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컵 보증금제 축소로 ‘낙동강 오리알’된 일회용컵 수거 시범 업체[가보니]
“일회용컵 수거하러 왔습니다”
전주 덕진 지역자활센터(덕진 자활센터) 소속 이광복씨(52), 김성우씨(38)가 지난 26일 전주 지역 한 프랜차이즈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 말했다. 카페 직원은 종이 상자에 일주일간 모아뒀던 일회용컵 등을 건냈다. 이씨와 김씨는 이날 2시간 동안 프랜차이즈 카페 8곳을 돌았다. 이씨는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이 언젠가는 되지 않겠는가”라며 “그걸 믿고 일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 환경부는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을 올해 12월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시행을 3주 앞두고 있을 때였다. 지난 9월에는 제도 시행 범위를 전국에서 제주·세종으로 축소했다.
이씨와 김씨가 일하는 전주도 환경부가 정한 선도 시행 지역에서 빠졌다. 덕진 지역자활센터와 같은 일회용컵 수거·운반 업체는 혼란에 빠졌다. 김씨는 “12월에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시행되면 많이 바빠질 것을 대비하고 있었다”며 “(제도 시행 지역이 줄어들면) 일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 일하는 처지에서는 불안하다”고 말했다.
덕진 지역자활센터는 지난 1월부터 일회용컵 회수 시범 사업을 해왔다. 보증금 반환, 취급 수수료 등을 담당하는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와 협약도 맺었다.
덕진 자활센터는 일회용컵 회수 사업으로 안정적인 이익을 거둘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시행되면 수거·운반업체는 회수 비용으로 표준컵 4원, 비표준 10원을 받는다. 사회복지시설인 지역자활센터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수급자를 고용해 사업단을 만든다. 사업단을 유지하려면 매출이 지자체에서 받는 사업비의 10% 이상이 되어야 한다. 일회용컵 회수 사업은 충분히 이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일회용컵 보증금제가 무산되면서 덕진 지역자활센터가 기대한 수익은 사라졌다. 반면 비용은 늘었다. 제도 시행에 대비해 대여한 일회용컵 수거 창고에 매월 130만원이 나간다. 차량과 지게차도 미리 사들였다. 수거를 하는 사람들에게 인건비도 줘야 한다. 최정근 전주 덕진 지역자활센터 팀장은 “지난 1월부터 무급으로 시범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며 “제도 시행 지역에서 빠진 이후에 센터에서 이 사업을 유지할지를 놓고 논의를 했지만,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자활사업’이라는 가치를 보고 계속해보자고 결론을 냈다”고 말했다.
덕진 자활센터는 전주 시내 500여개 프랜차이즈 카페 중 약 70개에서 일회용컵 수거 사업을 시작했다. 전주가 제도 시행 지역에서 빠지면서 지금은 약 50개로 줄었다.
덕진 자활센터는 일회용컵 뿐 아니라 다른 재활용품도 모은다.‘자원순환’ 사업으로 확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차질이 생겼다. 최 팀장은 “일회용컵을 수거에서 수익이 발생하지 않다 보니, 알루미늄 캔, 우유팩, 커피박 등이 이제 주가 됐다”며 “일회용컵 보증금제에 더해 수익을 낼 수 있으면 새 사업단을 만들어서 약 15명 정도 자활할 수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커피박을 이용해 화분, 연필을 만들기 위해 센터는 1000만원에 달하는 기계를 구입했다.
일회용컵 수집·운반 사업자로 등록한 80여개 사업자 중 55개가 지역자활센터 사업단이었다. 다른 지역자활센터도 차량·창고 등 시설에 일할 사람까지 구해뒀다가 낭패를 당했다. 이한나 한국지역자활센터협회 사업팀장은 “이 사업을 자활사업으로 전국적으로 해서 망을 깔아보자는 의미로 많은 센터가 제도 시작 시기에 맞춰서 등록했었다”며 “6월 시행 예정이던 제도를 준비하고 있었고, 제도 유예는 시행 3주 앞두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예산을 집행해서 조건을 갖춰놓은 자활센터가 대다수”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전주시의 의지가 있다면 전주도 선도 지역에 포함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덕진 자활센터는 큰 기대를 안 하고 있다. 박준홍 전주 덕진 지역자활센터장은 “전주시에도 제안했고, 시의원도 만나서 전주가 제도 시행 지역에 들어가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여의치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일회용컵 보증금제의 전국 단위 시행이 2024년 이후에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덕진 자활센터는 그래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일회용컵 수거를 계속하기로 했다. 최 팀장은 “전주시가서 다른 방향성을 이야기하기 전까지는 계속할 것”이라며 “2024년에 저희가 카페에 찾아가 컵 수거를 설득할 때 ‘어차피 또 엎어질 건데’라는 생각을 하실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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