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하고도 깊은 배우, 송새벽

서울문화사 2022. 10. 3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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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살고 있는 그는 어제 서울에 올라와 밤잠을 설쳤다며 멋쩍은 듯 웃어 보였다. 그렇게 잔잔하게 인터뷰가 시작됐다.

오랜만에 기자와 마주한 배우 송새벽은 첫 인터뷰 때를 떠올렸다. “영화 <마더> 때였나?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안 나요. 너무 긴장했거든요. 먹었던 게 체할 만큼요.”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어엿한 ‘유명 배우’, ‘흥행 배우’가 된 그는 정장을 멀끔하게 입고 있고, 연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멀끔한 슈트 너머 10년 전의 순수함이 보인다. 송새벽은 변한 게 없다.

그가 출연한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며 ‘연기 참 잘한다’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었다. 나른한 말투와 묘한 표정. 극과 극을 오가는 캐릭터일지라도 그는 늘 한결같이 송새벽스럽게 연기한다. 무언가를 보여주려고 애쓰지 않는다. 고백하건데 필자는 코미디 영화에 큰 기대가 없다. 한데 송새벽이 출연한다면 달라진다. 어떻게 연기했을까? 무표정한데 웃길 것 같다. 송새벽이 영화 <특송> <브로커>에 이어 코미디 영화 <컴백홈>으로 연이어 관객과 만난다. 영화 <컴백홈>은 모든 것을 잃고 15년 만에 고향으로 내려온 ‘기세’가 거대 조직의 보스를 상속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극 중 송새벽은 기세 역을 맡았다. 기세는 20억으로 인생 역전을 꿈꾸는 짠내 폭발 무명 개그맨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송새벽은 특유의 나른한 말투와 묘한 표정이 트레이드마크인 연기파 배우다. 2009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에서 ‘세팍타크로 형사’ 역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해 2010년 영화 <방자전>의 ‘변학도’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눈도장을 찍었다. 이후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 <위험한 상견례> 등의 작품에서 유쾌한 매력을 뽐내며 ‘코미디 장인’으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통해 고퀄리티 연기를 선보였다.

<컴백홈>은 영화 <거북이 달린다>(2009), <피 끓는 청춘>(2014) 등 생활 밀착형 유머 코드로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이연우 감독의 8년 만의 신작이다. 송새벽 외에도 ‘베테랑 배우’ 라미란, 이범수가 출연한다.  

나는 템포가 느린 사람

영화 <컴백홈>의 개봉을 앞둔 소감은?

매번 코미디 영화가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촬영 때도 그랬다. 긴장이 많이 된다. 걱정이라기보다는 대중이 어떻게 볼지 너무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재미있게 잘 봤다. 예전부터 이연우 감독의 팬이었다. 다만 코미디 장르가 어렵다는 생각에 걱정스럽기도 했다.

출연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뭔가?

개인적으로 극 중 캐릭터가 나와 닮은 부분이 많았다. 나는 지방에서 극단 생활을 하다가 서울 대학로에 올라온 케이스다. 이 인물도 지방에서 개그맨을 꿈꾸며 상경해 대학로에서 포스터를 붙이고 전단지를 돌린다. 예전의 나를 보는 듯한 느낌이 친근했다. 덧붙이자면 이연우 감독의 작품들을 좋아하기도 했다.

시사회 반응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나?

사실 인터넷 검색을 즐기는 편이 아니다. 가끔 내 이름을 검색해보는 정도다.(웃음) 사실 우리 집이 제주도에서도 시골 쪽이라 인터넷이 잘 안 된다.(웃음) 주변에서는 재미있다고들 해줘서 전해 듣고만 있다.

영화를 이끄는 역할인데 부담은 없었나?

내가 이끌어가는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겸손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역할마다 캐릭터가 너무 잘 배어 있어 내가 오히려 다른 배우들에게 의존했다. 보면 알겠지만 역할들이 다 살아 있어 나만 잘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작품마다 연기자로서의 마음가짐은 항상 있다. 나에 대한 대중의 기대가 있을 것이고, 그 마음을 머금고 고민하며 연기한다. 어떤 장면이든 내게 주어진 장면을 잘 표현해내고 싶다.

영화 속 캐릭터 중 무명 배우나 신인 배우 캐릭터가 종종 있다. 실제 연기를 해보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궁금하다.

나는 지방에서 극단 생활을 했고,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로에 와서 극단 생활을 이어서 했다. 그땐 모든 배우가 그랬을 것이다. 주머니 사정은 뻔하지만 정말 재미있고 즐거웠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지 않나. 좋은 작품으로 무대에 계속 설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부러울 게 없는 시절이었다. 차비가 없어서 명절 때 고향에 못 간 적도 있었다. 하다못해 식용유 한 통이라도 사 들고 가야 하는데 그걸 못했다. 그런 시절을 보냈다. 결혼이나 연애에 관한 생각도 없었다. 내 입에 풀칠하기도 바빴던 시절이니까. 오로지 연기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단 한 번도 연기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나뿐만 아니라 당시 함께 활동했던 동료들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열정이 지금도 있나?

상대적인 거 같다. 상황이나 여건은 예전에 비해 좋아졌지만, 과거에 내가 가지고 있던 열정이나 캐릭터에 대한 갈증 등등 그때의 에너지를 지금 못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잘 모르겠다. 양면성이 있는 것 같다. 그때가 더 뜨거웠던 거 같다. 20대 때는 빨리 내 길을 찾아가야 한다는 팔팔한 에너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줄어든 것 같기도 하다.

조폭을 소재로 한 영화는 무수히 많다. 그래서 진부하다는 선입견도 있다.

얼마 전에 친구에게서 뜬금없이 연락이 왔다. 지하철역에서 <컴백홈>의 광고 포스터를 봤는데 포스터만 봐도 뻔한 이야기일 거 같다고 하더라. 워낙 짓궂은 친구이긴 한데 참 솔직했다. 그때 우스갯소리로 개봉도 안 했는데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웃음) 내가 생각했을 때는 ‘상황의 장치’라고 해야 할까. 결국 그 안에서 우리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영화가 뻔했다면 나도 출연을 고려해봤을 거다.(웃음)

‘무명 개그맨’ 캐릭터다. 덕분에 작품 안에 진짜 개그맨들도 출연했다.
개그맨들과 잠깐 촬영하면서 느낀 게 있다. 영화 상에서는 짧게 나오지만 옆에서 실제로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주 새로운 아이디어로 콩트를 짜서 관객들에게 보여주지 않나. 우리처럼 몇 달간 다 써진 대본을 잡고 있다가 촬영에 들어가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그걸 어떻게 하나 싶었다. 옆에서 보니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하더라. 김대희 씨도 촬영 현장에서 처음 만났는데, 대단한 분이더라. 출연한 개그맨들이 너무 바빠 아쉽게도 식사 자리는 갖지 못했다.

아역 배우들과는 호흡을 어떻게 맞췄나? 싱크로율도 높았다.
딸로 나온 아역 배우가 수줍음이 많다. 사실 같이 밥도 먹고 음료수도 한잔하고 싶었는데 컷 하면 어머니랑 같이 사라지더라.(웃음) 연기할 때는 집중하고 컷 하면 바로 수줍어한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이연우 감독이 캐스팅을 제대로 했다고 자신만만해하더라. 그래서 너무 궁금했다. 처음 만났는데 싱크로율이 높아서 나도 웃음이 터졌다. 그런데 연기까지 잘하더라.

극 중에서 직접 고등학생을 연기하기도 했다. 어땠나?
난감했다. 이래도 되나 싶었다. 가발도 쓰고 메이크업도 많이 했다. 보기에 어색하지 않았나?(웃음)

배우 라미란과 이범수도 출연한다. 호흡은 어땠나?
글쎄, 내가 뭐라고 평가할 수 있는 배우들이 아니지 않나. 일단 나는 이범수 선배와 라미란 선배의 팬이다. 특히 이범수 선배는 아주 오래전부터 코미디 연기를 했고, 나도 그의 연기를 봐왔다. 라미란 선배도 그렇다. 어떤 매력인지는 관객들 모두 알 거라고 생각한다. 라미란 선배는 촬영 들어가기 전에 내가 살고 있는 제주도로 놀러 왔다. 밥 한 끼 먹자고 하시더라. 상견례를 한 느낌이랄까.(웃음) 얘기도 많이 나누고 밥도 같이 먹어 촬영할 때 한결 편했다. 주변을 편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이범수 선배는 애초에 궁금했던 선배이기도 했고, 또 조금은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동안 해왔던 캐릭터들이 강하지 않나. 실제로 만나보니 굉장히 유쾌하고 농담도 많이 하신다. 촬영장에서도 그랬다. 덕분에 현장 분위기가 좋았다.

라미란 씨는 동시에 다른 영화 <정직한 후보2>가 개봉 중이다.
또 다른 매력을 발산 중이라고 스스로 얘기하고 다니더라.(웃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고 딱 자르더라. 그래서 부담이 적다.

고향 친구로 나왔던 네 배우들과의 호흡도 인상적이었다.
알고 보니 다 또래 친구들이더라. 또 다들 연기를 너무 잘해서 ‘아재 느낌’이 제대로 살았다. 의상, 말투, 분장, 헤어스타일도 시골 아재 느낌이 나서 리딩할 때부터 빵빵 터졌다. 내가 79년생인데 대학로에도 79년생이 많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또래를 만나 연기하니까 재미있더라. 또래끼리는 얘깃거리도 많지 않나.

최근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에 특별 출연으로 참여했다. 감독과 특별한 인연이 있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아이유와 마찬가지로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고 나를 캐스팅했다고 들었다. 나 역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팬이다. 감독님의 작품을 다 봤다. 예전에 영화 <도리화가> 여수 촬영장에 감독님이 오셔서 인사를 드린 적이 있다. 짧았지만 <브로커> 촬영 현장도 무척 좋았다.

제주도 생활은 어떤가?
정말 산속에 산다. 부락 같은 작은 마을이다. 7~8가구만 있는데, 그래도 젊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 시내에 나가면 극장이 있긴 해서 간혹 가지만 편안하게 자주 가지는 못한다. 개봉을 앞두면 사람 마음이 그렇다. 여유롭지 못하고 걱정이 앞선다. 시간은 많은데 다른 걸 못 하겠더라.

제주도 생활에 만족하나?
내년이면 10년이 된다. 처음엔 살다가 아니면 올라가자 생각했는데 10년이 된 거 보니까 앞으로도 제주도에서 살지 않을까 싶다. 지금 마음은 그런데 사람 일은 모르니까 장담은 못 하겠다. 내 성격이 매사에 느린 편이다. 예전부터 빠르다는 얘기를 한 번도 못 들었다. 말투부터가 그렇다. 사실 지금도 빨리 말하려고 노력 중인데, 일상에서는 좀 더 느린 거 같기도 하다. 나는 템포가 급한 게 싫다. 별다른 게 제주도의 매력이 아니고 그냥 자연스럽게 살게 됐다. 살다 보니 시간이 흘렀다. 촬영할 때도 근처에 숙소를 잡아두고 왔다 갔다 하고 있어 제주도에 사는 게 특별히 불편하지는 않다.  

 

 제주에 터를 잡은지 10년이 됐어요.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흘렀네요. 

작은 시골 마을에 사는데 느린 템포의 저와는 그럭저럭 잘 맞아요.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을 보면 웃기거나 심각한 거다. 아쉬움은 없나?

맞다. 극과 극의 캐릭터만 해왔더라. 언젠가부터 나도 고민이 생기더라. ‘나에게는 왜 중간 캐릭터가 안 들어오지?’ 하는 아쉬움도 있다. 갈증이 있다. 악당 역할을 한 적이 있는데 힘은 좀 들었지만 연기자로서는 재미있게 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악몽도 많이 꾸고 잠도 잘 못 잤지만 결과물은 뿌듯했다. 쉬운 건 없다. 코미디 영화도 어렵다. 숙제의 연속이다.

코미디 연기에 임하는 철학이 있나?
거창하게 그런 거 없다. 그저 매 장면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코미디 장르라 해도 웃기려고 뭔가를 하진 않는다. 매번 그랬던 것 같다. 코미디든 다른 장르든 상황에 집중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오버하면 도리어 위험하다. 어둡고 빡센 상황인데도 뒤에서 보면 우스꽝스러울 때가 있지 않나. 그런 느낌이다.

인생의 모토나 좌우명도 궁금하다.
없다.(웃음) 나는 단순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안 그래도 단순한데 머리가 복잡해지면 참기 힘들어진다. 단순한 템포가 나에게 맞는다. 그래야 편안하게 사는 것 같다. 그래서 한 번에 일을 2가지 못 한다. 멀티플레이어가 간혹 부럽기도 하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결론을 내린 게 더욱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하나라도 제대로 하자는 주의다.

성격상 연예계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었을 것 같다.
예전에 삼청동에서 기자들과 인터뷰했던 날이 생각난다. 영화 <마더>때였던 것 같다. 너무 긴장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뭔가 들었다 놨다 하는 느낌이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체하기까지 했다. 계속 연극 무대에 서다가 독립 영화를 찍고 그 후에 상업 영화를 찍고 인터뷰하게 된 상황이었다. 앞에서 기자들이 질문하는데 긴장돼서 힘들었다. 무대 인사 때도 그랬다. ‘내가 거길 간다고?’ 스스로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름대로 적응이 되더라. 물론 아직도 긴장과 떨림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처음 영화를 찍을 때보다는 10여 년이 지나서인지 조금 괜찮아졌다.

다시 무대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나?
당연히 서고 싶다. 그런데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서울에 오면 대학로 극단 대표님과 만나 이야기도 많이 나눈다. 하지만 무대에 서려면 다시 정비해야 한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것과 관객 앞에 서는 건 굉장히 다르다. 얘기는 계속 오가고 있다.

오늘 인터뷰 자리는 낯설지 않았나?
편했다.(웃음)

에디터 : 하은정 | 사진 제공 :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영화 <컴백홈>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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