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과 양인자, 그 운명적 만남
LP로 데뷔해(1975년, ‘돌아와요 부산항에’) 카세트테이프와 CD를 거쳐 디지털 음원(2013년, ‘Bounce’)까지 석권한 가수는 우리 가요사에 단 한 명뿐이다. 그래서 그는 ‘살아있는 전설’이다. 앞으로도 없을 유일한 ‘가왕’이다. 그는 최초의 ‘오빠’이자 최초의 K-Pop 스타다(일본 활동). 50년간 노래한 그는 올해 72세다.
싱어송라이터인 조용필 음악은 끝없이 새롭고 실험적인 장르, 빼어난 연주와 가창력에서도 따를 자가 없지만, 그 이상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노랫말이다. 그의 노래 가사들은 하나도 예사롭지 않다. 그도 사랑과 이별과 삶의 애환을 노래했지만 가사는 60~70년대 대중가요처럼 지루하거나 눈물을 짜내거나 통속적이지 않다.
노랫말은 조용필의 음악을 관통하는 혼이다. 사색과 통찰과 치유가 담긴 시적인 단어와 빛나는 문장, 세련된 감성이 그의 가사에는 존재한다. 인간 내면의 고독, 자유로의 지향, 착한 본성으로의 회귀, 동심의 세계, 순수와 아름다움의 추구, 미래 지향성들이 노랫말에 내포되어 있다. 조용필의 노래를 듣고 자란 중·장년의 삶에 그의 노래 한두 소절쯤은 아마도 깊게 각인되어 있을 거다. 그의 노래가 데뷔 후 반세기가 돼가는 오늘날까지도 애창되고 있는 것은 가사의 생명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랜 군사 독재는 끝났으나 새로운 독재가 뒤를 이은 1980년대는 정치·사회·경제적 대변혁의 시대였다. 대중은 새로운 스타일의 노래와 노랫말에 갈증을 느꼈다. 조용필은 70년대가 저무는 1979년 12월 6일 2년간의 대마초 해금에서 풀려난다. 그 한 달 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차라리 그대의 흰 손으로 나를 잠들게 하라’라고 애절하게 노래한 ‘창밖의 여자’. 노래와 노랫말이 대중가요사에 충격을 던진 이 노래는 1980년대 조용필 시대의 서곡이었다.
이 노래는 동명의 동아방송 라디오 드라마 주제가였다. 드라마 극작가인 배명숙이 가사를 썼다. 그런데 부탁한 작곡가가 펑크를 내버리는 바람에 방송금지가 해제된 지 며칠 되지 않았던 조용필에게 작곡을 부탁해 급하게 만든 노래다. 이 노래는 그에게 트로트 가수의 이미지를 단박에 벗기고 이 노래가 실린 그의 1집은 한국 가요 사상 최초의 밀리언셀러가 된다.
조용필의 1집 앨범에서부터 2013년 ‘바운스’가 실린 19집 앨범 ‘헬로(Hello)’까지 188곡 노래에는 총 76명의 작사자가 참여했다. 조용필은 이 중 44%에 달하는 82곡을 작곡했지만, 작사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그가 작사·작곡한 노래는 6곡에 불과하다. 대표적 노래는 ‘꿈’이다.
조용필 노래의 가장 중요한 작사가로는 네 명이 꼽힌다. 양인자, 김순곤, 박건호, 하지영이다. 하지영 19%, 김순곤 13%, 양인자 12%, 박건호 10%로 총 54%나 된다. 문학적 자질이 풍부한 이 네 명의 노랫말은 참신하고 파격적이었다. 그래서 특히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실제 공연에서도 자주 불렸다. 이 중 1980년대에 만든 게 50%라는 점은 노랫말이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네 명의 작사가 중에서도 한국 대중가요의 빼어난 작사가 양인자를 먼저 말해야 한다.
소설가이자 드라마 작가인 양인자(77)는 조용필 노래 20곡의 가사를 썼다. 가장 많이 알려진 노래는 ‘그 겨울의 찻집’, ‘바람이 전하는 말’, ‘킬리만자로의 표범’, ‘Q’, ‘서울 서울 서울’,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지를’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노래는 ‘눈물로 보이는 그대’, ‘나의 노래’, ‘얄미운 님아’, ‘내 가슴에 내리는 비’, ‘내 청춘의 빈잔’, ‘아이 러브 수지’, ‘꽃이 되고 싶어라’, ‘인생이 장미꽃이라면’, ‘눈이 오면 그대가 보고 싶다’, ‘진’ 등이 있다.
양인자는 다른 가수의 노래도 많이 작사했다. 임주리 ‘립스틱 짙게 바르고’, 문주란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김국환 ‘타타타’, 이선희 ‘알고 싶어요’, 혜은이 ‘열정’, 남진 ‘나야 나’, 뮤지컬 ‘명성황후’ 노랫말을 썼다.
양인자의 가사는 조용필의 분위기, 조용필 노래의 질감과 가장 잘 어울린다. 가사의 느낌은 대체로 외롭고 우울하고 서럽고 비장하다. 때론 사랑과 삶에 대해 반어적이고 역설적이다. 가사에는 바람, 한숨, 여성, 눈물, 죄, 노을, 고독, 술, 추억, 야망 등이 자주 등장한다. 그는 사랑의 아픔과 이별의 고통, 사랑의 허무적 속성, 이별 이후의 각오, 버린 자에 대한 증오, 인간의 내면과 갈등과 야망을 강하고 솔직하고 파격적인 어휘로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그 겨울의 찻집)
‘바람이 불어오면 귀 기울여봐’(바람이 전하는 말)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킬리만자로의 표범)
‘너를 마지막으로 나의 청춘은 끝이 났다’(Q)
‘이별이란 헤어짐이 아니었구나’(서울 서울 서울)
‘떠나자 짐승이 되지 않기 위해서, 아니 진실로 짐승이 되기 위해서’(말하라 그대들이...)
1985년 8집을 함께 작업한 당대의 작곡가 김희갑-양인자-조용필의 만남은 그야말로 ‘사건’이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 ‘그 겨울의 찻집’, ‘바람이 전하는 말’, ‘내 가슴에 내리는 비’ 등 총 12곡 중 4곡을 함께 만들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양인자가 대학 1학년 때 신춘문예에 떨어진 후 일기장에 쓴 메모에 살을 붙인 5분이 넘는 긴 노래다. 양인자는 가장 애착이 가는 곡으로 이 노래를 꼽는다.
조용필은 한 인터뷰에서 “두 분이 저로 인해 친해져서 부부가 됐다. 셋이서 함께 식사하다가 슬쩍 도망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양인자 노랫말은 대부분 남편 김희갑(86)이 곡을 입혔다. 1980년대 이 두 사람의 콜라보는 히트곡의 보증수표였다. 금슬 좋기로 유명한 이 부부가 만든 곡은 무려 4500여 곡이나 된다.
1989년에 나온 조용필 11집 앨범은 양인자 작사, 김희갑 작곡의 노래로만 구성됐다. 애절한 사랑과 이별을 노래한 ‘Q’와 조용필의 가장 긴 노래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이 담겼다.
양인자-김희갑 부부는 수많은 가수들과 작업했지만 조용필을 단연 최고의 파트너로 꼽는다. 양인자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조용필씨는 몇 줄 안 되는 가사도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뚫어져라 보면서 음미하고 고민한다.”
(참고 문헌)
-‘조용필 대중가요에서 노랫말의 역할과 특성 연구’(2015년, 하명숙,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논문)
-‘문학으로 읽는 조용필’(2021년, 유성호 한양대 국문과 교수 저서)
◆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언론과 글쓰기를 강의했고, 언론중재위원과 신문윤리위원을 지냈다. hkb8210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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