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상황에서 핵무기 사용”…미국 핵태세검토보고서가 시사하는 것
■ 미국 국방부 "사상 처음 통합적인 방식으로 모든 주요 전략 검토"
미국 국방부가 지난 27일(현지시각) 핵태세검토보고서(NPR·Nuclear Posture Review)를 공개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는 처음입니다.
NPR은 안보위기를 상정해 핵무기 사용 범위와 조건 등을 명시한 문서로 볼 수 있는데, 재임에 성공하는 정부에서는 건너뛰기도 하지만 통상 4년 주기로 갱신됩니다. 그러니까 이번 보고서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2018년 이후 변화된 안보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초 올해 2월이나 3월쯤 발간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국제정세 변화로 초안이 대폭 수정되면서 공개가 늦어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은 NPR과 더불어 국방전략보고서(NDS), 미사일방어검토보고서(MDR)도 함께 공개함으로써 핵 대응을 포함한 미국 국방전략의 큰 틀이 모두 드러났습니다. 이 세 가지 문건이 하나같이 의미심장한 문건들인데 이렇게 한꺼번에 공개된 것도 처음이라 하겠습니다. 미국 국방부가 홈페이지에 "사상 처음으로 모든 주요 전략 검토를 통합적으로 했다"고 밝힐 정도였으니까요.
■ 중국, NPR 비난…"중국 맞춤형 전략"
미국은 이에 앞서 지난 12일 중국을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려는 '의도와 역량을 갖춘 유일한 국가'로 규정한 국가안보전략(NSS)을 발표한 적이 있었죠. NSS가 국가안보전략의 방향성, 목표와 지향점을 서술한 것이라면 이번에 발표된 문건들은 그 실행방안을 구체화하는 세부적인 문건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일까요? 80여 쪽에 달하는 통합보고서에서도 "미국 안보에 있어 가장 심각한 도전은 인도 태평양 지역과 국제적 시스템을 자국의 이익과 전체주의 지향에 맞게 재구성하려는 중국의 강압적이고 공격적인 노력"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중국이 오는 2030년까지 적어도 핵탄두 1,000기를 보유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도 언급했습니다.
그러자 중국은 이를 강력히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지난 28일에는 왕원빈 외교부 대변인이 "미국은 세계 최대 핵무기 보유국으로, 절대적인 군사적 우위를 도모하려는 패권 논리를 반영하고 핵 군비 경쟁을 자극할 것"이라고 비난한 데 이어, 어제(30일)는 리쑹 군축 담당 대사가 "중국의 정상적인 핵 역량 현대화에 대해 함부로 추측하고 미국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겨냥한 맞춤형 핵 억지 전략을 만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 NPR, '선제 불사용' 보다는 '핵 위협 대응'에 방점
이렇게 중국의 위협이 강조된 내용을 중심으로 국방전략보고서(NDS)가 통합돼 80여 쪽으로 작성되면서 NPR은 25쪽 정도로 분량이 줄었습니다. 그런데 NPR이 공개되기 전부터 관심을 모았던 것이 있었는데요, 바로 이번에는 과연 '핵 선제 불사용 (No First Use)'과 같은 과거 민주당의 전통적인 핵 정책 지향점에 부응하는 내용이 문서에 담길 것인가 여부였습니다. '핵 선제 불사용'이란 용어와 개념은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요약하자면 '상대방이 먼저 핵무기를 하용하지 않는 한 핵으로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2010년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 때도 NPR에 넣는 것을 고려하다가 외교안보 파트의 강력한 반대로 포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핵 선제 불사용'을 천명할 경우 적대적 상대방이 미국의 핵 억제 의지가 약해진 것으로 보고 공세를 강화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죠. 또 동맹국들이 미국의 핵우산이 과연 핵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자국을 지켜줄 것인지 우려할 가능성이 있다는 논리도 크게 작용을 했습니다.
그런데 바이든 행정부도 출범 초기에 핵 확산 방지와 함께 핵 위협을 줄여나가겠다는 입장이었던 만큼 '핵 선제 불사용(No First Use)'과 같은 방침들이 천명될 것인지, 아니면 점증하는 핵 위협에 대한 대응에 더 집중할지, NPR 공개를 앞두고 관심이 쏠렸던 것이죠.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당 오바마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냈고, 그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핵 군축과 군비통제를 우선시하면서 '핵 없는 세상(Nuclear Free World)를 추구하기도 했었죠.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번 NPR에도 '핵 선제 불사용' 용어는 물론 이를 시사하는 어떤 의미 있는 용어도 담기지 않았습니다. 또 '적대적인 국가의 핵 공격 억지나 반격을 위해서만 핵을 사용한다'는 의미의 이른바 '단일 목적(Sole Purpose)'이라는 표현도 없었습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시사했던 이 같은 내용 들이 담기지 않았던 것이죠.
대신 트럼프 행정부 당시인 2018년도 NPR과 마찬가지로 '극단적 상황(extreme circumstances)'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했습니다. 즉 "미국은 오직 미국과 동맹국, 그리고 파트너들의 사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한 '극단적인 상황'에서 핵무기 사용을 고려한다"는 내용입니다.
■ "북한의 핵 공격은 정권 종말로 귀결"…북 도발은 한·미·일 관계 강화"
이와 함께 2018년 NPR에도 담겼던 "북한의 핵 공격은 정권 종말로 귀결될 것"이란 문구도 2022년 NPR에 담겼습니다. 2018년 NPR에 이 같은 표현이 담긴 것은 전해인 2017년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됐을 당시의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평가됐는데, 이번 보고서에서도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미국 국방부는 "북한이 절대로 핵을 사용해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국방부는 또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이 한·미·일 세 나라의 관계를 더욱 강화시킬 것이라는 입장도 밝혔습니다. 사브리나 싱 미국 국방부 부대변인은 28일(현지시각) 브리핑에서 "북한의 계속된 행동은 역내 상황을 더 불안정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한국과 일본, 미국의 관계를 더욱 확실하게 만들고 강화한다"고 말했습니다.
■ 냉전 시대 '공포의 균형'으로 회귀?…핵 경쟁 가열될 수도
이렇게 볼 때 미국의 2022년 NPR은 핵위기가 4년 전에 비해 크게 높아졌으며 이로 인한 안보환경도 크게 변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 초기 핵 정책 비전과 지향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을 포함해서 말이죠. 북한의 7차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분석 등 최근의 한반도 상황을 고려해 볼 때, 핵무기 감축과 '핵무기 없는 세상'은 요원해지고 냉전 시대 '공포의 균형'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상대방이 핵무기를 사용해 나를 공격하지 못하게 이에 상응하는 핵무기를 만들어서 결과적으로 핵 경쟁이 가열되는' 상황, 즉 과거 냉전 시대와 같은 핵 경쟁이 일어나는 것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전혀 바람직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냉전 시대의 상호확증파괴(MAD·Mutually Assured Destruction) 전략이 여전히 '공포의 균형'을 통해 핵 전쟁을 억제하는데 유효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면 인류에게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특히 미·중간의 패권 경쟁,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핵 위협은 물론 한반도의 엄중한 상황 모두 신경 써야 하는 상황에서 북한의 핵이 던지는 시사점이 예사롭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픽 권세라 신혜지
금철영 기자 (cyku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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