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돼서 기뻐하더니" "막내랑 맥주 약속했는데…믿기지 않아"

최성국 기자 정다움 기자 이수민 기자 이승현 기자 2022. 10. 31. 13:2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부모 머리 염색 해준 막내딸…해외여행 준비하던 막내아들
'이태원 참사' 광주·전남 희생자들 빈소엔 통곡과 눈물만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마련된 이태원 핼러윈 참사 임시 추모공간을 찾은 시민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2022.10.31/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광주·장성=뉴스1) 최성국 정다움 이수민 이승현 기자 = 미용사의 꿈을 이뤄 아버지의 머리를 직접 염색해 주던 막내딸. 코로나19로 못간 해외여행을 꼭 가자며 가족들과 돈을 모아온 막내 아들. 함께 상경한 10년지기 단짝의 승진과 취업을 축하하기 위해 이태원을 찾은 20대 청년들.

지난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벌어진 참사로 허망하게 자식을 잃어야 했던 가족들의 울음은 31일 광주 각 장례식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광주 광산구에 안치된 23세 여성 오모씨의 유족들은 금쪽같은 딸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하늘만을 원망하고 있다.

어머니는 여전히 딸의 사망 소식을 믿지 못하고 있다. 어머니는 "사고 당일 오후 6시에 통화했다. 지하철이라고 조용히 속삭이면서 '은행원 정규직 필기시험 합격한 기념으로 놀러 간다'고 했다"며 "너무 기뻐서 잘 다녀오라고 했는데 어떻게…"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사회초년생 오씨는 지난 2월 계약직으로 은행에 취업했다. 얼마 전에는 정규직 전환 채용시험에 응시,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정규직이 되면 고향인 광주로 발령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은 가족들은 다음주 고향을 찾을 딸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오씨와 함께 이태원 축제에 갔다가 참변을 당한 김모씨(23·여)는 같은 장례식장에 나란히 빈소가 마련됐다.

이들은 친자매와 다름없는 십년지기 단짝 친구였다. 오씨와 함께 상경해 백화점에 다닌 김씨는 3개월 전 취업해 최근 승진을 했다. 취업과 승진을 기념하기 위해 이태원을 찾은 이들의 휴대폰에는 사고 전 행복하게 찍은 사진들이 남겨져 있다.

김씨 아버지는 "지난달 생일이었던 딸이 용돈을 받아가던 모습이 생생하다"며 "너무나도 슬픈데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자책했다.

31일 오전 전남 장성군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로 숨진 A양(19·여)의 빈소에서 유가족이 A양과 나눈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다. 2022.10.31/뉴스1 ⓒ News1 이승현 기자

2남1녀 중 막내로 부모에게 딸보다 더 살가웠던 아들 장모씨(26)는 광주 서구 한 장례식장에 안치됐다.

유족들은 장씨를 서슴없이 엄마에게 볼 뽀뽀를 하던 막내 아들로 기억했다.

대학교 입학 대신 전기설비 관련 일을 하던 장씨는 군대에서 전역한 뒤 광주 한 대학교 자동차 관련 학과에 진학했다. 사업가라는 꿈을 뒤늦게라도 찾기 위해서였다.

올해 졸업 예정이던 장씨는 취업에 성공한 둘째 누나와 함께 코로나19로 가지 못했던 가족 해외여행을 계획하던 터였다.

고인의 아버지(61)는 "먼저 취직한 막내가 첫째 큰형, 둘째 누나의 여행경비 500만원도 대신 부담했다"며 "이태원 가기 전 막내랑 맥주 한잔하기로 했는데 그 약속을 못 지키게 됐다"고 울먹였다.

미용사가 되겠다며 상경, 꿈을 이루고 명절이면 아버지의 허연 머리카락을 손수 염색해 주던 박모양(19·여)도 가족의 곁을 떠났다.

전남 장성의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서 유족들은 박씨가 살갑고 애교가 많은 막내였다며 오열했다.

박양은 가족들과 하루에도 수십차례 전화와 메시지를 주고 받는가 하면 아버지가 시간이 늦었다며 전화를 끊으려는 낌새가 보이면 응석을 부려 통화를 더 이어갔다.

장성에서 아버지가 직접 따서 보내준 감을 칼질이 서툴지만 깎아 먹었다는 인증샷과 더불어 메시지에는 항상 셀카가 빠지지 않았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가족들과 돈독하고 특히 아버지와 친구처럼 지내기로 유명했다.

박양은 지난 29일 오후 아버지에게 미용실 직원들과 이태원에 놀러간다는 전화를 남겼다. 전날엔 교복을 입고 갈 거라며 사진을 보냈고, 당일 이태원에서 직장 동료들과 찍은 스티커 사진도 보냈다.

박양의 아버지는 "딸을 봤는데 뼈가 부러지거나 타박상도 없었다. 얼마나 예쁘고 싹싹한 우리 막내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느냐"며 눈물을 참아냈다.

31일 정오 기준 이태원 참사 사망자는 총 154명(남성 56명, 여성 98명), 부상자는 149명(중상 33명·경상 116명)이다.

앞서 지난 29일 오후 10시15분쯤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173-7 해밀턴 호텔 인근에서 핼러윈을 앞두고 밀집한 인파가 넘어지면서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이번 대규모 참사는 3년 만에 첫 '야외 노마스크' 핼러윈을 맞아 인파가 몰리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stare@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