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서가에 놓인 '왕의 책'…외규장각 의궤 귀환 10년의 의미(종합)
'조선 기록문화의 꽃' 연구 성과 한눈에…의궤 297책 등 460여 점 전시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의궤(儀軌)는 조선시대 국가나 왕실의 중요한 행사가 끝난 후 전 과정을 정리해 책으로 엮은 기록물이다.
한 번에 3부, 많게는 9부를 만들었는데 그중 1부는 왕이 읽어보도록 올리고 나머지는 관련 업무를 맡은 관청이나 국가 기록물을 보관하는 사고(史庫)로 보냈다.
왕이 열람을 마친 의궤는 왕실의 귀한 물건들과 함께 규장각이나 외규장각에 봉안했다. 특히 강화도 외규장각에 둔 의궤는 한강이 끝나는 바다 위 '가장 안전한 땅'에서 특별히 보관해 온 귀한 보물이었다.
약 145년 만에 고국 품으로 돌아왔던 외규장각 의궤의 귀환 10년을 돌아보는 자리가 마련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외규장각 의궤와 관련한 그간의 연구 성과를 대중의 시선으로 풀어낸 특별전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를 다음 달 1일 개막한다고 31일 밝혔다.
조선 왕실의 중요한 유산이자 '조선 기록문화의 꽃'으로 평가받는 외규장각 의궤는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가져갔다가 2011년 장기 임대 형식으로 한국에 돌아온 바 있다.
의궤 귀환 10년을 기념하는 이번 전시에서는 외규장각 의궤 297책과 궁중 연회 복식 복원품 등 총 460여 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전시는 '왕의 책'으로 알려진 외규장각 의궤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조명하며 시작된다. 외규장각 의궤는 297책 가운데 5책을 제외한 모두가 왕이 읽어보던 어람용(御覽用) 의궤였다.
어람용 의궤는 최고 전문가가 최상의 재료를 써 만든 만큼 외관부터 남달랐다.
외규장각 의궤 가운데 '장렬왕후존숭도감의궤'(莊烈王后尊崇都監儀軌), '헌종국장도감의궤'(憲宗國葬都監儀軌) 등을 보면 초록색의 고급 비단으로 표지를 만들고 반짝반짝 빛나는 놋쇠 장식을 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역사 기록물로서 자세하고 정확한 기록을 담은 의궤의 면면도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조선 제24대 왕이었던 헌종(재위 1834∼1849)이 1846년 아버지인 익종(효명세자)의 능을 옮긴 일은 실록에 단 3줄만 남아있으나, 의궤에는 총 9책으로 상세하게 설명돼 있다.
마치 사진을 보듯 행사 모습을 생생히 전달하려 한 흔적도 곳곳에 묻어난다.
외규장각 의궤 가운데 57.9%에 해당하는 의궤 172책에는 행사 장면이나 건물 구조, 행사 때 사용한 물건의 형태 등을 그린 도설(圖說)이 포함돼 있어 그림을 보며 이해하기 쉽다. 행차 모습을 그린 반차도(班次圖) 역시 글로 설명 못 하는 부분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임혜경 학예연구사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 의궤는 상세한 내용이 특징"이라며 "(각종 의례, 행사에 있어) 일종의 표준화 매뉴얼로서 그 자체로도 훌륭한 사료일 뿐 아니라 활용 가치도 무궁무진하다"고 설명했다.
전시에서는 국가 의례나 행사에서 바른 예법을 적용하기 위한 의례의 역할도 강조한다.
1784년(정조 8년)에 만들어진 '문효세자책례도감의궤'(文孝世子冊禮都監儀軌)에는 왕세자를 정하는 의례인 '책례'의 준비 과정부터 논의 내용, 업무 분장, 왕세자의 동선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왕이 스스로 예를 실천하고 신하와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이도록 한 점도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조선 왕실은 유교적 혼인 의례로서 신랑이 신부를 직접 맞이해 오는 친영(親迎禮)을 도입하고 이를 혼례 과정을 담은 의궤에도 자세하게 담아냈다. 그 결과 18세기 이후에는 신랑이 신붓집에서 혼례를 올린 뒤 함께 돌아오는 의례가 민간에도 널리 퍼졌다.
이번 전시는 외규장각 의궤를 다양한 볼거리로 설명한 점이 눈에 띈다.
관람객들은 의궤 전량이 전시된 대형 서가 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고, 현재 영국국립도서관이 소장 중인 '기사진표리진찬의궤'(己巳進表裏進饌儀軌)를 복제한 전시품을 직접 볼 수 있다.
복제된 책은 관람객이 직접 한 장씩 넘겨 볼 수 있다. 책 왼쪽 상단에는 마치 연필로 적은 듯한 쪽수가 적혀 있는데 현존하는 의궤 모습 그대로를 따온 것이라고 박물관 관계자는 전했다.
이 밖에도 순조(재위 1800∼1834)가 할머니인 혜경궁을 위해 준비한 진찬(進饌) 잔치는 너비 10m의 대형 화면에서 관람객의 시선을 끈다.
박물관 관계자는 "왕을 위한 책인 외규장각 의궤는 후세를 위한 모범적인 선례(先例)이자, 영구히 전해야 할 왕조의 정신적 문화 자산이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박물관은 외규장각 도서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리며 반환에 기여했던 고(故) 박병선 박사를 기리기 위해 그의 11주기를 전후한 11월 21∼27일 일주일간 무료 관람을 진행한다.
전시는 내년 3월 19일까지.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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