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된 일상 속 ‘참사 상흔’···“남 일 아니더라”[이태원 핼러윈 참사]
“평소 같았으면 있는 힘껏 몸을 밀어 넣어서 어떻게 해서든 지하철을 탔을 거예요. 오늘은 그게 안 되더라고요.”
서울 영등포구 당산역 인근 직장으로 9호선 급행열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양모씨(33)는 31일 아침 출근길 상황을 떠올리며 말했다. 양씨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를 언급하며 “출근길마다 이러다 사람 다친다는 생각은 했는데, 이번 사건을 보고 나니 압사 사고가 남 일이 아니더라”며 “전날 밤부터 지하철 타기가 무섭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참사 이틀이 지난 이날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한 시민들은 일상 곳곳에서 참사의 상흔을 마주했다. 이른바 ‘지옥철’ 등 밀집 상황에 대한 공포를 호소하는 이부터 잇따라 전해지는 부고 소식에 슬픔을 감추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 국가 애도기간 지정에 따라 행사·축제 등이 줄줄이 취소되자 일부 소상공인과 예술인은 추모의 마음을 표하면서도 “생계에 타격이 있다”고 했다.
회사원 이윤지씨(33)는 “오늘따라 대중교통에 사람이 적은 느낌”이라고 했다. 경기도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 이씨는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사람 많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기 무섭다는 말이 여럿 올라왔다”며 “자차가 있는 사람들은 웬만하면 운전해서 출근하거나 사람 없는 시간을 골라 출근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저도 평소보다 1시간 일찍 나와서 버스를 탔다”며 “압사 사고에 대한 뉴스를 보다 보니 평소에 경험했던 상황이 일반적이진 않구나, 그동안 별일이 없던 게 운이 좋았던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대중교통 밀집 상황에서 대처하는 방법 등을 공유한 글이 수천회 공유됐다.
3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연이어 들려오는 부고 소식에 우울감을 호소하는 이도 있었다. 직장인 A씨는 “오늘 아침 회사 내부망에 본인상이 뜬 걸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며 “뉴스에만 나오는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죽음이 가까이 있더라”고 말했다. 그는 “회사가 이태원 근처인데, 근처를 지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겁고 속상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대학생 김모씨(21)는 “어제부터 여기저기서 ‘누가 이번 사고로 사망했다’ 같은 얘기가 들려온다”며 “가까운 사이는 아니라도 마음이 좋지 않다.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사망했다는 얘기도 들리는데, 무력감같은 게 들어서 뉴스를 최대한 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서로의 안전을 챙기며 위로하는 모습도 보였다. 김씨는 “친척들은 물론이고 고등학교 졸업 이후 연락이 뜸하던 친구들까지 ‘너는 괜찮냐’는 전화나 문자를 하더라”며 “저도 가까운 친구들이 혹시 잘못됐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안부를 묻는 연락을 여러 번 돌렸다”고 말했다. 서울 소재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한 의료진은 “사상자들이 병원에 몰린다는 기사를 보고 ‘괜찮냐’고 묻는 연락이 적지 않았다”며 “의료진의 트라우마를 걱정하는 모습에 이번 사건이 국가적 재난이 맞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정부가 오는 11월5일까지 국가 애도기간을 선포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예정됐던 지역 축제나 행사 등은 일제히 취소되거나 무기한 연기됐다. 코로나19 거리 두기 해제 후 ‘마스크 없는’ 대목을 앞두고 기대감에 부풀었던 소상공인들은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중소 식품기업 사장 B씨는 “유례없는 참사가 났으니 온 나라가 나서서 슬퍼하는 건 동의한다”면서도 “지역 축제 등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면서 납품 예약 취소를 문의하는 전화가 계속 오고 있다”고 했다. 그는 “유가족들 슬픔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코로나 때 워낙 힘들어서 인제야 대목 같은 대목을 맞나 싶었는데 이번에도 한 철을 그냥 보내게 됐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지역 상인회 관계자는 “지자체에서 사전에 상의도 없이 전화 한 통으로 축제를 전면 취소를 했다”며 “사고가 안타까운 것과 별개로 속상한 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악단 운영자 C씨 역시 “11월 중순까지 지방 축제 행사가 20여개 예정됐는데 전부 취소된 상태”라며 “한 달 수익의 최소 절반이 날아가는 셈이다. 참사 여파가 이렇게 우리한테도 미치는구나 싶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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