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온 재난'…합동 분향소 찾는 시민들
[이상현 기자(shyun@pressian.com)]
'가습기살균제' 참사로 2011년에 32살의 동생을 떠나보낸 A씨는 31일 오후 서울광장 합동분향소를 나오며 연신 눈물을 닦았다. 분향소를 나와 시청 광장을 걸으면서도 눈물을 참는 그의 몸이 들썩거렸다. 그는 "동생의 죽음이 많이 생각났다"라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동생을 보내고 나서 재난을 볼 때마다 참담하고 마음이 아파요. 가습기살균제도 그렇고, 세월호도 그렇고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는데 또 막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같은 날 오후 2시경. 녹사평역 광장에도 합동분향소가 설치됐다. 노란색 옷을 입은 30여 명의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관광버스에서 내려 이곳을 찾았다. 분향소 앞에서 묵념을 마친 유가족들은 연신 눈물을 닦아내고, 서로를 다독였다.
한 유가족은 "트라우마가 나타날까 봐 뉴스도 보지 않고 있다"면서도 "이렇게라도 해야 될 것 같아서 조문을 왔다"고 말했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장동원 총괄팀장은 조문을 마친 뒤 "가족들끼리 아픔을 같이하기 위해 올라왔다"라며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 우리 사회가 달라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다"라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지원 등 이태원 참사 피해자 유가족을 위한 지원이 끝까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오전 10시부터 서울시청 광장과 녹사평역 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는 평일 점심~오후 시간임에도 조문을 위한 시민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대열에는 가습기살균제, 세월호 등 많은 이들의 죽음이 있었던 '사회적 참사'를 겪은 이들도 함께였다. 수차례 대규모 죽음을 겪은 시민들은 또 다른 참사에 슬퍼하며 "왜 우리나라는 항상 일이 터져야 대응을 하느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가사도우미 일을 하러 가기 전 추모를 위해 서울시청 광장에 들렀다는 김숙이(59) 씨는 "'위'에서 질서 관리를 잘했으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라며 "사고가 터지고 나서 나서는 게 아니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25세의 B씨는 또래 시민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시청광장 조문소에 나왔다. 서울시 노원구에 거주하는 B씨는 사고 이후 지인들의 안부를 묻는 연락을 돌리기도 했고, 괜찮냐는 연락을 받기도 했다.
검은색 옷을 차려입고 온 B씨는 "아무래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보니 국가에서 발생하는 사고를 보고 많이 고민하게 된다"며 "인명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정부도 그렇고, 지자체나 공공기관에서도 먼저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녹사평역 분향소에는 외국인 조문객들도 보였다. 이태원 근방에서 7년을 살았다는 미국 텍사스 출신 에이프릴(32) 씨는 "사고가 난 곳은 친구와 자주 놀러가던 곳"이라며 "매일같이 걷던 길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너무 아파 찾아왔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그의 친한 친구는 참사 당시 인근 길을 지나가다 구조활동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에이프릴 씨는 "콘서트장과 같이 밀폐된 곳이 아니라 길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소식에 놀랐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라며 "어디에서든 이런 참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사고 현장 조사에 나서는 경찰 현장감식반 직원들도 사고 현장으로 가기 전 녹사평역 광장을 찾아 조문하고 사고 현장으로 떠났다.
서울 곳곳에 세워진 합동분향소…시민들 발걸음 이어져
국가애도기간인 다음 달 5일까지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합동분향소가 서울 곳곳에 세워진다. 서울시와 용산구가 각각 서울광장과 녹사평역 광장에 합동분향소를 마련했고, 다른 지자체 및 교육청도 분향소를 설치해서 시민들의 조문을 받고 있다. 녹사평역 광장에 세워진 분향소 옆에는 재난심리지원센터도 마련됐다.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 분향소에는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포함해 각부 장관들이 오전부터 찾아와 조문했다.
행정안전부 이상민 장관은 오전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조문 후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라는 전날 브리핑 내용에 대해 "과연 경찰의 병력 부족으로 인한 사고였는지 아니면 근본적으로 우리가 집회나, 어떤 모임에 있어서 시정해야 될 것이 있는건지 그런 것을 보다 깊게 연구를 해야 된다"라며 "섣부른 결론을 내고 원인이 나오기도 전에 이런저런 추측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취지에서 드린 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상현 기자(shyun@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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