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은 노태우 정부 때 시작됐다?

이웅 2022. 10. 31.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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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언론 "노태우 때 시작" 보도했지만 이승만 대통령도 48년 '시정방침 연설' 해
이후 대통령들도 '국정연설', '연두교서' 등의 명칭으로 시정 방침 밝혀
'대통령 시정연설=정부 예산안 연설'로 관행화한 것은 비교적 최근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지난주 더불어민주당의 윤석열 대통령 국회 시정연설 보이콧 소식을 전하면서 다수의 언론 매체가 '대통령의 첫 시정연설은 1988년 취임한 노태우 대통령 시절부터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윤 대통령도 지난 26일 출근길에 "안타까운 것은 정치 상황이 어떻더라도 과거 노태우 대통령 시절부터 지금까지 30여 년간 우리 헌정사에서 하나의 관행으로 굳어져 온 것이 어제부로 무너졌다"고 언급했다. 야당 의원들의 대통령 국회 시정연설 집단 불참은 지금껏 전례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한 말이다.

모두 대통령 국회 시정연설의 출발점을 노태우 정부로 잡은 건데 이는 역사적 사실에 부합할까?

이승만 대통령 '대통령시정방침에 관한 연설' 보도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기사 검색 캡처]

연합뉴스가 국회회의록 데이터를 검색한 결과에 따르면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대통령이 국회에서 한 연설은 총 72회로 집계됐다.

가장 빈번하게 국회에 출석한 대통령은 초대 이승만 대통령으로 12년간 집권하면서 25회의 국회 연설을 했다. 1961년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재임 기간이 18년이지만 국회 연설은 8회에 그쳤고, 전두환 대통령은 7년간 6회였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으로 6공화국이 들어선 후론 문재인 대통령이 7회로 가장 많고, 박근혜 대통령 6회, 노태우 대통령 4회, 노무현 대통령 4회, 김영삼 대통령 3회, 이명박 대통령 3회,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이 1회로 가장 적었다.

[그래픽] 역대 대통령 국회 연설 횟수 (서울=연합뉴스) 김토일 기자 kmtoil@yna.co.kr 페이스북 tuney.kr/LeYN1 트위터 @yonhap_graphics

이 가운데 '시정연설'이란 타이틀이 붙은 첫 연설은 이승만 대통령이 1948년 9월 30일 국회에 참석해서 행한 '대통령 시정방침에 관한 연설'로 파악된다.

이 연설에는 민족적 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완전한 국권 회복, 민생 개선, 행정 쇄신을 당면 정책으로 수행하겠다는 국정운영 구상이 담겼는데, 1만 자가 넘는 장문의 연설문을 이범석 초대 국무총리가 대독(代讀)한 뒤 이 대통령이 추가 연설을 했다. 당시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주요 신문들은 이를 이승만 대통령의 첫 시정연설로 보도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시정연설(施政演說)은 '국가 원수나 정부 수반이 나라의 정치를 시행하는 것과 관련하여 하는 연설로, 정부 정책의 기본 방침, 정강, 정부의 기본 과업 따위를 담는다'고 돼 있다. 하지만 국회회의록을 보면 과거에는 대통령 연설 외에 국무총리나 부처 장관이 행하는 연설을 지칭하기도 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러한 과거 용례나 지금의 사전적 의미에 비춰보면 시정연설은 주로 대통령이 정부의 전반적인 국정 운영 방침을 밝히는 연설이지만, 지금은 시정연설 하면 '정부 예산안 관련 연설'이라는 협소한 의미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이는 국회법의 '예산안' 관련 조문에 시정연설이란 문구가 포함돼 있는 데다, 최근 10년 사이 대통령이 국정 운영 방침을 밝히는 연설이 주로 정기국회의 내년도 예산안 심의에 맞춰 이뤄진 데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표] 역대 대통령 국회 연설 사례 ①

<자료=국회회의록 발췌>

대통령의 국회 연설은 헌법과 국회법에 근거한다. 헌법 81조는 '대통령은 국회에 출석해 발언하거나 서한으로 의견을 표시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국회법 84조는 '예산안에 대해선 본회의에서 정부의 시정연설을 듣는다'고 돼 있다.

법령 연혁을 살펴보면 정부 수립 초기 국회법이 처음 제정될 무렵엔 국회 예산안 심의에 앞서 '국무위원 등으로부터 필요한 의견을 들을 수 있다' 정도로 규정됐던 것이, 1951년 개정 때 '정부의 시정방침에 대한 설명'으로 바뀌었고, 박정희 정부가 들어선 1963년 개정 때부터 지금처럼 '정부의 시정연설'로 명시된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이처럼 '정부의 시정연설'이 처음 법제화됐는데도 직접 국회에서 연설한 적은 없고, 매년 정기국회에서 대통령 명의의 '예산안 제출에 즈음한 시정연설'을 국무총리가 대독하게 했다. 대신 대통령이 직접 국회에 참석해 국정운영 방침을 밝히는 건 연초 '대통령 연두교서'라는 연설을 통해서 했다.

이 같은 관행은 전두환 정부의 연초 '대통령의 국정에 관한 연설'로 이어졌다. 이는 국회법에 규정된 예산안 관련 정부의 시정연설을,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지 않아도 될 다소 실무적인 일로 여긴 탓으로 보인다. 이승만 정부 시절엔 국무총리나 장관이 국회에서 본인 명의 연설로 예산안 취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반면 노태우 정부는 출범 직후, 전임 정부에서 연초 임시국회를 열어서 해온 대통령 국정연설을 정부 예산안을 제출하는 가을 정기국회로 옮기는 방안을 내놨다. 이에 따라 노태우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1988년 10월 4일 정기국회에서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갈음하는 형식으로 5년간의 국정 운영 구상을 제시했다.

다만 공식적인 연설명을 '예산안 제출에 즈음한 국정연설'로 해 시정연설이란 말을 쓰지 않았다. 예산안을 결부시킨 노태우 대통령의 국정연설은 취임 첫해에 그쳤고 다음 정부로 이어지지도 않았다.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 때는 연초 대통령이 국정연설(연두교서)을 하던 관행을 부활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성사되진 않았다. 임기 5년 동안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연설을 국회에서 한 사례는 두 정부 모두 한 차례도 없었다.

[표] 역대 대통령 국회 연설 사례 ②

<자료=국회회의록 발췌>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때는 대통령의 예산안 시정연설을 통해 국정 운영 방침을 밝힌 경우가 각각 1차례씩 있었는데 모두 다른 시급한 현안이 있었다. 필요한 경우 별도 국정연설을 하거나, 또는 국회 개원 연설을 통해 현안을 설명하거나 국정 운영 방침을 발표했다.

그러다 박근혜 정부 들어 대통령이 정기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직접 예산안을 설명하면서 국정 운영 방침을 밝히는 것이 재임 기간 4년(2013∼2016년) 동안 지속되면서 정례화됐다. 이런 관행은 문재인 정부 5년(2017∼2021년)을 거쳐 윤석열 정부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의 국회 연설은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권한으로 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야당의 반대로 무산된 사례도 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정부가 개헌 발의와 주요 법안 처리 문제로 각각 요청했던 대통령 국회 연설이 제1야당인 한나라당의 반대로 두 차례 모두 무산됐다. 김영삼 정부 때는 취임 첫해 날짜까지 못 박았던 첫 국회 연설이 여야 갈등으로 취소되기도 했다.

정리해 보면 국회회의록에 비춰볼 때 '시정연설'이란 타이틀이 붙은 대통령 국회 연설의 출발점은 노태우 대통령이 아니라 1948년 정부 수립 한 달 반 만에 '대통령 시정방침에 관한 연설'을 한 이승만 대통령으로 볼 수 있다.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로 한정한다면 대통령이 직접 한 시정연설 첫 사례를 노태우 대통령으로 볼 수 있지만 당시 실제 연설명은 '국정연설'이었다. 또 최규하 대통령이 1979년 대통령권한대행 시절 정기국회에서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직접 했다는 기록도 있다.

역대 대통령들의 국회 연설을 살펴보면 연설의 시기와 형식은 해당 정부의 필요에 따라 선택돼 왔다는 걸 알 수 있다. 과거엔 주로 '연초 국정연설(연두교서)'로 관례화됐던 것이 박근혜 정부 이후 최근 10년 사이 '정기국회 시정연설'로 바뀌어 새롭게 자리 잡았을 뿐,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침을 천명한다는 본질은 변함이 없다. 따라서 75년 헌정사 내내 이어져 온 대통령의 국회 연설을 따질 때 굳이 직선제 개헌 후 최근 30여 년간의 사례에 국한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 1979년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 보도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기사 검색 캡처]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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