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 자제하자” 분위기 속 고개 드는 ‘책임론’
‘사정정국’으로 지지율 회복했는데…與에 맴도는 ‘긴장감’
(시사저널=조문희 기자)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이태원 압사 참사'가 희생자 구조를 마무리하고 수습 국면을 맞았다. 초점은 피해 수습과 원인 규명, 후속대책 마련에 쏠렸다. 지난 윤석열 정부 첫 국정감사 기간 극렬 대치를 보였던 여야는 간만에 '초당적 협력' 메시지를 내고 수습에 매진하기로 했다.
정치권의 일시적 휴전이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원인 규명 움직임이 일수록 책임론이 고개를 들고 있어서다. 당장 정치권 안팎에선 지난 참사 당시 경찰 대응 방식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국정운영상 책임은 1차적으로 정부여당이 질 수밖에 없다. 여론의 향방에 따라 정치권 공방이 다시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초당적 협력' 한다면서…벌써부터 고개 드는 '책임 공방'
사고 발생 사흘째인 31일 여야는 일제히 "정쟁을 자제하자"며 내부 단속에 나섰다. 서울 한복판에서 유례없는 대규모 압사 참사가 일어난 만큼 정쟁보다는 수습에 만전을 기해야한다는 판단에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둘러싼 각종 사법리스크 수사와 문재인 정권 안보라인 인사를 향한 사정 정국의 고조로 살얼음판을 걷던 정치권에 일단 휴전이 시작된 셈이다.
다만 전날에 비해 기류는 묘하게 달라졌다는 게 중론이다. 정치권 안팎에서 경찰로 대표되는 정부의 대응 방식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면서다. 핼러윈을 앞두고 이태원 일대에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충분히 대비하지 않았다는 게 비판의 골자다. 정부는 경찰 인력 200여 명을 투입했다지만, 부족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야권 지도부는 점차 "막을 수 있었던 사고"라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사전 조치가 미흡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책임론을 꺼내드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날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청래 의원은 "일방통행 조치만 있었어도, 안전요원 배치만 했어도, 인파 흐름을 모니터링만 했어도 일어나지 않을 사고였다"고 했고, 장경태 의원은 "세월호 사고 이후 고작 8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왜 2022년 대한민국이 참담하게 무기력해졌는지 반드시 답을 찾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사고 수습에 '초당적 협력'을 하겠다면서도 원인 규명을 철저히 하겠다는 입장이라, 향후 정부를 겨냥한 책임 공방을 주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사정정국'으로 회복한 지지율 깎일라…與에 내려진 '경계령'
여권엔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통상 대형 참사의 책임은 정부여당이 지는 게 수순이기 때문이다. 당장 가까운 지난 8월 수도권에 쏟아진 집중 호우로 도심 곳곳이 물난리를 겪었을 때에도 비난의 화살은 윤석열 정부를 향했다. 컨트롤타워가 미흡했다는 지적부터 수습 과정엔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이 막말 논란을 일으켰다.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선 '재난 대응'이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 부정평가 사유에 포함될 만큼 여론에 악영향을 끼쳤다.
보수 정권 전체로 확대해보면, 2014년 세월호 참사가 거론된다. 수백명 단위 대규모 인명 피해 사고가 발생한 것은 세월호 참사 이후 8년 만에 처음이라서다.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 정권 탄핵의 시발점으로 여겨지는 사건이다. 여권으로선 이번 이태원 참사와 세월호 참사를 비교선상에 두는 것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여권 지도부가 일제히 "지금은 추모의 시간이다. 추모를 정쟁으로 변질시키지 말라"고 견제구를 던지는 배경이다.
야권을 겨냥한 사정 정국의 고삐를 쥐고 지지율 반전을 꾀하려던 여권으로선 당황스러운 기류가 읽힌다. 실제 지지율에서도 상승세가 감지되던 차였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28일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25~27일, 1001명)에선 6주 만에 30%선에 진입했고, 이날 발표된 리얼미터 자료(미디어트리뷴 의뢰, 24~28일, 2521명)에서는 무려 16주 만에 30% 중반대를 회복했다. 사정정국에 따른 보수층 결집과 이에 따른 중도층의 변화가 지지율 상승세를 견인했다는 평가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현재로선 이태원 참사가 여론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미지수다. 이 때문에 여야는 이번 이태원 참사 관련 여론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일단 여야는 모두 설화 한 번에 비난의 타깃이 될 수 있다고 판단, 자당 인사들에 불필요한 공개 활동이나 사적 모임을 자제하고 메시지를 정제할 것을 주문했다. 대통령실도 애도 이외에는 공개 메시지 표명을 자제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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