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회피’ 정부, 커지는 ‘책임론’…국민 살리지 못한 국가[이태원 핼러윈 참사]
절반 이상이 사복경찰…마약 단속 인원
안전관리 지적에 ‘주최 없는 행사’ 반복
전문가 “질서유지는 경찰 업무의 기본”
‘이태원 핼러윈 참사’ 책임론이 공공 안전을 지키지 못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향하고 있다. 핼러윈 데이에 몰린 “10만 인파”를 거론하며 참석자들에게 책임을 미루거나 “경찰·소방 인력으로 막을 수 없었다”는 식으로 사태를 모면하려는 태도가 성난 여론에 불을 지폈다. 전문가들은 “국민을 지켜야 할 정부가 국가의 기본적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31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경찰은 핼러윈 참사가 발생한 지난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일대에서 시민 통행 안내 등 최소한의 조치만 수행했다. 이태원역 주변에서는 안전 지도는커녕 시민들의 차도 진입을 통제하는 인력도 배치되지 않았다. 지난해 행정안전부가 발간한 매뉴얼은 지역 축제가 열리면 안전요원을 우선 배치하도록 하고 있다. 또 행사장에서 최대 수용인원을 검토하고 현장 대응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돼 있지만 이 같은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참사 현장에 배치된 경찰 인력은 기존 계획보다 적었다. 참사 당일 이태원 일대에는 용산경찰서가 기존에 보도자료를 통해 발표한 경력 200명보다 훨씩 적은 137명만 투입됐다. 그마저도 질서유지보다 마약단속을 노린 사복경찰이 절반 이상이었다. 압사 발생 후 심폐소생술(CPR)을 시행할 때 소방·경찰 인력이 현저히 부족해 시민들이 대거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대응은 지난 15~16일 이태원 일대에서 열린 ‘지구촌 축제’ 때와도 대비된다. 이틀간 열린 축제에는 100만명의 시민들이 참가했다. 당시 경찰은 인파가 몰릴 것을 고려해 일정시간 일부 도로에서 일방통행이 가능하도록 제한 조치를 취했다. 현장에서는 용산구청 직원까지 총 1078명이 나와 교통안내와 안전관리 업무를 수행했다.
경찰은 이번 핼러윈 축제 안전 관리가 미진했다는 지적에 “주최 측이 없는 행사”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지구촌 축제 당시 도로 통제 등은 경찰에서 관여했다기보다 행사 주최 측이 용산구청에 허가를 받은 것으로 안다”며 “이번 참사의 경우 경찰관들이 현장 통제를 했음에도 많은 인파가 몰려 대처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김영식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군중이 몰리는 지역은 위험 상황이 발생할 개연성이 높은 만큼 인파를 분산하고 일방통행 등 제재를 가해하는 게 경찰 경비 업무의 기본”이라며 “경찰 차원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인파였다면 그에 못지 않는 대비를 하는 게 상식”이라고 말했다.
행안부는 참사 원인에 대한 ‘공적 책임’을 부인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행안부가 주관한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는 대다수 정부 관계자들이 앵무새처럼 “잘 모른다”고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관련기사 : “질문 다 소화해야 하나요?”···이상민 장관 ‘논란’ 쏙 뺀 행정안전부)
‘과거에 하던대로 했는데도 참사가 발생했다’는 경찰 측 태도, ‘경찰이 참사 방지를 위해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는 취지의 이상민 장관 발언은 ‘국민 안전’이라는 국가의 기본적 책무를 도외시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수도 복판에서 3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참사의 책임이 피해자에게 있거나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천재지변이라면 대체 국가의 역할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경찰의 첫번째 사명이 공공안녕과 질서유지다. 주최 측 여하를 떠나 인파가 지나치게 몰리면 통행을 정리했어야 했다”며 “이 장관의 발언 역시 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 행안부도 이번 참사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강연주 기자 pla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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