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놀러왔다고 질책할 일 아니다"…국화 대신 놓인 '분홍 장미'
"젊은 사람들이 마음을 표현할 장소가 없지 않나. 핼러윈 때 이태원에선 분장도 하고 마음을 한껏 표현할 수 있어서 온 건데..."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신송경씨(54)는 하얀 국화꽃 대신 화사한 분홍색 장미를 들고 이태원 1번 출구를 찾았다. 신씨는 "하얀 국화보다 이 분홍색 꽃이 젊고 푸른 아이들을 뜻하는 거 같아 이 꽃을 선택했다"고 했다.
31일 오전 10시쯤 서울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는 이태원 압사 사고로 숨진 이들을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됐다. 추모 공간에는 숨진 이들을 추모하는 내용의 쪽지가 붙어있었다.
'한창 아름답게 피어날 꽃다운 나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죽음 더 이상 없어야 합니다' '당신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편히 쉬세요' 등의 내용이 담긴 등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그 앞에는 국화꽃과 안개꽃 다발 수십 개와 소주와 와인 등 주류가 놓여 있었다.
분홍색 장미를 내려놓은 신씨는 "아이들이 놀러 왔다고 질책할 게 아니다"라며 "애들이다, 애들은 즐겁게 살 권리가 있다. 우리 아들딸이라 생각하니까 너무 마음 아프다. 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꽃을 주고 기도했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추모 행렬은 계속됐다. 지난해 초등학생인 아이와 함께 이태원을 찾아 핼러윈 축제를 즐겼던 구모씨(49)는 "안전에 미리 대비하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며 "인재(人災)가 나야 관심을 갖고 아이들이 죽은 다음에 항상 이러는 게 답답해서 찾아왔다"고 말했다.
소방직 공무원인 강모씨(29)는 "오늘 비번인데 추모하고 싶어서 나왔다"며 "사람 목숨을 구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도 상당히 충격인 사건이다. 고인들의 명복을 빌어야겠다는 생각에 직접 찾아왔다"고 했다.
지나가던 시민들도 쪽지를 읽거나 사진을 찍었다. 생각에 잠겨 탄식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이태원 1번 출구 사건 현장이 정면으로 보이는 길 맞은편에 사람들 모여서 안타까운 시선으로 쳐다보기도 했다. 인근 호텔에서 투숙하다 내려온 사람들도 지나가면서 가볍게 목례하고 지나갔다.
문정동에 거주하는 정모씨(82)는 추모 공간에 늘 지니고 다니던 십자가를 올려놓고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정씨는 "꽃다운 나이에 내 손자 손녀 또래가 세상을 떠났다"며 "너무 슬프고 교회 가서 기도하다가 여기 와서 하는 게 좋겠다 싶어서 내가 들고 다니던 십자가를 놓고 간다"고 했다.
또래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20대의 조문 행렬도 이어졌다. 송파구에 거주하는 대학생 김모씨(24)는 "토요일 야간알바 중에 손님이 말하는 걸 듣고 뉴스를 봤는데 크게 충격을 받았다"며 "오늘 야간업무를 끝내고 바로 조문을 왔다. 뒤에서 밀었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법적으로 처벌받아야 하지 않겠나. 세월호 참사 때는 중3이라 수학여행 못 간다 이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직접 눈으로 보니까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인천에 거주하는 방모씨(28)도 "유튜브를 보는데 대형사고 영상이 추천 영상으로 떠서 충격받고 달려왔다"며 "평소 사람이 많이 모이는 인천, 홍대에서 많이 노는 편인데 좁은 길에서 난 급박한 사고라고 알고 있어서 또래로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11월 5일 애도 기간까지 휴점한다는 문구를 붙여놓은 상점도 있었다. 이태원관광특구협의회에 따르면 30∼31일 이틀간 이태원로 주변 100여 개 업소가 문을 닫고 추모에 동참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이태원 압사 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서울광장과 이태원 광장에 각각 합동분향소를 운영한다. 국가 애도 기간인 다음 달 5일까지 운영될 예정이다. 전국적으로 희생자가 나오면서 경기 안양과 평택, 대구, 강원 등 전국 곳곳에도 합동분향소가 마련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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