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대한민국 혁신 성장엔진 '지식재산'
6월 21일, 우리나라는 과학기술계를 비롯한 모든 국민의 염원 아래 누리호 발사에 성공했다. 1톤 이상의 인공위성체를 자력으로 우주 궤도에 진입시킨 일곱 번째 국가가 된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 우주기술 특허출원 순위도 세계 7위인 것처럼,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한 국가 순서와 특허출원 순위도 대부분 일치한다.
특허 출원량과 국가 기술경쟁력의 상관관계는 주력산업인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액정디스플레이(LCD) 분야 경우 2011년 중국이 특허 출원량에서 우리나라를 추월한 후, 7년 뒤인 2018년 시장점유율도 역전했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분야 경우도 2017년 중국이 특허 출원량에서 우리를 추월했는데, 디스플레이 업계는 정확히 7년 뒤 2024년에 모바일 OLED 시장점유율도 중국이 앞설 것으로 예측한다. 두 사례는 '특허 출원량이 국가별 기술 수준을 측정하는 가늠자이자 미래 시장의 국가별 산업경쟁력을 예측하는 선행지표'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특허를 포함한 지식재산이 창의적 아이디어와 기술을 보호하여 혁신기업을 성장하게 하는 제도적 안전망일 뿐만 아니라 국가 기술경쟁력을 확보하고 경제성장을 이끌어 갈 원동력임을 시사한다.
최근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고 글로벌 경기침체 가능성이 현실화하고 있는 가운데, 지식재산의 역할과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따라서 기술패권과 저성장 시대에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우리 기업의 지식재산을 양·질적으로 성장시키는 '전략적 지식재산 정책'을 보다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기본에 충실히 하고자 하는 '본립도생(本立道生)'의 자세로 고품질 심사·심판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기반을 단단히 다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식재산 분야의 상임이사국이라 불리는 지식재산 선진 5대 강국(IP5)의 일원으로 발돋움했지만 특허심사 인력이 부족해 1건당 심사 시간이 미국, 중국 등 주요국 대비 절반에 불과할 정도로 심사환경이 녹록지 않다.
근본적인 개선을 위해서는 전 분야 심사인력을 주요국 수준으로 증원해야겠지만 정부의 한정된 자원을 고려하면 디지털 시대를 주도할 첨단산업 분야 특허심사관을 우선으로 충원하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특히 반도체산업 분야의 전문 퇴직 인력을 특허심사관으로 채용하면 신속·정확한 심사로 우리 기업의 특허 선점을 지원함과 동시에 핵심 인력의 해외 유출도 방지해 관련 산업의 국가경쟁력 확보에 기여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첨단기술 분야 특허의 신속한 권리화를 위해 우선심사 대상을 확대하고, 인공지능을 심사·심판시스템에 접목해 업무 효율화도 병행해야 한다. 다음으로 과학기술계와 산업계가 체감할 수 있도록 지식재산 창출·활용·보호 서비스를 혁신해 우리 기업이 지식재산을 기반으로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창출 측면에서는 세계 5억2000여건 특허 빅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산업별 특허정보를 분석하면 주요 국가·기업 기술경쟁력과 핵심 기술인력, 세부 기술별 특허 선점·공백 영역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원천·핵심 특허를 확보할 수 있는 산업별 유망기술을 발굴하고 연간 30조원에 달하는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의 중복투자를 방지할 수 있다.
지식재산의 산업적 활용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지식재산의 경제적 가치를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 지식재산 거래·평가 정보를 수집한 통합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 발명의 평가기관과 금융기관 등에 제공하고, 지식재산 평가관리센터를 설치해 평가 품질을 주기적으로 모니터링·관리함으로써 지식재산 가치평가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 아울러, 중소·벤처기업이 지식재산을 기반으로 사업자금을 충분히 조달할 수 있도록 기술금융(316조원)의 1.9% 수준에 불과한 지식재산 금융(6조원) 규모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창출된 지식재산이 경제성장 원동력으로 잘 활용되기 위해서는 두꺼운 보호막 또한 필요한데 국내 특허침해소송에서 특허권자의 승소율이 7.7%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이는 변호사의 기술·특허 전문성 부족, 침해증거 수집의 어려움 등에 기인한다. 따라서 주요 선진국과 같이 변호사뿐만 아니라 기술·특허 전문가인 변리사를 대리인으로 추가해 선임할 수 있도록 소송대리제도를 개편하고, 침해자로부터 침해증거를 쉽게 입수할 수 있도록 증거수집제도를 개선하는 등 소송제도를 선진화하여 지식재산 보호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기업이 지식재산을 기반으로 해외에 성공적으로 진출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디지털경제 전환에 따른 글로벌 유통 증가와 한류 확산으로 해외에서의 K-브랜드 피해가 증가해 피해 규모가 연간 약 22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 우리 기업의 지식재산권 침해 위험성이 높고 시장 중요성이 큰 지역으로 떠오른 베트남, 인도, 멕시코 등에 특허관 파견을 확대해 현지에서 우리 기업의 지식재산을 체계적으로 보호하는 한편, 글로벌 전자상거래 플랫폼에 대한 위조상품 모니터링도 대폭 확대해 해외에서 보호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 또 우리 기업이 국내와 유사한 제도로 지식재산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중동, 남미 등 개도국에 한국형 지식재산 시스템 수출을 확대하고,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등 국제기구에 한국인 전문가가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우리 기업에 우호적인 지식재산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최근 유럽특허청(EPO)의 발표에 따르면 지식재산 집약 산업은 평균 임금이 비 집약산업보다 40.7% 더 높고, EU 전체 무역흑자에서 76.1%를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연구에서는 최초 특허출원이 등록된 스타트업은 거절된 스타트업에 비해 5년 후 고용증가율이 4.1배, 출 증가율이 2.9배였다. 이처럼 지식재산은 더 많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가와 기업의 산업경쟁력을 강화해주는 성장엔진이며, 기술경쟁력을 바탕으로 우리 경제를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전환할 핵심 열쇠이다. 전략적 지식재산 정책 추진을 통해 지식재산이란 강력한 성장엔진을 대한민국호에 장착함으로 특허출원 세계 3대 강국으로 도약하고 나아가 기술패권 시대를 주도하는 기술 강국으로 발돋움하길 기대해본다.
이인실 특허청장 islee426@korea.kr
이인실 특허청장은
1985년 변리사 시험에 합격, 37년간 지식재산 전문가로 활동해왔으며, 지난 5월 민간출신 최초로 특허청장에 임명됐다. 부산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이화여대와 워싱턴대에서 법학석사, 고려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 국제변리사연맹 한국협회 회장, 대한변리사회 부회장, 한국여성발명협회 회장, 지식재산포럼 회장을 두루 역임하며 지식재산 정책 수립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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