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 밀집 사고,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후진국형 참사로 봐선 안돼”[이태원 핼러윈 참사]

김보미 기자 2022. 10. 3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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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변화·지역 특성 반영한 새 재난 대책 필요
주체 불분명한 현상, 사안 대응 시스템 마련해야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사고 현장에서 31일 경찰이 조사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지난 29일 발생한 이태원 핼러윈 참사는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군중 밀집 사고다. 일상적으로 잦아진 행사, 축제 등이 소셜미디어로 퍼져 국내외에서 사람을 모으기 때문이다. 지하철·공연장 등에 일시적으로 운집한 인원은 도시가 커질수록 확대된다. 이에 전문가들은 군중 밀집에 따른 압사 등을 ‘후진국형 사고’로 볼 게 아니라 사회 변화와 지역 특성을 반영한 새로운 재난 대비가 필요한 때라고 말한다.

서울연구원이 발간한 ‘신종 대형 도시재난 전망과 정책 방향’ 보고서를 보면 빈도가 낮지만 한 번 발생하면 불확실성이 높아 피해가 광범위한 ‘신종 대형 재난’에 ‘압사 사고’가 포함돼 있다.

압사나 깔림 사고는 공연·체육·쇼핑 시설과 지하철역, 각종 행사·집회 등 한정된 공간에서 군중이 밀집해 혼잡이 생길 때 일어나는데, 최근 문화 축제나 공연 등이 크게 늘면서 발생의 잠재성이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명절이나 크리스마스 등에 서울 도심 명소는 전 세계에서 찾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에 운집 규모도 과거보다 커졌다. 특히 이번 핼러윈은 3년 만에 거리두기 없이 맞는 기념일이어서 코로나19 확산 이전보다 30% 이상 인파가 늘었다.

지자체·경찰·소방이 지역 실정 맞게 대비 계획 세워야

2020년 작성된 이 보고서는 이같이 변하는 도시 여건에 따라 재난의 특성을 파악해 전략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취지로 작성됐다.

야외뿐 아니라 실내 밀집도 경고한다. 예를 들어 화재 등으로 지하철역 내 대피 상황이 위험을 부를 수도 있다. 이때 앞쪽의 보행 진행 상황을 볼 수 있는 폐쇄회로(CC)TV가 있다면 통행에 도움이 된다. 계단 마지막 단에 돌출부를 만드는 식으로 땅을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대피로를 찾을 수 있도록 역사 설계를 개선하는 방법도 제시한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31일 한 시민이 조화를 놓으며 피해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이경원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2005년 경북 상주의 콘서트 압사 사고를 다룬 논문(2007년, 대한응급의학회지)에서 “압사는 행사뿐 아니라 대규모 군중, 인파가 밀집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다”고 봤다.

특히 당시 구조 지연의 요인 중 하나로 경찰의 현장 통제가 원활히 이뤄지지 못한 점을 들며 “대형 군중 모임에 앞서 행정 당국과 경찰, 소방, 병원 등이 지역 실정에 적합한 재난 대비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도시의 규모와 지역에 상관없이 어떤 기초지자체라도 이런 인적 재난이 일어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후진국형’ 참사가 아니라
체계적 관리가 필요한 재난

생활 변화에 따라 다양한 밀집 양상이 나타나면서 압사 사고를 ‘후진국형 참사’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시각도 있다.

조성일 르네방재정책연구원장은 31일 “후진국형 사고라는 인식은 결국 국민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져 책임을 국민에게 미룰 여지가 있다”며 “사회 구조와 규모의 변화에 따라 새로 등장하는 위험을 꾸준히 찾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뉴욕, 도쿄 등은 핼러윈 기간에 맞춰 늘어나는 인파를 통제하기 위해 해마다 군중 경비를 강화하고 있다. 100여개 거리를 폐쇄해 차량 진입을 막는 식으로 보행 흐름 개선하고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한 총력전을 펼친다. 이는 사람이 몰리는 현상은 행정 당국 등의 체계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방증이다.

특히 거리두기 해제 후 외부 활동에 대한 기대감이 커져 위험도는 더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4월 이스라엘 북부 메론산에서 사상자 100여명이 발생한 압사 사고 역시 코로나19 제한 조치 해제 이후 가장 큰 종교행사가 원인이었다. 당국은 1만명까지 집회를 허용하며 5000명의 경찰력을 동원했지만 10만명이 넘는 인원이 운집하면서 상황을 통제하지 못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근처에서 31일 한 외국인이 바닥에 앉아 슬퍼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조성일 원장은 “이태원 사고 피해자 가운데 외국인이 많았던 것처럼 여러 국적이 소통하는 새로운 현상은 새로운 위기 요소가 되기도 한다”며 언어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던 사고 당시 현장을 설명했다. 이어 “지자체가 (도시 환경 변화로) 기존 방식이 통하지 않는 경우 등을 인지하고 사전에 경찰에 인력을 요청하거나 재난 당국이 관리 지침을 내리는 등의 구체적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지자체가 경찰과 정부 부처와 협조해 방역 활동을 했던 것처럼 관리 주체가 불분명한 현상과 사안에 대응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2020년, 2021년 핼러윈 기간 이태원 세계음식특화거리에는 구청과 상인회가 전신 소독을 위한 ‘방역 게이트’를 설치하고, 서울시가 전담 공무원을 배치해 방역 활동을 지원했다. 또 음식점 영업시간 제한에 따라, 오후 10시 이후 경찰이 골목 출입을 제한했다.

서울연구원 앞서 인용한 보고서에서 “전통적인 시설물 중심의 구조적 대책뿐 아니라 도시 환경의 다양한 물리적 영역, 위기 관리체계, 사회경제적 역량 등 비구조적 대책을 병행하는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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