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현존 최고(最古) ‘데니 태극기’… “대한민국의 보물, 당연히 한국 와야”
이소연 기자 2022. 10. 31.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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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이 지났는데도 '데니 태극기'를 처음 본 날을 생생하게 기억해요. 어두컴컴한 지하실에 내려가 먼지 덮인 상자를 열어본 순간 바로 알았어요. 아, 이건 대한민국의 보물이다" 운명처럼 만났다.
데니 태극기가 보물이 된 지 1주년을 맞아 한국을 찾은 스워타우트 교수를 10월 28일 오후 '고종의 서재'로 알려진 서울 경복궁 집옥재에서 만났다.
그는 "창고나 지하실이 아니라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데니 태극기를 보며 역사를 배울 수 있게 돼 기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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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 태극기’ 귀환 이끈 스워타우트 교수
수개월 동안 밤새도록 도서관을 샅샅이 뒤져 찾아낸 ‘데니 외교문서’에는 데니 변호사가 조선 독립을 위해 분투한 흔적이 담겨 있었다. 혹 미국에 살고 있는 그의 후손들이 더 많은 사료를 갖고 있지 않을까.
데니의 가계도를 찾아내 오리건 주에 살고 있는 후손들을 수소문했다. 그리고 마침내 1977년 후손인 윌리엄 랠스턴 변호사 부부의 집 지하실에 있는 먼지 덮인 상자에서 ‘데니 태극기’를 만났다.
스워타우트 교수가 없었다면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 ‘데니 태극기’는 존재조차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10월 25일 데니 태극기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하며 “1882년 고종이 태극기를 제정한 이후인 1889~1890년 무렵 제작된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고 밝혔다.
데니 태극기가 보물이 된 지 1주년을 맞아 한국을 찾은 스워타우트 교수를 10월 28일 오후 ‘고종의 서재’로 알려진 서울 경복궁 집옥재에서 만났다. “외세의 침략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독립을 쟁취한 한국의 역사를 사랑한다”는 그는 유창한 한국말로 “생김새는 여러분과 다르지만, 조선의 독립을 지키려 했던 데니처럼 한국의 역사와 유물을 지키고 싶었다”며 웃었다.
그는 데니 태극기를 세상에 알리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5년 동안 후손을 만나 1981년 이들이 데니 태극기를 한국에 기증하도록 설득했다. 사실 ‘1890년 데니에게 이 태극기를 하사한다’는 고종의 친필 문서가 남아 있어 후손들이 간직한다고 해도 설득할 명분은 마땅하지 않았다. 스워타우트 교수는 “미국에 있는 데니의 후손들이 갖고 있다면 지하실에서 점차 그 의미가 잊히고 말 것”이라며 “이 태극기가 있어야 할 곳은 한국이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 독립국가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담아 만든 국기입니다. 미국에 남아 있는 것보다 그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낸 대한민국에 갔을 때 가장 뜻 깊죠. 결국 랠스턴 변호사가 1981년 ‘더 늦기 전에 이 태극기를 한국에 돌려보내고 싶다’고 했을 때, 역사학자로서 할 일을 한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지난해 이 태극기가 고국의 품으로 돌아온 지 41년 만에 보물이 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스워타우트 교수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는 “창고나 지하실이 아니라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데니 태극기를 보며 역사를 배울 수 있게 돼 기뻤다”고 말했다. 현재 데니 태극기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데니 태극기에는 자유롭고 강한 나라가 되고자 했던 조선의 희망이 담겨 있어요. 이미 그 꿈을 이뤄낸 한국에서 젊은 청년들이 이 태극기를 보면서 그보다 더 큰 희망을 품길 바랍니다.”
“45년이 지났는데도 ‘데니 태극기’를 처음 본 날을 생생하게 기억해요. 어두컴컴한 지하실에 내려가 먼지 덮인 상자를 열어본 순간 바로 알았어요. 아, 이건 대한민국의 보물이다…”
운명처럼 만났다.
1975년 미국 오리건대 도서관에서 손바닥만한 크기의 고서를 발견했다. 19세기 말 중국에 다녀온 미국 외교관이 남긴 문서. 포틀랜드 출신 미 변호사 오언 데니(1838~1900)가 1886년 3월부터 1890년 4월 18일까지 조선에 머물며 고종의 외교자문을 지냈다는 기록이었다. 당시 석사 논문으로 18, 19세기 조·미 외교사를 연구하던 로버트 R. 스워타우트 캐럴대 역사학과 명예교수(73)의 눈이 반짝였다.
운명처럼 만났다.
1975년 미국 오리건대 도서관에서 손바닥만한 크기의 고서를 발견했다. 19세기 말 중국에 다녀온 미국 외교관이 남긴 문서. 포틀랜드 출신 미 변호사 오언 데니(1838~1900)가 1886년 3월부터 1890년 4월 18일까지 조선에 머물며 고종의 외교자문을 지냈다는 기록이었다. 당시 석사 논문으로 18, 19세기 조·미 외교사를 연구하던 로버트 R. 스워타우트 캐럴대 역사학과 명예교수(73)의 눈이 반짝였다.
수개월 동안 밤새도록 도서관을 샅샅이 뒤져 찾아낸 ‘데니 외교문서’에는 데니 변호사가 조선 독립을 위해 분투한 흔적이 담겨 있었다. 혹 미국에 살고 있는 그의 후손들이 더 많은 사료를 갖고 있지 않을까.
데니의 가계도를 찾아내 오리건 주에 살고 있는 후손들을 수소문했다. 그리고 마침내 1977년 후손인 윌리엄 랠스턴 변호사 부부의 집 지하실에 있는 먼지 덮인 상자에서 ‘데니 태극기’를 만났다.
스워타우트 교수가 없었다면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 ‘데니 태극기’는 존재조차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10월 25일 데니 태극기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하며 “1882년 고종이 태극기를 제정한 이후인 1889~1890년 무렵 제작된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고 밝혔다.
데니 태극기가 보물이 된 지 1주년을 맞아 한국을 찾은 스워타우트 교수를 10월 28일 오후 ‘고종의 서재’로 알려진 서울 경복궁 집옥재에서 만났다. “외세의 침략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독립을 쟁취한 한국의 역사를 사랑한다”는 그는 유창한 한국말로 “생김새는 여러분과 다르지만, 조선의 독립을 지키려 했던 데니처럼 한국의 역사와 유물을 지키고 싶었다”며 웃었다.
그는 데니 태극기를 세상에 알리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5년 동안 후손을 만나 1981년 이들이 데니 태극기를 한국에 기증하도록 설득했다. 사실 ‘1890년 데니에게 이 태극기를 하사한다’는 고종의 친필 문서가 남아 있어 후손들이 간직한다고 해도 설득할 명분은 마땅하지 않았다. 스워타우트 교수는 “미국에 있는 데니의 후손들이 갖고 있다면 지하실에서 점차 그 의미가 잊히고 말 것”이라며 “이 태극기가 있어야 할 곳은 한국이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 독립국가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담아 만든 국기입니다. 미국에 남아 있는 것보다 그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낸 대한민국에 갔을 때 가장 뜻 깊죠. 결국 랠스턴 변호사가 1981년 ‘더 늦기 전에 이 태극기를 한국에 돌려보내고 싶다’고 했을 때, 역사학자로서 할 일을 한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지난해 이 태극기가 고국의 품으로 돌아온 지 41년 만에 보물이 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스워타우트 교수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는 “창고나 지하실이 아니라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데니 태극기를 보며 역사를 배울 수 있게 돼 기뻤다”고 말했다. 현재 데니 태극기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데니 태극기에는 자유롭고 강한 나라가 되고자 했던 조선의 희망이 담겨 있어요. 이미 그 꿈을 이뤄낸 한국에서 젊은 청년들이 이 태극기를 보면서 그보다 더 큰 희망을 품길 바랍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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