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3개월 신입사원·재간둥이 막내아들…"아비가 미안하다"

이영주 2022. 10. 31.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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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먼저 보낸 아비가 미안하다."

국내 유명 토목종합회사에 입사한 지 불과 3개월 밖에 안됐던 신입사원 A씨는 가족들에게 우직하면서 영특했던 아들로 기억된다.

A씨 아버지는 "한남동 주민센터에서 실종자 신고를 접수받았지만 가족들에게 신원 등 정보가 전달되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려 직접 찾아 나설 수 밖에 없었다"며 "사고 예방도 중요하지만 당장 난 사고를 서둘러 봉합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느냐"고 아들을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사실에 분통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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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이태원 참사 휘말린 광주시민 분향소 속속 마련
눈물바다 빈소…"사고 봉합·후속 대책 마련 절실"

[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30일 오후 광주 동구 한 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족이 고개를 떨어트리고 있다. 2022.10.31 leeyj2578@newsis.com

[광주=뉴시스]이영주 기자 = "널 먼저 보낸 아비가 미안하다."

31일 오전 광주 동구 조선대병원 장례식장. 이태원 참사로 아들을 잃은 가족들의 검정 상복 소매는 멈출 줄 모르는 눈물을 닦아내느라 뻣뻣해질 정도로 굳어 있었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 아들 A(29)씨의 영정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는가 하면 허공을 바라보며 장탄식을 내뱉었다.

가까스로 호흡을 가다듬은 A씨의 아버지는 "살아서 돌아오길 바랐는데…"라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국내 유명 토목종합회사에 입사한 지 불과 3개월 밖에 안됐던 신입사원 A씨는 가족들에게 우직하면서 영특했던 아들로 기억된다.

전기기사와 더불어 취득이 어렵다는 토목기사 자격증을 1년 여 만에 딴 A씨는 지난 8월 서울 소재 국내 유명 토목종합회사에 들어가면서 집안의 자랑거리가 됐다.

사고 당일은 상경한 A씨가 입사 기념으로 친구들과 함께 회포를 풀던 날. 서울에서 만난 친구 5명과 이태원에 놀러간 그는 사고지점 중앙에서 인파에 둘러싸인 것으로 전해졌다.

A씨와 함께 있던 친구들도 사고에 휘말렸지만 가까스로 탈출한 것으로 보인다고 A씨의 아버지는 설명했다.

사고 소식은 뉴스를 본 아버지가 수 백 여 차례 아들에게 연락을 하면서 알게 됐다. 30일 오전 0시부터 6시간 여 동안 전화를 걸다 겨우 듣게 된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아들이 아니었다.

'휴대전화를 수거해 보관하고 있으니 찾아가라'는 경찰의 말에 아버지는 설마설마하며 서둘러 서울로 향했다. 용산경찰서로 향했으나 아들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사라진 아들을 수소문하기 위해 친인척을 동원해 부상자들이 안치된 병원 여러 곳을 돌았다.

수 시간이 흘러서야 A씨가 있는 병원을 겨우 찾은 아버지. 잠든 것처럼 눈을 감고 있던 A씨를 발견하고는 부둥켜안고 오열했다.

A씨 아버지는 "한남동 주민센터에서 실종자 신고를 접수받았지만 가족들에게 신원 등 정보가 전달되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려 직접 찾아 나설 수 밖에 없었다"며 "사고 예방도 중요하지만 당장 난 사고를 서둘러 봉합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느냐"고 아들을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사실에 분통해했다.

[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31일 오후 광주 서구 한 장례식장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족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2022.10.31 leeyj2578@newsis.com


광주 서구 천지장례식장에는 이태원 참사로 숨진 B(26)씨의 빈소가 마련됐다.

3남매 중 막내인 B씨는 광주에서 지내다 지난 27일 서울로 올라갔다.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태원으로 향한 B씨도 인파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변을 당했다. 올해 초 대학을 복학하고 지역 한 자동차 공장에 인턴 입사한 그는 맏형과 둘째 누나의 해외여행 경비를 지원해줄 정도로 가족을 향한 배포가 컸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할 때는 딸처럼 행동하며 재간둥이처럼 집안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끌었다.

사고 당일에도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걱정 말라'고 안부를 남겼지만 싸늘한 주검이 돼 가족의 품에 안겼다.

가족들은 B씨의 헌신적인 모습을 떠올리며 장례식장 로비에 둘러앉아 통곡했다.

B씨의 아버지는 "올해 3월 막 전역한 아들과 난생 처음으로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속내를 들었다. 아들은 당시 '나는 넉살이 좋으니 장사를 해도 될 것이다'고 말하며 웃어보였다"며 "가족들에게 해온 만큼만 하면 어딜 가도 성공할 것이라는 생각에 그저 웃었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B씨는 한편으로 허술한 안전관리엔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아들이 숨졌던 그 좁은 골목길을 통제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 어처구니 없고 부아가 치민다. 상식적으로 인파가 몰릴 것이라는 생각을 (경찰과 지자체는) 안 했던 것인가"라며 "언제까지 이런 안전사고에 국민들이 휘말려야 하는지 모르겠다.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leeyj2578@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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