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변명’ 후폭풍? 이상민 탄핵론 재점화할까
野與 ‘동시 비판’…이재명 “낮은 자세 필요” 김기현 “언행 조심해야”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이태원 압사 참사' 비극 이후 여야는 '잠정 휴전'을 선언했다. 그럼에도 정치권에는 미묘한 전운(戰雲)이 감도는 모습이다. "(이태원 참사는)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해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발언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다. 야권뿐 아니라 여권 일각에서도 이 장관의 발언이 부적절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이상민, 尹대통령 '무한책임'과 엇박자?
이 장관의 문제 발언은 지난 30일 나왔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주재한 긴급대책회의 뒤 열린 기자 브리핑에서 한 기자는 "당일에 사람이 몰릴 것으로 예상됐는데 현장에 소방·경찰 인력 배치가 됐느냐"고 이 장관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 장관은 "통상과 달리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지금 파악하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 장관은 31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에서 헌화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서도 "역대 5~6년간 핼러윈 때 운집했던 규모에 대비해 동원됐던 경찰(인력)이 특이 사항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축제 참가자가) 8만 명일 때도 있었고 이번에는 13만 명 정도로 30% 정도 늘었다. (이에) 경찰 인력도 130여 명으로 40% 정도 증원됐다"고 덧붙였다. 올해 핼러윈에만 사람이 몰린 것이 아니며, 이를 고려하면 경찰력은 충분했다는 해명이다.
이 장관의 발언을 '거짓'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실제 이태원 핼러윈 축제마다 매번 10만 명에 가까운 인파가 몰렸고 이번 같은 압사 사고는 없었다. 다만 재난전문가 일각에선 ▲코로나19 거리두기 해제 후 처음 열리는 핼러윈 행사였다는 점 ▲그럼에도 이태원에 배치된 경찰 인력이 137명에 그친 점 ▲행정부가 이 같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 등을 이유로, 이 장관 발언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민사회계에서도 같은 비판이 제기됐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10월30일 성명을 발표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단정적인 발언은 정부와 지자체의 재난 및 안전관리 책무를 희석시킬 수 있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참사 이전과 당일에 참사를 방지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했는지 여부 등이 명확하게 규명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헌법과 재난및안전관리기본법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는 재난 피해자의 권리를 보호해야할 책무가 있다는 주장이다.
외신 역시 이 장관의 주장과 다른 분석을 내놓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태원의 핼러윈 행사가 오래전부터 홍보된 행사였다며 "인파 관리와 안전 계획 등과 관련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도쿄도립대의 카요 타쿠마 법학교수는 "코로나19 규제 완화로 많은 사람이 모였지만, 이에 대응하는 정부의 안전 확보 등은 미흡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팬데믹 기간 없었던 대규모 행사에 대한 안전대책을 다시 정비할 필요성이 있다"고 일본 닛케이에서 강조했다.
이 장관의 발언이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를 무색게 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30일 이태원 압사 참사와 관련, 참모들과 주요 부처 장관들에게 "우리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안전에 무한책임을 지는 공직자임을 명심할 것"이라고 주문한 바 있다. 그럼에도 이 장관이 정부의 '무한책임'이 아닌 '유한책임' 같은 해명을 내놓은 셈이다.
野뿐 아니라 與 일각에서도 '이상민 책임론'
정치권에서는 이 장관의 발언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 장관의 발언 탓에 정부가 난처한 입장에 몰렸다는 지적이다. 정치 원로인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30일 페이스북에 "어떻게 관계 장관이 이런 몰상식한 말을 할 수 있을까"라며 "지금은 수습하고 애도하며 유가족을 위로할 때"라고 썼다. 이어 "제발 사고치지 말자"며 "이 장관은 입을 봉하고 수습에 전념, 그 다음 수순을 준비하시라"고 당부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애도 기간을 의식해 거친 비판은 자제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경찰국 신설 문제로 '이 장관 탄핵 카드'를 집어 들었던 야권이 추후 이 장관 사퇴를 재거론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여권의 비호를 받았던 경찰국 신설문제와 달리, 이 장관의 '이태원 참사' 발언은 진영을 넘어 동시다발적 비판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 당국이 (이태원 참사에 대해) 책임이 없다, 할 만큼 했다는 이런 태도로 국민들을 분노하게 할 게 아니다"라며 이 장관을 겨냥했다. 그는 이어 "낮은 자세로 오로지 국민만을 위하고 모든 것이 나의 책임이라는 자세로 사태 수습에 최선을 다하고, 집중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차기 당권주자인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이 장관의 언행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대해 "공감한다"고 했다. 이어 "국민의 아픔을 이해하고 여기에 동참하는 모습이 아닌 형태의 언행은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행정안전부 장관이 주말 집회시위로 인력을 배치하다보니 (이태원) 배치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별로 좋은 판단이 아니었다"며 "사전 교통대책과 안전을 위해 통행을 제한하는 등 대책 세우는 데 소홀했다"고 비판했다.
김종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도 이날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출연해 이 장관 발언을 두고 "일반 국민이 듣기에 적절한 발언은 아니었다"며 "인파가 이 정도로 몰릴 것으로 예상했고 방송사 등이 이태원 축제를 보도하며 관심이 크게 고조됐는데, 좀더 세심한 배려와 준비를 했어야 했고, 나중에 규명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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