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풀기는 스테로이드처럼 반짝효과, 경제 기초체력 다 갉아먹어” [청론직설]

임석훈 논설위원 2022. 10. 31.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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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경상·재정수지 더 취약 상태
尹정부, 지출 축소·민간 주도 방향 옳지만 실행이 중요
자금 지원 적절하지만 ‘좀비’ 퇴출 등 옥석 가리기 필요
‘부자 감세’ 주장은 편가르기 정치술수···미래 생각해야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31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일시적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업을 도와주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하는 부실 기업까지 지원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옥석 가리기를 주문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서울경제]

우리 경제가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삼중고와 경기 둔화로 위기에 직면했다. 재정수지와 무역수지 적자가 계속되는 가운데 올 8월 경상수지마저 적자로 전환되면서 ‘쌍둥이 적자’가 현실화됐다. 또 자금 시장에 돈줄이 말라 우량 대기업마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정도다. 한국제도경제학회장을 지낸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31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한국 경제는 글로벌 금융 위기 때보다 취약한 상태”라면서 “경기를 살린다고 돈을 풀면 스테로이드 주사처럼 반짝 효과는 있겠지만 경제의 기초 체력을 다 갉아먹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의 민간 주도 경제정책에 대해 “방향을 잘 잡았는데 문제는 실행력”이라며 “대통령이 서로 고통을 분담해야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호소하고 야당도 설득하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3고(高) 파고와 쌍둥이 적자 등 악재가 겹치면서 ‘한국 경제 위기설’이 나오고 있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경상수지마저 8월에 30억 5000만 달러 적자로 돌아서면서 한국 경제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상 적자는 우리가 번 돈보다 쓴 돈이 더 많았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외국에 대한 부채가 증가했음을 나타낸다. 개인이 빚을 얻어 과도한 소비나 잘못된 투자에 사용하면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고 결국 파산하게 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경상 적자는 우리 경제에 울린 위험신호임이 분명하다.

-문재인 정부 기간 가파르게 증가한 재정 적자 문제도 심각하다.

△올 상반기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101조 9000억 원으로 2019년 이후 4년 연속 적자를 냈다. 재정 적자 확대는 정부의 비대화를 반영한다. 정부가 커지면 개인들은 생산 활동에 참여해 소득을 늘리려 하기보다 재정 지출에 의존하려는 경향을 나타낸다. 자원이 생산적인 것에서 비생산적인 사용처로 이동하게 되는 셈으로, 결국 경제성장을 방해한다. 또 정부의 시장 개입이 많아졌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는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기업가 정신을 방해해 경제 활력을 떨어뜨린다. 과도한 정부 지출 증가는 소비와 생산구조를 왜곡해 과다한 소비와 잘못된 투자를 야기하는 문제도 있다.

-하지만 정부는 전반적인 경제 여건이 ‘괜찮다’고 말하고 있다.

△정부는 우리 경제가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고 하지만 경제 상황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와 상당히 비슷하다. 오히려 그때보다 더 취약한 상태다.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졌을 당시 우리의 경상수지는 흑자였다. 재정 적자도 크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반(反)시장 정책으로 인해 경제의 기초 체력도 많이 약해졌다. 현재 우리 경제는 조그마한 악재에도 시장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다. ‘레고랜드 사태’는 한국 경제가 얼마나 취약한 상황인지 여실히 보여줬다.

-정부가 최근 자금 시장 경색을 진정시키기 위해 50조 원 이상을 투입하기로 했는데.

△적절한 조치로 보인다. 일시적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업들을 도와주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해 신용 위기에 처한 부실 기업, 즉 좀비 기업까지 지원하면 곤란하다. ‘옥석 가리기’를 해야 한다. 좀비가 건강한 사람을 물면 그 사람도 좀비가 되듯이 좀비 기업이 연명하면 건실한 회사도 망가질 수 있다. 어느 나라든 자원은 한정돼 있다. 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배분해 사용하느냐에 따라 경제의 성장과 쇠퇴가 결정된다. 부실 업체가 퇴출되지 않으면 자원 사용 비용이 계속 올라가고 결국 산업 전반의 경쟁력이 떨어진다.

-일본 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지게 된 원인 중 하나로 기업 구조 조정 실패가 거론된다.

△일본 정부의 가장 큰 실책은 좀비 기업을 과감하게 정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구조 조정을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데 잠깐 시늉만 하다가 말았다. 이로 인해 부실 업체들이 계속 생명을 유지하는 바람에 일본 경제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생산성은 향상되지 않았다. 일본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망할 기업은 망하게 놓아두어야 한다.

-우리 경제에 닥친 위기를 뚫고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쌍둥이 적자의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부의 지출을 축소해 재정 적자를 줄여야 한다. 성장 동력을 떨어뜨리고 과도한 소비와 잘못된 투자를 야기하는 경직된 노동시장을 개혁하는 것도 시급하다. 기업 규제를 비롯해 정부의 반시장적 정책을 철폐하고 징벌적 세금 체계도 바꿔야 한다. 무엇보다 기업과 기업가가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경제를 살리려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생산을 늘려야 한다. 그 주체는 민간이고 그중에서도 기업과 기업가이다. 기업 활동을 잘 할 수 있게 해줘야 혁신 등 역동성이 살아나 산업 경쟁력이 높아지고 경제가 성장한다. 이는 결국 국부를 키우고 국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

-거대 야당 등에서는 위기 돌파를 위해 돈을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문제는 유동성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돈을 풀어서 경제가 살아나고 잘살 수 있다고 하면 지구상에서 잘살지 못하는 나라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돈 풀기 정책을 폈던 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그리스 등의 경제가 어떻게 됐나. 이들 중 잘사는 나라를 찾아볼 수 없다. 화폐, 즉 돈은 스테로이드와 비슷하다. 몸이 불편할 때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으면 갑자기 힘이 나지만 반짝 효과에 불과하고 결국 건강을 해친다. 화폐도 마찬가지다. 돈을 시장에 계속 풀면 잠깐 경기가 살아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경제의 기초 체력을 다 까먹는 결과를 초래한다. 통화 공급, 재정 지출은 시장에 ‘돈맥경화’가 발생했을 때 안정시키는 정도에 그쳐야 한다. 소비 진작과 경기 부양을 하겠다고 돈을 푸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지금은 정치권과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정교한 통화·재정 정책 조합을 모색해야 할 때다.

-가계 부채나 부동산 문제의 실타래도 결국 경제가 성장해야 풀리는 것 아닌가.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으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102.2%로 주요 35개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조사 대상 국가 중 가계 부채가 GDP를 웃도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 가계 부채 문제의 핵심은 부채 상환 능력이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부채 상환 능력이 떨어진 한계 가계들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우선 금융시장이 받는 충격을 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채 조정 제도 등을 활용해 한계 가계의 빚 상환을 유예해주거나 규모를 조정해줘야 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법은 소득 증가와 일자리 창출을 통해 부채 상환 능력을 높여주는 것이다. 왕성한 기업 활동으로 경제가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 부동산 문제도 가계 부채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민간이 더 잘 뛸 수 있도록 더 좋은 유니폼과 운동화를 공급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간 주도 경제정책 기조를 다시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은 법인세 인하 등 감세, 규제 완화, 정부 지출 감소 등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되는데 방향을 잘 잡은 것 같다. 문제는 실행이다. 국회가 ‘여소야대’ 상황이어서 정부 입장에서는 정책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은 여건이다. 법안이 국회에서 발이 묶인 것은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야당의 책임이 크다. 그렇더라도 국정 운영의 책임이 있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국민들에게 서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통을 감내해야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는 점을 호소하고 야당도 설득해야 한다. 정책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 대통령의 정치력 발휘가 절실한 때다. 정치 지도자가 시장경제 마인드를 갖고 실행하는 리더십을 발휘하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다.

-법인세 인하 등에 대해 야당은 ‘부자 감세’라며 거세게 반대하고 있는데.

△감세 정책의 본질은 납세자들의 실질소득을 늘려 경제 활성화를 꾀하는 것이다. 납세자들의 실질소득이 증가하면 감세분 중 일부를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는 데 사용함에 따라 기업 매출이 증가해 경기도 살아난다. 더 중요한 것은 감세로 인한 소득 증가가 저축을 촉진한다는 점이다. 저축은 생산을 증가시키는 원천이다. 궁극적으로 감세를 하면 소비와 투자가 활성화되고 일자리도 늘어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거래도 증가하게 돼 서민과 중산층·중소기업까지 혜택이 돌아가게 된다. 그런데도 법인세 인하, 종합부동산세 감면으로 혜택을 받는 계층은 일부 부자와 대기업이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갈라치기 하려는 정치적 술수에 불과하다. 진정 국가의 장래와 민생을 위한다면 ‘부자 감세’ 프레임을 씌워 반대할 일이 아니다.

-감세 정책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를 꼽는다면.

△미국의 레이거노믹스다. 1980년대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감세와 규제 완화, 정부 지출 축소를 밀어붙였다. 그 결과 레이건 행정부 기간(1981~1989년)에 미국 국민의 평균 실질소득이 75% 늘어났고 실질 GDP 증가율은 연평균 3.5%에 달했다. 미국 연방정부의 조세수입도 1980년 5170억 달러에서 1989년 1조 320억 달러로 불어났다.

◆He is···

1954년 군산에서 태어나 경희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해왔으며 현재는 명예교수다. 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경희대 부총장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흐름으로 읽는 시장경제의 역사’ ‘화폐와 통화정책’ ‘한 권으로 읽는 국부론(역서)’ 등이 있다.

임석훈 논설위원 sh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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