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진건 무엇인가…성찰의 시간 가져야"

고보현 2022. 10. 3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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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장편 '이국에서' 낸 이승우 작가
보스의 뇌물의혹 뒤집어쓰고
아프리카로 도망친 주인공이
폐쇄와 단절 겪는 이야기
코로나 시대 우리 모습 같아
서로 구분 짓고 담쌓지 말아야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매일경제와 만난 이승우 작가가 신작 `이국에서`를 손에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우리는 모두 자신의 '자루'를 채워가며 산다. 어깨에 메고 등에 진 채, 하루하루를 자루에 주워 담는다. 현대인들의 자루는 가득 차 있지만 불행하게도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르는 이도 많다. 허겁지겁 눈앞의 일을 해치우다 보면, 어느샌가 외부의 도움 없이는 관성을 깨고 성찰하기 어렵다.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승우 작가는 "우리의 삶이란 게 항상 가득 채워져 있는 것 같지만 중요한 것이 아닌 당장 쓸모 있고 시급한 것들로만 채워진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운을 뗐다. 작가는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모르는 현대인이 많다"면서 "신작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중요한 것들로 '자루'를 채우며 성찰의 시간을 가지는 주인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가 이승우가 최근 펴낸 장편소설 '이국에서'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하루아침에 고국을 떠나게 된 한 남성의 이야기를 그렸다.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한 작가가 5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2018년 문학잡지 '악스트(Axt)'에 연재한 소설을 코로나19 시기 동안 다듬어 엮었다.

소설은 유력 대선후보인 보스의 뇌물 의혹을 뒤집어쓴 주인공 황선호가 아프리카 한 귀퉁이에 있는 '보보민주공화국'으로 숨어 들면서 시작된다.

스캔들이 잠잠해지고 선거가 끝날 때까지 투명 인간으로 살아야 하는 시간은 5개월19일. 한국과 완전히 단절된 타지에서 황선호는 내부인이자 외부인을 오가며 인생을 되돌아본다. 폐쇄와 단절을 계기로 본인을 성찰하게 되는 모습은 코로나19 시대를 살던 우리네 삶을 닮았다.

"격리나 거리 두기 등 기존에 굉장히 부정적이던 어휘들이 마땅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시기였죠. 안전과 타인에 대한 배려라는 것이 중시되면서 서로를 구분 짓고 담을 쌓았습니다. 모든 이를 '외부인'으로 만들어버린 '코로나19 통치기'라고 저는 표현합니다."

작가는 "외국인 또는 이방인이라는 표현보다 '외부인'이라는 단어를 택한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른 단어는 국적이나 언어, 문화 풍속 등의 기준이 정해져 있지만 외부인의 기준은 어디에 칸막이를 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바로 앞에다가 쳐버리면 모든 것이 밖"이라며 "뚜렷한 내용 없이 인간을 제외시키는 용어다. 우리 사회가 점점 그렇게 돼가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나의 공동체였던 구성원들이 저마다 크고 작은 울타리 안에 들어가 서로를 외부인으로 만든 셈이다. 작가는 "방 안에서 문을 잠그고 일부 사람들끼리 즐기고 소통하는 세상이 돼버렸다"며 "우리는 현실의 공기에 짓눌려 있다. 환기구 하나 만들 줄 모른다"고 짚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은 예상보다 훨씬 긴 시간을 지나 찾아온 결정의 순간 자신만의 선택을 내린다. 인간에겐 끝까지 완벽한 자유란 없는 것일까. 작가는 "어느 곳에 있든 자유를 얻는 방식은 내 안에서 다른 차원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현실에서의 나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영토를 만들어내면서 자신의 길을 택했다고 봐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고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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