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조7000억 규모 도박 사이트 총책 행방 ‘오리무중’
(시사저널=구자익 인천본부 기자)
최근 수도권 일대의 성인PC방을 통해 조직적으로 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191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고스톱'과 '바둑이' 등 게임 프로그램을 이용한 도박판을 운영하면서 5조7000억원 규모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 도박 사이트의 본사는 중국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중국 본사는 도박 사이트를 성인PC방에 연결해 주는 서버를 관리·운용하고, 도박판 콜센터를 운영하면서 딜러비 명목으로 거액의 수수료를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아직 중국 본사 총책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경찰은 중국 본사의 총책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뚜렷한 증거나 증언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 본사의 총책은 '김제 마늘밭 110억원 사건'으로 수배된 이대근씨(59)로 지목되고 있다. 이씨는 고스톱과 바둑이 등 게임 프로그램을 이용한 도박 사이트를 처음으로 성인PC방에 연결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무려 10년 넘게 수배 중인데도 성인PC방 시장점유율이 높아 고스톱과 바둑이 등 게임 프로그램을 이용한 도박 사이트의 '전설'로 불리기도 한다.
사이트 운영 수익금, 피라미드식 배분
인천경찰청은 10월23일 고스톱과 바둑이 등 게임 프로그램을 이용한 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국내 본사 영업 책임자와 자금세탁 책임자, 환전 책임자 등 20명을 구속했다. 또 총판업자와 종업원 등 17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이들에게 범죄단체조직 및 활동 혐의와 도박 장소 등 개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이들은 2014년 1월부터 올해 7월까지 무려 8년 이상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5조7000억원 상당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이들이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사용한 대포통장 등 은행계좌 236개를 분석해 655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을 특정했다. 이어 이들이 보유한 현금 14억5000만원과 예금채권 8억원, 대여금채권 6억1000만원, 주택 등 부동산 27억1300만원, 임대보증금 7900만원, 금괴 1.4925kg(1억2000만원 상당), 수입자동차(1억9000만원 상당) 등을 확보했다. 이어 이 모두를 포함한 67억원 상당을 몰수·추징 보전했다.
경찰은 이번에 적발된 도박 사이트 16개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와 게임물관리위원회에 사이트 차단과 불법 게임 등록을 요청했다. 불법행위가 드러난 성인PC방 61곳에 대해선 행정처분을 의뢰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해외 서버를 이용하면서 게임머니 충·환전과 회원 모집·관리, 수수료 정산 등에 필요한 국내 콜센터 사무실을 수시로 옮긴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의 압수수색이나 체포 등 강제수사에 대비해 블랙박스 기록 초기화와 아이폰 사용, 휴대폰 비밀번호 제공 금지, 묵비권 행사 등 행동요령도 매뉴얼 형식으로 공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총책 지목되는 이씨, 중국 도피설 무성
도박 사이트 운영 수익금은 피라미드 방식으로 분배됐다. 중국 본사의 총책은 콜센터를 운영하면서 판돈을 충전해 주고, 베팅 금액의 12.7%를 딜러비 명목으로 뗀 후 2.4%를 챙겼다. 나머지는 국내 본사 영업 책임자 0.7%, 총판업자 1.1%, 성인PC방 운영자 8.5% 등 순으로 배당되도록 했다. 또 현금을 인출하거나 환전할 때마다 담당업자에게 해당 금액의 5%씩 지급되도록 관리했다.
경찰은 중국 본사의 총책이 2014년부터 A씨(59) 등 4명의 국내 본사 영업 책임자와 자금세탁 책임자 등을 순차적으로 규합해 조직적인 역할 분담체계를 갖춘 범죄단체를 조직한 것으로 판단했다. 중국 본사 총책의 신원에 대해선 아직 수사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번에 경찰에 적발된 도박 사이트는 수차례에 걸쳐 이름이 바뀌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단속될 때는 '룰루게임'로 불렸다. 고스톱과 바둑이뿐만 아니라 슬롯과 홀덤 등 게임 프로그램이 탑재됐었다. 고스톱과 바둑이 게임 프로그램을 탑재한 도박 사이트 중에선 국내 성인PC방에 가장 많이 깔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룰루게임은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자 성인PC방에서 사라졌다. 요즘엔 '마그마게임'으로 불리는 도박 사이트가 새로 생겼다. 경찰에 단속된 도박 사이트가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는 셈이다.
성인PC방 운영자들 사이에선 이들 두 개의 도박 사이트가 '이대근 사이트'로 불린다. 실제로 한 성인PC방 운영업자는 "국내 거의 모든 성인PC방엔 고스톱과 바둑이 게임 프로그램 중심의 도박 사이트가 깔려 있고, 대부분이 이씨가 개발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이는 이번에 단속된 도박 사이트의 중국 본사 총책이 '김제 마늘밭 110억원 사건'의 주범으로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김제 마늘밭 110억원 사건은 2011년 4월10일 불거졌다. 이씨가 자신의 매형을 통해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벌어들인 수익금을 전북 김제시 금구면 선암리 축령마을의 한 마늘밭에 묻어둔 것으로 밝혀진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이씨의 매형은 징역 1년, 이씨의 누나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이씨의 친동생은 징역 1년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마늘밭에서 발견된 110억원은 모두 국고에 환수됐다.
앞서 이씨는 고스톱과 바둑이 게임 프로그램을 활용한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벌어들인 수익금을 매형 등에게 맡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씨는 성인PC방 운영업자에게 간판 비용 등을 지원해 주면서 도박 사이트를 확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이씨가 개발한 도박 사이트 이용자가 크게 늘어났고, 자연스럽게 국내 대부분의 성인PC방에 이씨의 도박 사이트가 깔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씨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수배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소재나 행적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성형 후 중국으로 도피했다는 설이 무성하다. 또 자신을 노출하지 않고 최측근들을 통해 도박 사이트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해 10월에 불법 인터넷 도박 사이트에 대한 첩보를 바탕으로 1년 넘게 수사를 진행했다"며 "아직 중국 본사 총책의 신원에 대해 밝혀진 게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검거된 피의자들도 중국 본사 총책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진술하고 있지만, 조직적으로 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총책을 검거해 반드시 형법상 범죄단체를 조직한 범죄를 적용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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