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콘서트 인파도 감당 못한 부산시, 박람회 유치 가능할까

한겨레21 2022. 10. 31.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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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5일 공연을 본 뒤 부산시에 묻고 싶은 말 ‘세계박람회 유치 의지와 능력이 있는가’
주최 쪽이 떠넘긴 안전 책임은 팬들이 대신…대형사고 없었던 이유는 ‘아미’의 선한 행동력
2022년 10월15일 방탄소년단 콘서트 현장. 초대석 자리가 비어 있어서 불빛으로 만든 글씨가 잘 안 보인다. 방탄소년단 공식 트위터
‘방탄소년단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기원 콘서트’ 부산 공연에 어렵게 참석한 ‘아미’이자 케이(K)팝 칼럼니스트 최이삭씨가 글을 보내왔다. _편집자

2022년 10월17일.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기원 콘서트’가 끝난 이틀 뒤. 방탄소년단(BTS)의 병역 이행 계획이 발표됐다. 1992년생 맏형 진을 시작으로 모든 멤버가 순차적으로 입대하여 제대한 뒤 2025년 팀 활동을 재개하겠다는 내용이다. 곧바로 진의 첫 솔로 싱글 <디 애스트로넛>(The Astronaut)의 트레일러가 공개됐다. 이 곡을 공동작곡한 콜드플레이의 리더 크리스 마틴은, 진의 ‘예정된 부재’가 창작의 영감이 됐다고 말했다. 작곡 시점과 프로모션 일정을 거슬러 올라가면 방탄소년단의 병역 이행 계획이 꽤 오래전 구체화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장에서 찾을 수 없는 ‘결정적’ 전략

방탄소년단이 물밑에서 입대 전 계획을 착실하게 수행하는 동안, 여론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이전까지 방탄소년단의 병역 관련 논의는 ‘대중문화예술인의 대체복무 허용’이 요지였다. 순수예술인에게만 적용되는 대체복무 제도를 현실에 맞게 손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수년 동안 오갔다. 그러나 박형준 부산시장이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홍보대사 활동만을 위한 대체복무를 주장하며 호의적이던 여론이 급반전됐다.

근본 원인은 부산시가 왜 세계박람회를 유치해야 하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가 상승으로 삶이 피폐해진 국민에게 천문학적인 국가 예산 투입과 소수의 개발이익 독점이 예상되는 대규모 국가행사를 유치하겠다면서 방탄소년단만 앞세웠다. 이 때문에 방탄소년단이 애먼 비난을 받고, 겨우 꽃피운 대중문화예술인의 대체복무 논의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부산시는 2030 세계박람회를 유치할 의지가 정말 있는 걸까?’ 10월15일 이른 아침, 콘서트장인 부산아시아드 주경기장에 도착하자마자 그런 의문이 들었다. 2년 전 태풍 마이삭으로 지붕막 9개가 날아가 내부 골조가 흉물스럽게 노출되고 콘크리트 난간은 칠이 벗겨지고 까맣게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건물 보수는 대규모 자원과 절차가 필요하니 급하게 손댈 수 없다 해도 전세계에서 수만 명의 관객이 방문하는데 비질 한 번 하지 않았는지 구석구석 말도 못하게 지저분했다. 부산시와 세계박람회 홍보 부스는 대다수가 운영된 사실도 모를 만큼 존재감이 없었다. 8월30일 열린 관계기관 점검회의에서 박형준 시장은 이 콘서트가 “전세계에 부산을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라 강조했지만, 현장에선 아무런 ‘결정적’ 전략도 대책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안전장치와 관리인력 없는 환경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들. 최이삭

역대급 공연, 역대급 아비규환

현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결정적 원인은 5만 관객을 관리할 구체적인 계획과 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통의 스타디움급 K팝 콘서트에선 빠르고 안전하게 관객을 입장시키기 위해 구역별 바닥 안내선과 촘촘한 안전라인을 기본으로 설치하고, 확성기와 손팻말로 이중 삼중의 안내를 한다.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숙련되지 않은 부산시 자원봉사자들은 공연장을 겹겹이 둘러싸고 옴짝달싹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어찌할 바를 몰라 넋 놓고 있었다.

관객은 온종일 입장 대기를 하며 화장실에 가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갈증과 굶주림을 견뎌야 했다. 대절버스를 타고 온 관객 수천 명은 통제 때문에 공연장 멀리 떨어진 곳에 차를 대고 걸어왔다. 당일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톡이 먹통이 돼 어려움은 배가됐다. 주최 쪽은 브이아이피(VIP) 동선 확보를 위해서는 주차장뿐만 아니라 장애인 화장실까지 폐쇄할 정도로 철저하게 대비했지만, 5만 관객의 안전과 최소한의 편의는 나 몰라라 했다. 부산시가 콘서트 개최 비용을 방탄소년단 소속사에 떠넘기며 결과적으로 팬들이 후원사 상품과 콘서트 굿즈를 구매해 개최 비용을 대신 치른 것처럼, 주최 쪽이 떠넘긴 안전 책임은 팬들이 대신 져야 했다. 대형사고 없이 행사가 마무리될 수 있던 이유는 ‘아미’의 선한 행동력과 단합 덕분이었다.

방탄소년단의 공연은 완벽에 가까웠다. 코로나19 이후 3년 만의 첫 국내 함성 콘서트이자 멤버들의 입대 전 마지막 ‘완전체’ 콘서트에서 그들은 노련한 라이브 실력과 특유의 에너지로 ‘방탄소년단이 왜 방탄소년단인가’를 증명했다. 경기장 밖은 아수라장이었지만 장내에서는 공연을 지탱하는 모든 주체의 약속이 맞아떨어진 정교한 콘서트가 펼쳐졌다. 방탄소년단의 로고를 형상화한 10개의 대형 스크린은 서울 잠실주경기장에서도 본 적 없는 압도적인 규모였다. 끝없이 터지는 폭죽과 축포, 방탄소년단의 세계관을 구현한 동화적인 무대 세트와 비주얼그래픽, 밴드 라이브까지…. 부산아시아드 주경기장이 오랫동안 방치된 공간이었다는 사실이 떠오르지 않는 수준 높은 무대를 선보였다.

하지만 공연장 안팎이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었다. 스탠딩석은 미리 구역별로 줄을 세워 공연 전에 단체로 입장해야 하지만 노하우가 없는 비전문 인력이 감당하기엔 너무 고차원적인 작업이었다. 다수의 스탠딩석 관객이 공연 시작 뒤에도 입장하지 못하고 정해진 구역 밖에 방치되면서, 방탄소년단이 팬들을 가까이 만나기 위해 무대 아래로 내려가려던 계획이 즉석에서 취소됐다. 가장 시야가 좋은 지정석 중앙 구역이 통째로 비어 있기도 했다. 마구잡이로 뿌려진 초대권 때문일 것이다. 공연장 밖에는 입장권도 없이 온 국외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방탄소년단이 떠먹여주는 콘서트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는 부산시가 과연 세계박람회를 유치할 수 있을까?’ 하루가 끝날 즈음 의심은 확신이 되어 있었다.

K팝과 K컬처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무국적성

K팝과 K컬처를 아우르는 문화관광 축제로 계획했던, 2023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유치가 최종 불발됐다. 아시안컵 사례를 교훈 삼아 부산시는 방탄소년단이 아닌 당사자의 치밀한 전략으로 세계박람회 유치에 도전해야 한다. K웨이브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무국적성이다. 제3의 문화와 가치관에 대한 새로운 세대의 관심이 오늘의 붐을 만들었다. 국가주의를 과도하게 결합하면 반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니 방탄소년단을 그냥 놔둬라. 그들이 대한민국의 평범한 청년으로 돌아가 병역 의무를 마치고 가수의 본분인 자유로운 창작활동에 알아서 최선을 다하도록 간섭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국가 번영과 발전을 위한 길일 테니까.

최이삭 케이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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