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토끼> 정보라 작가가 대학 떠난 이유
“교수들이 문을 막으니 학문이 고사하는 것”
[주간경향] “강사 월급은 교수의 10분의 1밖에 안 된다. 학교 입장에서는 교수 안 뽑고 실력 있고 실적 좋은 강사들에게 10분의 1 임금만 주면서 논문 실적을 쌓고 ‘노오오력’하라고 희망고문하는 쪽이 열 배 이득이다.”
올해 4월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로 꼽히는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올라 주목을 받았던, <저주토끼>의 저자 정보라 작가(46). 그에겐 여러개의 정체성이 있다. SF와 환상문학을 쓰고 번역하는 정체성도 있지만, 대학에서 러시아어, 러시아문학, 러시아문화 등을 가르치는 시간강사로서의 정체성도 있다. 2010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11년간 대학에서 ‘강의노동’을 했던 그는 연세대에서 유일한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조합원이었다. 지난해 2학기를 마치고 연세대에 사직 의사를 밝혔던 ‘강의하는 정보라’는 지난 4월 모교인 연세대를 상대로 “퇴직금, 주휴수당, 연차수당 등 5000만원을 돌려달라”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그간 대학들은 “시간강사는 주 15시간 미만의 ‘초단시간 노동자’”라며 퇴직금과 각종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에 1년 넘게 강의했지만 퇴직금을 받지 못했던 시간강사들이 소송을 진행해왔고 승소 판례가 쌓였다. 정 작가도 이 길에 함께하기 위해 또 하나의 소장을 서울서부지법에 접수했다.
주간경향은 지난 10월 26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정 작가를 만나 소송을 낸 이유, ‘대학판 카스트제도’의 말단에 있는 강사의 노동조건, 대학의 위기 등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해 2학기 직후 10년 이상 강의했던 연세대에 사직 의사를 밝혔다.
“가장 큰 이유는 지난해 12월 남편(임순광 전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의 암이 재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사 일이 희망 없는 노동이고,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정적 삶을 바랄 수 없다는 걸 알고는 있었는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이걸 압축적으로 경험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나.
“(2020년 1학기) 전임교수 중에는 수업을 안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학교가 용인을 했다. 이에 반해 강의 동영상을 죽어라 만드는 사람들은 강사였다. 동영상 수업은 청각장애인 학생이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수업 대본을 썼다. 50분짜리 수업을 하려면 A4용지 7~10장 정도를 써야 하더라. 대본 쓰고 나면 하루가 다 간다. 수업이 2개면 새벽까지 대본 쓰고 녹화, 편집까지 해야 마무리가 된다. 클로버노트 같은, 음성을 텍스트로 기록해주는 프로그램 도입을 학교에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20년 2학기부터는 동영상을 최소화하고 실시간 비대면 수업을 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이때부턴 실시간 수업이니 대본도 쓸 수 없게 됐다. 2021년이 되니 수업에 장애인 학생이 다 사라졌더라. 이 학생들이 다 자퇴하진 않았을 텐데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비대면 수업은 물리적인 강의실 배정이 필요없으니 수강 정원이 점점 많아졌다. 과제 점검, 시험 채점에 들어가는 시간이 늘어났다. 노력에 비해 성과는 불확실하고 학생들도 만날 수 없으니 교육을 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강의에 너무 많은 노력이 들어가니 논문 쓰거나 연구할 시간은 없었다. 결국 2년 동안 진이 다 빠졌다.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답을 내렸다.”
정 작가는 최근 웹진 ‘한국연구’에 기고한 에세이 ‘강사는 어떻게 단련되는가’에서 두차례 교수임용에 지원했다 무산된 경험을 언급한 뒤 글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돌아가지 않는다. 남의 생계를 쥐고 흔드는 것으로 자기 권력 확인하는 데만 급급한 가해자 집단에 굴종하든가, 통보조차 없는 해고의 위기를 언제나 무릅써야 하는 피해자로 남든가, 그 두가지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 구조에 다시 돌아가기에는 내가 이미 너무 많은 진실을 알아 버렸다.”
-최근 에세이를 보니 팬데믹 이전부터 그만둬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으로 보이는데.
“2017년, 2019년 각각 다른 대학 교수임용에 지원했다. 이상한 방식으로 무산이 됐다. 양쪽 모두 최종 합격자가 나오지 않았다. 후보자가 모든 교수의 마음에 다 들어야 하고, 교수가 많을수록 임용이 산으로 가는 게 흔한 일이라고 한다. 이뿐 아니라 교육부 BK(두뇌한국) 지원사업 신청서 작성, 학과 역사 정리 등에 강사를 동원해 일을 시키면서 대가를 제대로 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걸 10년 이상 겪으면서 희망고문을 당하면 어떤 사람이라도 그만둘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 거다. 정규직 전환, 승진, 임금 인상, 상여금이 없고 건강보험은 직장가입자가 아니라 지역가입자였다. 11년간 시간당 강의료가 고작 3000원 올랐다. 그리고 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안)이 시행된 2019년 2학기부터 시간강사를 많이 잘랐다. 주로 50세 이상이고 수업을 오래 한 분들 위주였다. ‘나도 5~7년 뒤엔 저렇게 잘리겠구나, 이 사람들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지난 3월 부커상 후보 1차 지명이 되기 전부터 소송을 준비했다고 들었다.
“지난 2월 변호사를 처음 만났다. 소송하면 퇴직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소송하지 않으면 대학이 주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계속 대학가에서 강의하려는 시간강사의 경우 눈 밖에 날까봐 소송을 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는데.
“소송하는 분도 있고 못 하는 분도 있다. 학과, 전공, 분위기에 따라 다르다. 다만 이런 상황 자체가 부당한 거다. 모두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가 아니고 모두 소송이라도 할 수 있다는 현실이 너무 슬프지 않나. 삶의 기준이 정말 땅을 파고 내려가고 있다.”
-연세대에서 유일한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조합원이었다. 어떻게 노조에 가입하게 됐나.
“2015년 세월호 농성장에서 서명을 받고 있었다. 비정규교수노조에서 단식을 하러왔다. 그때 ‘아니, 나에게도 노조가?’ 하면서 가입하게 됐다. 내가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물어볼 데라도 있어야 하지 않나.”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의 핵심 쟁점은 ‘정 작가가 주 15시간 미만 일하는 초단시간 노동자’인지 여부다. 초단시간 노동자는 퇴직금, 주휴수당, 연차수당 등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강의시간만 노동시간이라는 대학 주장대로라면 정 작가는 초단시간 노동자다. 하지만 법원 판례나 교육부 지침은 강의시간 이외의 강의 준비시간도 노동시간으로 인정하고, 주 5시간 이상 강의한 경우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강의하려면 준비가 필요할 텐데 강의실에서 강의하는 시간만 노동시간으로 간주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대학이 강사가 비정규직이니깐 차별하는 거다. 전임교원한테는 그런 식으로 임금을 주지 않는다. 전임교원은 방학, 연구년에 강의를 하지 않는데 임금을 받는다. 재판하면서 보니 대학이 저를 초능력자로 묘사했다. 강의시간이 되면 뾰로롱 강의실 문 앞에 순간 이동해 나타난 뒤 아무 말이나 하고 나와 다시 뾰로롱 순간 이동해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을 나보다 잘 쓴다는 생각을 했다(웃음).”
-대학은 재판 과정에서 정 작가가 강의, 작가, 학술, 학회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는 주장을 했다. 다시 말해 다른 일 때문에 강의노동에 들어가는 시간은 짧았다고 주장하려는 의도 같은데.
“학회·학술 활동은 나중에 교수 임용 시 중요한 경력사항이라 안 할 수가 없다. 취미로 강사 몇년 하다가 그만둘 것 아닌 이상 논문 실적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한국연구재단에서 주는 시간강사 연구지원금을 신청하거나 대학에 강사 지원을 할 때도 연구실적이 필요하다. 논문도 그냥 쓰는 게 아니라 학술대회에 가서 발표한 뒤 다른 사람들이 결사반대하는지, 고치라고 하는지 봐야 하지 않나. 발표하면서 인맥도 쌓다 보면 다른 학교에서 강의 제안도 온다. 시간이 남아돌아 다른 활동을 한 게 아니라 생계를 유지하고 강의를 계속하고 싶어 한 거다. 소설을 쓴 것도 대학이 나에게 불리하게 이용하려는 게 웃긴다. 법정 스릴러를 써줄 테다, 이러고 있다(웃음). 대학교수 하면서 다른 성취를 이룬 사람은 왜 계속 재직할 수 있는 건가. 나는 비정규직이라 안 되고, 그 사람들은 되나.”
-2019년 8월 1년 이상 임용, 3년간 재임용 절차를 보장하는 강사법이 시행됐다. 이후 강사의 권리가 진전됐다고 보나. 3년간 재임용 보장이 끝나는 올해 2학기를 앞두고 해고 우려도 있었다.
“3년 지났다고 잘리는 분들이 나오긴 하던데 강사법 탓은 아닌 것 같다. 강사법 존재를 얘기하는 것조차 사측의 프레임이라고 생각한다. 비정규직 문제가 근로기준법 때문이니 근로기준법을 없애자고 하진 않는다. 법에 3년 지나면 자르라고 돼 있는 게 아니다. 3년까지 고용을 연장할 수 있다는 거다. 그 이후에도 학교가 계속 고용할 수 있다. 그런데 학교는 법을 꼬아서 해석한 뒤 강사를 해고하는 구실로 삼고 있다. 강사법 시행 이후 강사의 교원 지위가 인정되고 방학 중 임금이 지급됐다. 싸우고 싸워서 방학 중 1주치에서 4주치로 늘었을 뿐이지만 어쨌든 한푼이라도 나오는 건 긍정적 변화다. 계약을 1년씩 하는 것도 커다란 변화다. 강의 폐강 시 대책은 없어 법에 빈 구석이 있는 것도 맞다. 빈 구석이 있으면 보완할 일이지 때려부수자고 할 일은 아니다. 최근 시행 3년 뒤 해고된 분들이 다른 학교로 옮겼다. 이전에 일했던 대학으로부터 퇴직금이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학 내부 노동시장은 상당히 복잡하다. 일단 교원은 교수, 부교수, 조교수 등 ‘전임 교원’과 강사, 겸임교원, 초빙교원 등 ‘비전임 교원’으로 나뉜다. 전임 교원은 다시 ‘정년 트랙’ 전임 교원과 ‘비정년 트랙’ 전임 교원으로 분할된다. 이를 두고 ‘대학판 카스트제도’라는 비판이 나온다.
“미국, 러시아, 폴란드 등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에서 교수의 사회적 지위가 굉장히 높다. 자신들이 희소하고 특수한 계층이 돼야만 그 특권을 유지할 수 있으니 문을 계속 막는다. 계속 못 들어오게 막으니깐 결국은 고립돼 고사하는 거다. 학문 후속세대인 대학원생이 안 들어온다고 하는데 앞날이 보이지 않는 길로 가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건 당연하다. 카스트제도를 너무나 공고하게 하고 있다. 겸임교원·초빙교원은 강사법 적용 예외라 대학은 이들을 점점 늘리고 싶어한다. 이전의 시간강사처럼 쓰다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사회과학 분야 강사분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대학에서 다른 소속을 만들어 4대 보험을 해결하고 오지 않으면 고용할 수 없다고 했다더라. 이후 그분은 겸임교수로 채용은 됐는데 방학 중 임금이 없고, 계약도 한학기 단위로 한다더라. 교육 현장이 전부 상업화되고 있다. 교육부는 왜 이렇게까지 방관하는지 모르겠다.”
-대학의 위기를 언제부터 느꼈나.
“2010년 처음 강의 시작할 때부터 느꼈다. 가장 큰 위기는 대학원의 고사(枯死)다. 지금 미국 대학에는 한국인 학생들이 흘러넘친다. 한국 대학원에 가서 학위를 받는 게 가성비 면에서 나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지 10년이 넘었다. 나라 망하는 징후가 교육을 방기하는 거다. 대학원에 사람이 없다는 건 그 분야가 망하는 지름길이다. 지금 아주 순조롭게 망하고 있다.”
-2015년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이 나오면서 한때 이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됐다. 최근엔 이병철 시인이 <시간강사입니다 배민합니다>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계속 목소리가 나오는데도 강사는 고학력이라는 시선이 있으니 사각지대에 방치되는 것 같다.
“네가 ‘노오오력’해서 교수가 되지 못했으니깐, 혹은 가방끈도 긴데 다른 직장에 가지 왜 계속 있냐는 인식이 있으니까 그렇다. 나도 ‘네가 실력이 모자라 교수가 되지 못했으니 지금 이러고 있는 것 아니냐’는 뉘앙스의 질문을 받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노동권 교육을 받질 않아 이런 대학 체계에 오래 있으면 대응하는 법보다 순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지방과 달리 수도권 대학 일부 강사들은 이런 열악한 상황이 남들도 다 겪는 직장생활 현실 맛보기고 ‘난 곧 정규직 된다’고 생각하는 면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전임이 될 거라고 해서 누군가가 열악한 노동시장에서 고통받아야 하는 건 아니다.”
-2020년 결혼 이후 남편의 고향인 포항에 정착했다. 지방에서의 삶이 소설 쓰는 데 영향을 미쳤나.
“서울에 계속 있었으면 문어, 대게, 상어 등 해양수산물을 소재로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 자체를 못 했을 거다. 다른 생물, 존재들이 우리와 다같이 죽어가고 있다, 혹은 인간이 다 죽이고 있다는 걸 구체적으로 걱정하게 됐다. (기후변화로) 구룡포에서 오징어가 안 잡혀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면 포항은 망하는 거다. 해산물 어획량이 줄어 죽도시장이 망하면 우리 시어머니 가게는 어떻게 되는 건지, 이런 게 피부로 느껴진다.”
-취미가 ‘데모’라고 말한 적이 있다.
“데모가 취미라고 하면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분들에게 모욕일 것 같아 말해놓고 후회하긴 했다. 내가 굉장히 안온한 환경에서 있었기 때문에 세월호 농성장에 가지 않았으면 비정규교수노조가 있었는지도 몰랐을 거고, 내가 참고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도 몰랐을 거다. 데모하러 가서 현수막이나 피켓을 보면 명확하게 짧은 언어로 요구사항을 딱 적어놓았잖냐. 그런 걸 보면 막연히 느낀 문제가 나 혼자 생각하던 게 아니고 실제로 존재하는 문제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세월호 농성장에서 모든 게 시작됐는데 정말 온 세상이 다 오셨다. 그때 도와주러온 쌍용차 노동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등이 뭘 한다고 하면 일단 가본다. 건강하게 지내는 걸 보면 반갑고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여전히 대학에서 강사로서 강의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내가 해줄 수 있는 얘기는 없다. 다만 그분들의 이야기를 누군가는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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