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폐기, 의상 금지" K콘텐츠서 금기가 된 '핼러윈'
방송사, K팝 기획사도 핼러윈 지우기
줄줄이 멈춘 '문화 공장'... "모두의 안녕 기원" 트라우마 극복 희망 메시지 잇달아
서울 이태원 일대에서 벌어진 핼러윈 축제 참사로 K콘텐츠 시장이 '핼러윈 지우기'에 나섰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는 핼러윈 특집을 전면 중단했고, 방송사는 핼러윈 축제 관련 촬영분을 폐기하고 있다. K팝 기획사는 핼러윈 콘텐츠 제작을 일제히 멈췄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발생한 최악의 인명 피해로 2030세대 축제의 상징이 금기가 된 것이다.
'할로윈에는 이들과 함께'. OTT 티빙 메인 화면에선 31일 기준 호박 등불 모양의 이모티콘과 함께 이 문구가 사라졌다. 29일부터 드라마 '마녀 식당으로 오세요'와 예능 프로그램 '고스트 하우스' 등 공포물을 선별해 소개한 코너였다. 티빙 관계자는 이날 "'이태원 핼러윈 사고' 후 핼러윈 큐레이션(추천) 서비스를 30일 오전부터 중단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OTT 왓챠도 '당신이 바로 할로윈의 주인공' 등 특집 코너를 모두 내렸다.
TV에서도 핼러윈 축제는 속속 지워지고 있다. KBS는 이달 초 방송 예정으로 핼러윈 콘셉트로 촬영한 '1박2일' 촬영분을 내보내지 않기로 했다. 한 방송사는 이번 핼러윈 축제 주간을 맞아 예능프로그램 제작진이 사전에 찍어둔 축제 준비 영상을 내보내지 않기로 했다. 이 프로그램 관계자는 "이번 주 방송 분량의 50%가 핼러윈 축제 준비 에피소드였는데 사고로 모두 쓸 수 없게 됐다"며 "당장 촬영분이 없어 결방 등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K팝 기획사들은 핼러윈 프로젝트를 서둘러 중단했다. 아이돌그룹 브레이브걸스를 비롯해 B1A4, 엔하이픈, 오마이걸, 아이칠린 등은 이날 선보일 예정이었던 핼러윈 맞이 안무 영상 그리고 의상 사진 등 콘텐츠 공개를 줄줄이 취소했다. 루미너스와 블리처스 등은 이날 예정된 핼러윈 라이브 방송 계획을 철회했다. K팝 아이돌은 매해 핼러윈 시즌을 맞아 독특한 의상과 이벤트를 준비해 국내외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 왔지만 앞으로 이런 이벤트를 공개적으로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목소리다.
남성 아이돌그룹을 데뷔시킨 K팝 기획사 대표는 "핼러윈 시즌을 맞아 의상을 맞춰 안무 영상을 찍어놨지만 사고로 모두 폐기 처분해야 할 상황"이라며 "핼러윈이 잊어선 안 될 비극이 돼 앞으로는 핼러윈 시즌에 관련 이벤트를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안방 데뷔 앞두고 스러진 청년... 멈춘 '문화 공장'
이태원 참사로 '문화 공장'은 가동을 멈추는 분위기다. 방송 영화 음악 공연예술계 모두 제작발표회 등 행사를 멈추고 애도와 추모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MBC 새 드라마 '꼭두의 계절' 제작진은 촬영을 중단했다. 함께 작업하던 배우 이지한(24)이 이태원 참사로 사망해 추모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2017년 Mnet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101' 시즌2에 출연한 그는 이 드라마로 안방극장에 데뷔할 예정이었으나 꿈을 채 이루지 못하고 스러졌다.
11월 5일까지 국가애도기간이 선포되면서 K팝 스타들의 신작 공개도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엑소 멤버 첸, 정은지, 용준형, 엑스디너리 히어로즈, 아이리스, 드리핀 등은 신곡 공개를 연기했다. 방송사들은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 '마녀의 게임'(MBC) '동상이몽2- 너는 내 운명'(SBS) '스트릿 맨 파이터'(Mnet) '줄 서는 식당'(tvN) '아는형님'(JTBC) 등 예능과 드라마의 편성을 잇따라 취소했고, OTT들은 신작 콘텐츠 공개('더 패뷸러스'·넷플릭스)를 뒤로 미뤘다.
공연예술계도 추모를 위해 잠시 멈췄다. 국립정동극장은 11월 1일 예정된 연극 '맥베스 레퀴엠' 제작발표회를,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이날 석관동 캠퍼스에서 진행할 예정이던 개교 30주년 축하 행사를 각각 연기했다.
"꽃다운 나이의 친구들"... 해외에서도 애도
늘 대중과 함께 하는 예술인들의 추모는 계속됐다. 김신영은 이날 생방송된 MBC 라디오 '정오의 희망곡 김신영입니다'에서 "주말 동안 많은 분이 서로 안부를 챙기고 안타까운 마음을 나누었을 것 같다. 안녕이라는 말이 어느 때보다 와닿는 월요일"이라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빅뱅 멤버 지드래곤과 2NE1 출신 공민지, 배우 고소영, 김희선 등은 SNS에 '프레이 포 이태원(PRAY FOR ITAEWON)'이란 문구가 적힌 사진이나 문구를 올렸다.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바람도 모였다. 록밴드 자우림의 김윤아는 "부상당하지 않았다고 해서 다치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며 "자신의 마음을 잘 돌봐달라. 모두의 안녕을 기원한다"고 바랐다.
해외에서 활동 중인 예술인들도 고국에 추모의 뜻을 전했다. 프랑스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로 활동 중인 박세은은 SNS에 '프레이 포 이태원' 이미지를 올렸고, 유럽에서 주로 활동하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는 "멀리 있지만 늘 그리운 고국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사고 소식에 슬픔을 가눌 길이 없다"며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피해자와 유족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글을 올려 슬픔을 함께 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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