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R환자 몰리자 응급실 마비"…이태원 참사에 민낯 드러난 재난의료
'이태원 압사 참사'로 중상자가 속출하면서 서울 시내 종합병원 중환자 의료 체계에 부담이 갈 것으로 보인다. 참사 당일에는 심폐소생술(CPR)이 필요한 환자가 몰리면서 서울 지역 응급실 운영이 한때 마비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재난 의료 상황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데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3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 기준, 이태원 압사 참사로 인한 중상자는 33명이다. 이들은 서울 시내 각 병원으로 2~3명씩 분산돼 치료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에서는 갑작스러운 중상자 대량 발생으로 서울 시내 병원 중환자실에 큰 부담이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허탁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환자를 응급실에서 치료하다가 중환자실로 보내야 하는데 서울 큰 병원 대부분은 중환자실이 차 있기 때문에 환자 몇 명만 더 와도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며 "중환자실 순환과 운영에 있어서 정체나 마비 현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류현호 대한응급의학회 공보이사는 "초기 환자 이송에서는 응급실 내부 병상만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며 "응급실 상황도 급하지만, 이송 시 향후 환자들이 옮겨갈 중환자 병상도 충분히 고려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의료인 A씨도 "우리 병원은 코로나19(COVID-19) 전담병원이라 중환자실이 꽉 차 있어서 이태원 참사 피해자를 아예 받지 못했다"며 "가령, 다른 병원에서 중환자실 가동률이 95%였다가 환자 한 명을 받아서 100%를 채웠다면 다른 중환자 수술 일정에 비상이 걸렸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중환자실은 환자 입원과 이송, 퇴원 절차를 고려할 때 가동률이 80%만 차도 병상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본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 B씨는 "심혈관 내과계 병상(CCU)은 심장 쪽으로 특화된 중환자 병상인데 이 부분이 굉장히 타격이 컸을 가능성이 있다. 이 정도로 심정지 환자가 많이 생기는 경우가 평소에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참사 당일인 29일에는 응급실로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이 몰리면서 서울 시내 응급 운영이 한때 마비되기도 했다.
허 교수는 "보통 심정지 환자가 한 명 오면 최소 의료진이 4명에서 6명은 붙어야 한다"며 "응급실이 마비된다는 표현은 아주 틀린 말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사고 지점과 가장 가까웠던 순천향대서울병원에만 82명의 사상자가 이송됐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발표한 303명 사상자의 27%다. 응급실 병상이 30개밖에 안 되는 병원에 너무 많은 사상자가 몰리면서 환자 치료가 제때 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A씨는 "서울 모 병원에서는 CPR 환자가 연속으로 10명 도착해 응급실이 뒤집어졌다"며 "병원에서는 '코드 블루'(심정지 환자 발생 응급상황) 한 번만 떠도 모든 의료진이 다 투입돼 두 번 이상 울리는 일이 없는데 참사 당일에는 몇 분 간격으로 코드 블루가 계속 나왔다"고 전했다.
의료계에서는 이번 참사를 교훈 삼아 '재난의료대응'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류 이사는 "병원별로 이런 사태가 생겼을 때 어느 정도 중환자 병상을 늘릴 수 있는지 자가 진단해야 한다"며 "상황 발생 시 즉각 전환할 수 있게 준비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병원 자체의 힘만으로는 어렵기 때문에 지자체가 중심이 돼야 한다"며 "또한 재난 의료를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전문가를 국가 차원에서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참사가 이례적인 상황이라 대한민국의 응급·중환자 대응 체계의 부족을 지적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A씨는 "CPR을 하면 살릴 수 있는 환자가 100명 이상 생기는 상황은 생물학적 테러 정도다"며 "응급 의료 체계가 환자를 충분히 수용하지 못했다고 판단하기에는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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