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사건으로 본 김용의 ‘묵비권’…물증에 수사·재판 달렸다

허진무 기자 2022. 10. 3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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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 페이스북 캡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최측근인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불법 대선자금’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김 부원장을 31일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김 부원장을 구속 상태로 연일 조사하고 있지만 김 부원장은 번번이 진술거부권(묵비권) 행사로 대응하고 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뇌물수수 의혹 사건(1차 사건)과 불법 정치자금 의혹 사건(2차 사건)을 보면 검찰이 구체적 물증을 얼마나 확보했느냐에 따라 향후 수사와 재판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묵비권’ 김용과 검찰의 눈치싸움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3부(부장검사 강백신)가 압수한 휴대전화에 대해 김 부원장 측은 비밀번호도 제출하지 않았다. 김 부원장은 지난해 4~8월 이재명 대표 대선자금 명목으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에게 돈을 요구해 대장동 개발업자들으로부터 8억47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공여자인 유 전 본부장의 진술이 검찰 수사의 토대가 됐다. 김 부원장의 변호인은 “유동규의 진술 외에는 증거가 없다. 검찰은 돈을 전달한 수법도 제시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한명숙 전 총리도 2009년 12월 뇌물수수 혐의 사건(1차 사건)으로 체포돼 검찰 조사를 받을 때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며 침묵으로 일관했다. 재판에서도 검찰의 신문에 답변하지 않았다. 한 전 총리는 2006년 12월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대한석탄공사 사장으로 임명해달라는 청탁의 대가로 5만 달러를 수수한 혐의를 받았지만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다.

법조계에선 김 부원장의 진술거부권 전략은 구속 기소가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검찰의 질문을 통해 수사 내용을 확인하며 재판을 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검찰도 수사의 핵심 증거는 제시하지 않고 김 부원장을 압박하고 설득하면서 양측이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수부(반부패수사부) 검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 입장에선 혐의를 부인하는 피의자보다 진술 자체를 거부하는 피의자가 어려운 상대”라며 “혐의를 부인하는 진술에서도 수사 단서를 얻을 수 있지만 피의자가 아예 입을 다물면 ‘윗선’으로 수사가 진전되기 힘들다”고 말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2017년 8월23일 새벽 의정부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해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김용, 유동규 진술 흔들기

김용 부원장 측은 핵심 공여자인 유동규 전 본부장이 허위 진술을 했다며 신빙성을 흔들고 있다. 김 부원장의 변호인은 지난 21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취재진에게 “저쪽(검찰)이 유동규의 진술에 놀아났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유 전 본부장이 불법 정치자금에 대해 진술한 뒤 구속기간 만료로 출소한 점을 거론하면서 검찰의 회유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금품 수수자가 혐의를 부인하는 데다 물증이 없는 경우 공여자 진술의 신빙성이 재판에서 유무죄를 가른다. 한 전 총리의 1차 사건은 검찰이 사실상 구체적 물증 없이 공여자인 곽 전 사장의 진술을 핵심 증거 삼아 기소했다. 곽 전 사장의 진술이 흔들리자 1~3심 법원은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곽 전 사장이 검찰 단계에선 “5만 달러를 한 전 총리에게 직접 건넸다”고 했다가 재판 단계에선 “돈봉투를 의자 위에 올려놨다”고 증언을 계속 바꿨기 때문이다.

구체적 물증 확보가 관건

김 부원장의 최대 구속 기한(20일)이 반환점을 돌면서 검찰은 구체적인 물증을 확보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수사팀 관계자는 지난 27일 취재진이 ‘구체적 물증이 있느냐’고 묻자 “충분한 인적·물적 증거를 확보했다”고 했다. 하지만 김 부원장의 변호인은 이날도 취재진에게 입장문을 보내 “김 부원장은 유동규씨에게 돈을 받은 적이 전혀 없다”고 했다.

한 전 총리는 2010년 7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사건(2차 사건) 때도 검찰의 출석 요구에 불응하며 진술거부권을 행사했지만 물증이 나와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한 전 총리는 2008년 3~9월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3차례에 걸쳐 1억원 수표를 포함해 약 9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됐다. 1억원 수표가 한 전 총리 동생의 전세자금으로 사용된 사실이 유죄 판결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수표는 한만호 전 대표가 발행했는데 한 전 대표와 한 전 총리의 동생은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한 전 대표가 작성한 비자금 장부, 비자금 조성에 가담한 직원 진술도 유죄를 뒷받침했다.

이 사건은 2011년 10월 1심이 무죄를 선고했지만, 2013년 9월 2심이 유죄로 뒤집혔고, 2015년 8월 대법원이 징역 2년에 추징금 8억8000만원을 확정했다. 수표 등의 물증이 확보된 3억원에 대해서는 대법관 13명 모두 유죄가 확실하다고 판단했다. 나머지 6억원에 대해서는 8명이 유죄, 5명이 무죄로 판단이 엇갈렸지만 다수 의견에 따라 역시 유죄가 확정됐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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