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관리 미흡 법적 책임 ‘국가’에 물을 수 있을까[이태원 핼러윈 참사]

이혜리·김송이·박용필 기자 2022. 10. 31.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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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추모공간에서 31일 이태원 핼러윈 피해자들을 위한 꽃들이 놓여 있다. 한수빈 기자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톤호텔 일대에서 지난 29일 밤 발생한 압사 사고는 주최자가 없는 상태에서 벌어진 인명 사고였다. 주최측이나 안전 책임자를 특정할 수 있는 인명 사고와는 달리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 법적으로 사고 책임을 묻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안전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은 지자체나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에는 충분하다는 견해도 있다.

이번 참사를 중대재해처벌법에 규정된 중대시민재해로 볼 여지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다만 법률상 중대시민재해는 공중이용시설이나 교통수단 등에서 발생한 재해로만 규정돼 있어 이번 사고가 발생한 ‘골목길’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반론이 만만치 찮다.

경북 상주에서 2005년 11명이 사망한 콘서트 압사 사고 때는 이 행사를 상주시와 MBC가 주관해 책임 소재가 명확했다. 검찰은 상주시장과 시 공무원들, MBC 관계자를 형법상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했고 법원은 유죄를 확정했다. 법원은 행사 주최자들이 사고를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비인력과 장비를 충분히 확보하지 않았고 관중 통제가 되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적극적으로 경찰에 인력을 요청하고 대체인력을 동원하는 등 인명피해를 방지할 구체적·직접적 주의의무가 있는데도 그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의 경우 주의 의무가 있는 주최자가 없는 현장에서 벌어졌다는 점이 법적 책임 소재를 가리기 어렵게 하는 맹점이다. 검·경 수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지자체나 경찰 등의 잘못을 밝혀낼 가능성은 있지만, 이것이 형사적으로 처벌 가능한 만큼일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책임 소재가 분명해 보이는 공무원의 ‘업무상 과실치사’ 사건에 대해서도 법원 판단은 엇갈렸다. 백남기 농민이 사망한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에 대한 지휘·감독을 소홀히 한 혐의로 기소된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1심 무죄, 2심 유죄였고, 세월호 승객들을 제대로 구조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된 해경 관계자들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기도 했다.

이번 사고가 중대재해법상 ‘중대시민재해’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중대시민재해는 특정 원료 또는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공중교통수단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상의 결함을 원인으로 발생한 재해를 말한다. 이 법에서 말하는 공중이용시설에 이번 사고 발생 도로가 해당되는지를 두고는 법조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31일 “법 해석상 일반 도로나 골목길도 중대시민재해 대상으로 보고 관리주체인 지방자치단체를 처벌할 소지가 있기는 하다”면서도 “골목길에 위험한 장애물 등 명백한 하자가 있을 경우 적용 가능성이 있는 것이고 골목길 자체에는 문제가 없는데 수만명이 모여 사고가 났다는 것만으로는 적용이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책무를 지며 각종 사고를 예방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다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이 책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 처벌하는 벌칙 조항은 없다.

참사 피해자들이 제대로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 사고를 발생시킨 국가의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낼 수는 있다. 대법원은 ‘공무원의 부작위(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 인정과 관련해 “형식적 의미의 법령을 위반하는 경우만이 아니라 인권존중·권력남용금지·신의성실과 같이 공무원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준칙이나 규범을 지키지 않고 위반한 경우를 포함해 널리 객관적인 정당성이 없는 행위를 한 경우를 포함한다”는 판례를 유지하고 있다. 이 법리에 근거해 대법원은 최근 경찰이 출소한 범죄자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또 살인을 저지르게 한 ‘중곡동 주부 살인 사건’에서 국가 책임을 인정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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