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주거권 심층취재 1, 2편] '지옥고' 전전하는 청년들…탈출구가 없다

진태희 기자 2022. 10. 3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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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뉴스12]

'지옥고', 지하·옥탑·고시원을 말하는데요. 

열악한 주거환경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서울에서 혼자 사는 청년의 37%는 지옥고에 머물고 있습니다. 

EBS는 청년들의 주거 환경을 살펴보고, 대안을 고민하는 연속보도를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첫 순서로, 불편하고 위험한 줄 알면서도 지옥고를 벗어나지 못하는, 청년들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진태희 기자가 만났습니다. 

[리포트]

길거리 노숙과 학생회관, 그리고 고시원. 

지난 8년 동안 차종관 씨가 머문 곳입니다. 

지난해 11월 5평 크기의 반지하 전셋집을 구한 뒤에야,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지난 8월, 집은 통째로 물에 잠겨버렸습니다.

사고 이후 이웃들은 다 방을 뺐지만, 종관 씨는 여전히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차종관 26세 / 취업준비생 

"사실 갈 데가 없어요. 서울에서 이 정도 전셋값에 신축을 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요. 만약에 홍수가 닥쳐온다고 하더라도 몸만 피신하고 그런 식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하, 옥탑, 고시원을 가리키는 지옥고.

서울에 사는 1인 청년 가구의 37%는 이런 곳에 삽니다. 

천재지변이 아니어도 기본적인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공간입니다. 

1년 반 동안 반지하에 산, 대학생 우창래 씨는 얼마 전부터 피부병을 앓고 있습니다.

인터뷰: 우창래 2학년 / 중앙대

"제습기 같은 것도 필수를 넘어서는 그냥 진짜 한 몸이 돼버린 것 같기도 하고 청년 고독사 그런 영상을 많이 봤거든요, 유튜브에서. 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지금도 막 나아진 상태가 아니기는 한데…."

보육원 퇴소 후, 길거리와 고시원을 전전했던 이 모 씨.

불편한 환경이야 그럭저럭 익숙해졌지만, 화장실과 부엌에서조차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인터뷰: 이 모 씨 32세 / 보육원 퇴소

"밥은 잘 안 먹어요. 여기 있는 사람들 여기서 밥 잘 안 해 먹어요. 왜냐하면 먹기가 싫어져요. 더럽기도 하지만 찝찝한 것도 많아요. 그릇이나 이런 게 다 찝찝해요, 수저도 마찬가지고."

반지하에 들어온 가구의 평균 거주 기간은 약 5년. 

3가구 가운데 1가구는 5년이 넘도록, 반지하를 떠나지 못합니다. 

인터뷰:

"한마디로 여관이에요. 정이 많아서, 있고 싶어서 있는 게 아니라…."

인터뷰: 

"여기 지내는 것보다 내가 생존하는 곳이다, 이게 좀 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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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고는 요즘 청년들의 대표적인 주거 공간입니다.

서울에서 '지옥고'가 밀집해있는 지역은 동작구와 관악구 일대인데요. 

대학생과 취업준비생이 가장 많은 지역이기도 합니다. 

실제, 지옥고의 주거 환경은 어떨까요.

한마디로 침수와 오염, 범죄 같은 위협에 전방위적으로 취약합니다.

지난 8월 쏟아진 폭우로 서울에서 가장 피해가 컸던 지역도 도림천 인근의 관악구와 동작구로, '지옥고'가 몰려있는 공간과 겹치는데요.

지형 자체가 폭우에 취약하기도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기본적인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주거 형태가 몰려있어 피해가 더 컸다는 지적입니다.

굳이 천재지변까지 가지 않아도 위험 요인이 많은데요. 

'지옥고' 건물 대부분은 지은 지 20년을 넘긴, 노후 건축물입니다. 

습기와 결로, 곰팡이 같은 실내오염에 구조적으로 취약합니다. 

반지하에 사는 가구주에게 주거 만족도를 물어봤는데요.

방범과 위생 부분에서 불만족스럽다는 응답이 각각 30.6%, 38.2%를 차지해 전체 가구와 약 20% 포인트 안팎으로 차이가 났습니다. 

특히 환기와 채광에 문제를 느낀 가구는 절반을 넘겼습니다. 

고시원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여름철 실내온도가 적절히 유지되지 않는 비율은 40%에 달했는데, 이렇다 보니 세균 번식의 위험에도 취약합니다. 

사건, 사고 피해 경험도 많아서, 사생활 침해를 겪은 가구는 전체 고시원 가구 가운데 7.6%, 폭언과 폭행은 3.9%, 도난은 2.7%나 됐습니다.

더 큰 문제는 특히 고시원의 경우, 관리 감독하는 정부 부처조차 뚜렷하지 않다는 겁니다.

주거공간이 아닌 다중생활시설로 지정돼 있기 때문입니다.

2018년 종로 고시원 참사 이후 주무 부처를 정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각 부처의 기피로 지금까지도 관리 주체가 없습니다.

미래는 더 암울합니다.

같은 사고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환경 속에서, 높은 물가 때문에, 청년들의 주거 빈곤 비율은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EBS뉴스 진태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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