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사람 많은 골목길 '양방향 유동'은 질서 잡기 어려워"
"양방향 통행 실험 시 800명부터는 정체…이태원 사고도 비슷했을 듯 유추"
(서울=연합뉴스) 문다영 기자 = 지난 주말 이태원에서 발생한 참사는 그간 국내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와 발생 기전이 다르다는 학계 의견이 제기됐다.
박준영 금오공과대학교 기계설계공학과 교수(나노분체공학실험실)는 31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번 사고는 '양방향 유동'에서 발생한 것으로, 과거 국내 압사 사고와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입자 유동의 관점에서 보행자의 움직임을 해석하는 방법론을 연구하는 공학자다.
그는 "압사 사고는 흔히 비상 상황에서 탈출할 때 많이 생기며,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단방향 유동'의 성격을 갖는다"며 2005년 상주 시민운동장에서 있었던 압사 사고를 예로 들었다.
당시 '상주자전거축제' 행사의 일환으로 MBC 가요콘서트 녹화 무대가 마련됐는데, 관중들은 앞자리에 앉으려고 한 방향으로 서로 먼저 입장하려다가 11명이 압사했다.
반면 이번 이태원 참사의 경우는 해밀톤 호텔 방향으로 올라가려는 사람과 이태원역 방향으로 내려가는 사람이 한 길 위에서 뒤엉켜 군중이 양방향으로 움직였다고 박 교수는 설명했다.
박 교수는 "양방향 유동에서는 골목 폭이 줄어드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나며 정체가 더 심해진다"며 더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이번 이태원 참사와 같이 양방향 유동으로 압사가 발생한 사례가 국내에는 없다며, 대신 2001년 일본 효고(兵庫)현 아카시(明石)시의 사고를 꼽았다.
당시 사람들은 아카시 해협에서 열린 불꽃놀이 행사를 보려고 기차역과 해변을 이어주는 유일한 길인 인도교에 몰렸다.
그러다 불꽃놀이가 끝나갈 때쯤 해변에 가려는 사람들과 기차역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이 인도교에 뒤엉키면서 11명의 관람객이 압사로 사망했다.
아울러 박 교수는 2010년 교육과학기술부에 제출했던 자신의 연구 보고서를 소개하며 골목에 일정 규모 이상의 사람들이 양방향 통행을 하면 자연스럽게 질서를 잡기 어려워진다고 했다.
그는 길이 20m, 폭 6m의 직선 통로에서 양방향 유동이 발생한다고 가정하고, 임의로 배치한 유동 인구를 점차 늘려가며 시뮬레이션했다.
300명에서 700명까지는 처음에 혼잡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일종의 줄이 생기며 질서가 생겼지만, 800명을 넘은 뒤로부터는 혼잡한 상태가 유지됐다.
박 교수는 "길거리에서도 보면 사람들이 걸어 다닐 때 저절로 레인(줄, lane)이 생긴다"며 "일반적으로는 처음에 뒤엉켜 있더라도 점차 안정적인 상태가 되고 정상적인 유동이 발생한다"고 했다.
다만 "800명부터는 아무리 오래 시뮬레이션을 해도 유동이 발생하지 않았다"며 "이태원 사고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을 것으로 유추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양방향 유동이 단방향 유동과 또 다른 점은 'FIS(faster-is-slower) 효과'가 고려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FIS 효과란 군중 속에서 빨리 나가려고 할수록 되려 늦게 탈출하게 되는 현상으로, 질서를 지켜 움직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이동 방법임을 설명할 때 언급된다.
박 교수에 따르면 양방향 유동에서는 이 효과가 미미한데, 이는 사람들이 어떤 속도로 탈출하려고 움직였느냐에 상관없이 밀도 등 다른 요인으로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이태원 사고 당시 "양쪽 출입구에서 들어가는 사람 숫자를 관리하면서, 유동을 단방향으로 만들었으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며 통행을 유도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울러 출퇴근 시간 지하철역 등 일상생활에서 양방향 유동은 쉽게 만나볼 수 있다며, 곳곳에서 위험한 수준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연구와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에서는 지하철 플랫폼에 사람이 얼마나 유입이 되면 철길로 떨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기도 한다"며 "(국내에서는) 그런 연구가 잘 진행이 안 된다"고 말했다.
zer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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