이 증대되는 국면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보우소나루 대통령 집권 기간 동안 아마존 삼림 벌채가 급증해 전세계적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로이터> 통신은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선거 운동 기간에 환경 문제에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으며 브라질인들이 아마존의 천연자원을 개발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룰라 당선인은 선거 기간 동안 삼림 벌채를 억제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공언했다. 룰라 당선인이 자국에서 아마존 보호에 힘쓰는 한편 보호할 자원을 가진 다른 국가들과의 국제적 연대도 꾀해 부유한 국가들과 협상에 나설 수도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미 CNN 방송은 룰라 당선인의 대선 캠페인을 총괄한 알로이시오 메르카단테 수석 보좌관을 인용해 다음달 제27차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7)를 앞두고 브라질, 인도네시아, 콩고 등이 그룹을 형성해 더 부유한 국가들이 삼림 보호에 대한 자금을 지원할 것을 압박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매체는 룰라 당선인의 공약대로 브라질의 기후 변화 관련 정책이 바뀐다면 이를 중심으로 브라질이 국제 무대에서 새로이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룰라 당선인은 코로나19 대유행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촉발된 전세계적 인플레이션 등 해소할 과제가 산적한 상태에서 집권하게 된다. 거의 절반 가량의 유권자가 보우소나루 대통령에게 표를 던진 상황에서 국민 통합의 숙제도 무겁다. 결국 선고 무효가 확정됐지만 부패 혐의로 징역형을 받은 바 있는 탓에 여전히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국민들도 존재한다. 티아고 암파로 FGV 상파울루 로스쿨 교수는 CNN에 룰라 당선인이 집권 뒤 중도 및 우파와 "실용적 동맹"을 형성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513석의 하원에서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자유당(PL)이 99석으로 단일 정당으로 가장 많은 의석을 점유하고 있어 실질적으로도 협력이 불가피한 상태다. CNN은 룰라 당선인이 2017년 노동자의 권리를 후퇴시킨 노동개혁법을 당초엔 폐지하겠다고 했지만 이후 "검토하겠다"고 입장을 바꾼 것을 지적하며 우파와의 타협이 있을 수 밖에 없음을 시사했다.

암파로 교수는 CNN에 "많은 유권자들은 보우소나루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룰라 정부의 이전 집권기 동안 있었던 더 나은 경제에 대한 기대로 투표소로 향했다"며 새 정부가 유권자들의 경제 회복에 대한 기대 또한 충족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선거 기간 동안 근거 없는 선거 조작설을 주장한 보우소나루 대통령과 지지자들이 결과에 승복할지도 한동안 지켜봐야 한다. 이들은 1996년부터 이어진 브라질의 전자 투표 시스템이 실물 투표용지가 없어 검표가 불가능해 조작 가능하다는 음모론을 제기해 왔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밤 늦게까지 선거 불복에 대한 즉각적 조짐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지난 28일 마지막 토론 뒤 한 인터뷰에서 선거 결과에 승복하겠냐는 질문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표를 더 많이 얻은 사람이 자리에 앉는다.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패배 시인을 미룬 상태다. <로이터> 통신은 보우소나루 대통령 선거 캠프 소식통을 인용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낙선 연설을 31일 이전에 하지 않을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브라질 대선 결선투표에서 승리한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가운데)이 30일(현지시각) 상파울루에서 축하를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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