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유명인 등장' 반복 보도에 "마녀 사냥" 비판
이태원 참사 전하며 "유명인 등장해 인파가 몰렸다" 목격담 반복
확인되지 않은 주장 퍼지자 유명인들 "나 아니다"
"사회적 참사인데 개인에게 탓 돌리려는 시도 무책임"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지난 29일 밤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 현장에서 '유명인이 등장해 인파가 몰렸다'는 목격담이 보도로 전해졌다. 같은 내용은 새벽 내내 반복됐고 일부 언론은 제목에 이를 언급했다. 사람들은 유명인이 누구인지 찾으면서도 '마녀사냥'이 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반복하고, 개인에게 탓을 돌리려는 듯한 보도가 '무책임' 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YTN은 29일 밤 11시경 속보로 “오늘밤 11시쯤 이태원 역에 있는 한 주점에 많은 인파가 갑자기 몰려들면서 손님들이 깔렸고, 수십명이 의식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며 “목격자들은 유명인이 방문하면서 해당 주점을 찾아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해당 사고가 발생했다고 말했다”는 현장 기자의 리포트를 전했다.
이후 많은 언론이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한국경제는 30일 12시 37분에 '유명인 등장에 인파 몰려…이태원 핼러윈 인명사고 현장 아수라장' 기사를 보도하며 “유명인이 해밀턴호텔 옆 골목 인근에 등장했다는 소식에 수많은 인파들이 몰려들어 이런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했다. 이후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이 “증언이 나왔다”며 보도를 이어갔다.
YTN은 새벽 내내 같은 내용을 반복했다. 새벽 2시 현장 제보자 인터뷰에서 YTN은 “저희가 처음에 전달해 드리기로는 한 주점에 유명인이 와서 그 바람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서 사고가 났다고 들었는데 그 현장 상황도 알고 계십니까”라고 물었고 제보자는 “아니요, 아쉽게도 그거까지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새벽 3시 50분 기사에서 YTN은 “어젯밤 10시 22분쯤 서울 이태원동 해밀턴 호텔 뒷골목 주점에 나타난 유명인을 보기 위해 내리막길에 많은 인파가 갑자기 몰려들면서 누군가 넘어져 수십 명이 깔렸고 120명이 숨지고 100명이 다쳤다”며 확실한 사실처럼 보도했다.
사람들은 곧바로 '유명인'이 누구인지 찾기 시작했다. 해당 뉴스에는 '유명인이 누구냐', '그 유명인이 누구길래 10만 명이 모였나' 등 궁금해하는 댓글과 추정되는 유명인의 이름을 언급하며 유추하는 댓글이 이어졌다. 사망한 피해자들을 유명인을 보려고 몰려든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비난하는 댓글도 있었다.
지목된 유명인들은 반박하고 나섰다. 방송인 김영철은 31일 오전 라디오에서 “29일 촬영이 있어 오후 8시쯤 이태원에서 짧게 촬영을 진행하고 철수했다”며 “바로 몇 시간 전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더욱 이번 사건이 믿기지 않는다. 마음이 무거운 아침”이라고 말했다.
인터넷방송인 케이는 자신의 방송 게시판을 통해 “저 때문에 많은 인파가 모여 사고가 났다고 추측성 글들이 올라오는데, 방송을 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너무 말도 안 되는 말이고 사실이 아님을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한다”며 “저는 술집을 방문한 게 아니고 인파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술집으로 밀려 들어오게 됐다”고 했다.
이어 “언론에서 '유명인이 술집 방문으로 인하여 인파가 몰렸다'라고 보도되었고, 그 유명인을 저로 지칭하시는 분들이 계시더라”면서 “허위 사실이 너무 심하게 유포돼, 아프리카TV 쪽에서도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 동선을 요청했다. 어제 갔던 모든 동선과 시간대를 알려주었다. 그러니 정확한 사실 파악이 되면 판단해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목격담에 등장한 '유명인'이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유명인을 보기 위해 인파가 몰렸다는 주장도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다.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은 31일 기자회견에서 유명인을 보기 위해 인파가 몰렸다는 등의 주장에 대해 “그 부분도 포함해 관련자 진술과 영상까지 같이 검토해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유명인' 보도에 '언론이 마녀사냥 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9일 YTN 보도가 나온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유명인 유명인 하면서 마녀사냥 하는 것은 아닐까 우려스럽다”, “YTN에서 이태원 압사사고 BJ 탓으로 몰아간다”, “YTN에서 이태원 범인찾기하는 것 같다”는 글이 이어졌다.
김언경 뭉클 미디어인권연구소 소장은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증언, 발언들은 굉장히 주관적일 수 있고, 경황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하는 다양한 이유를 얘기하게 된다. 그런 것들을 더블체킹 없이 그대로 방송하게 되는 부작용”이라며 “내용 확인 없이 그대로 전하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이번 경우는 한 사람의 책임만으로 전가할 수 없는 사회적 참사인데, 사건의 본질이 왜곡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항상 이런 재난이 발생했을 때는 굉장히 긴급하게 방송을 편성하고, 사람들을 계속 연결하는 등 시간을 채워야 하는 강박이 방송에게서 느껴진다. 차라리 한 말을 또 하는 한이 있어도 차분하게 확인된, 할 수 있는 말만을 전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확인되지 않은 이런 저런 주장들을 계속 리포트에 이어가는 것은 굉장한 무책임한 진행”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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