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앞두고 민관 ‘4자 회의’ 한 경찰 “대규모 인명피해 예상 못했다”[이태원 핼러윈 참사]

이유진 기자 2022. 10. 3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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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 측 없는 행사 대응 매뉴얼 부재
관련기관 사전 회의하고도 대책 미비
경찰 “당시 범죄 예방 중점으로 논의”
서울 미근동 경찰청 정문 철제 바리케이드 사이로 경찰 상징문양이 보인다. 강윤중 기자

경찰이 ‘주최 측 없이’ 인파가 몰리는 행사에 대비한 별도의 매뉴얼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3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태원 핼러윈 참사’를 막지 못한 이유 중 하나다. 경찰은 참사 책임을 묻는 질문에 “대규모 인명피해를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홍기현 경찰청 경비국장은 31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주최 측 없이 대규모 인파가 모이는 게 예상되는 행사에 관한 대비 매뉴얼은 (경찰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주최 측이 있으면 지방자치단체 등 행정당국과 경찰, 소방 등이 사전 협의를 통해 안전사고 예방 대책을 미리 수립할 수 있지만 이번 경우에는 사전 예방에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또 “여의도에서 열린 불꽃축제 등은 특정 시간대 1개 장소에 인파가 집중적으로 모이는 반면 이태원은 그 일대의 넓은 공간에 사람들이 일시에 집결해 통상적인 위험을 예견하는 부분에서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고를 계기로 관리 주체가 없으나 다중 운집이 예상되는 행사의 경우 공공 부문이 어느 정도 개입할 것인지 사회적 합의와 보완 대책이 마련돼 비극적 사고가 재발하지 않아야 할 것”이라며 “경찰에서도 관련 매뉴얼 준비에 착수했다”고 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지난 26일 서울 용산경찰서, 용산구청, 이태원관광연합회, 이태원역장 등 관계자들이 핼러윈 주간을 앞두고 ‘4자 회의’를 진행했는데도 대규모 인명피해를 막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홍 국장은 “당시 간담회에서는 불법 촬영이나 마약 등 범죄 예방에 대한 논의가 주로 된 것으로 안다”며 “올해뿐 아니라 과거에도 현장 통제보다는 불법단속, 범죄예방과 교통소통에 중점을 둬 대응했다”고 해명했다. 4자 회의에서 상인들이 압사 등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을 언급하며 경찰과 지자체에 사전 통제를 요청했지만 아무런 조처가 없었다는 주장과 관련해서는 “참가자들이 어떤 요구를 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했다”며 “관련 요청이 직접 거론됐는지 확인하겠다”고 했다.

이태원 핼러윈 행사를 앞두고 서울 용산경찰서는 지난 27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태원 현장에 200명 이상 인력을 배치하겠다’고 밝혔으나 실제 투입된 인원은 137명에 그쳤다. 이에 대해 홍 국장은 “배포된 자료를 보면 200명 앞에 ‘총인원’으로 표시돼 있는데 그 부분을 해당 경찰서에 확인해보니 3일간 배치되는 인력을 연인원으로 계산해 200명 이상이라고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고 했다.

홍 국장은 올해 이태원 핼러윈 축제 인파에 대해 “과거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많은 인원이 모였지만 예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모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며 “현장에서 급작스러운 인파 급증은 못 느꼈다고 한다. 판단에 대한 아쉬움은 갖고 있다”고 말했다. 또 “(사고 당일 이태원 일대를) 4∼5개 권역으로 나눠 관리했다”며 “(사고가 난 골목 통제와 관련한) 별도 조치는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간담회에서는 2017년 경찰이 경찰통제선을 만들어 안전 관리를 했으나 올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홍 국장은 “폴리스라인이 있다고 해서 모두 통제라고 볼 수는 없다”며 “당시에는 인도에서 차도로 내려오는 사람들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것으로 본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핼러윈 행사 때 경찰이 이번에 압사사고가 발생한 이태원 해밀톤호텔 옆 골목을 통제하는 모습이라며 시중에 돌고 있는 동영상과 관련해선 “QR 코드를 체크하는 방역 게이트”라고 반박했다.

한편 이날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부처 합동 브리핑에 참석한 오승진 경찰청 강력범죄수사과장은 ‘왜 지하철 무정차가 이뤄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용산경찰서는 지난 26일 간담회 때 이태원 역장에게 ‘다중 운집 시 무정차 통과를 적극적으로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답했다. 오 수사과장은 또 용산경찰서가 200명 이상의 경찰을 배치하기로 계획했다가 137명으로 조정했다는 지적에는 “그런 계획은 처음 듣는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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