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공화국 개헌, 이번에는 할 수 있을까?

정용인 기자 2022. 10. 31.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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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임기 줄여 4년 중임제로’ 등 아이디어 속속
김진표 국회의장 “내년 본격 논의 시작” 화두 던져

10월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변호사회관 내 조영래홀에서 열린 2024 정치개혁공동행동 발족 기자회견에서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치개혁공동행동은 국회와 양 정당 중심의 정치개혁을 시민 중심으로 복원하기 위해 출범했으며 2024년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를 목표로 활동할 계획이다. / 연합

[주간경향] “현재까지는 아이디어 제시 수준이고요.” 10월 19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 소장의 말이다. 하 소장은 현재 낮은 지지율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카드가 없지 않다고 했다.

“간단히 말한다면 ‘명퇴개헌’입니다. 여러 조사에서 국민이 선호하는 권력구조 개편안으로 합의되고 있는 ‘4년 중임제 개헌’을 자신의 임기를 1년 단축하는 조건으로 승부수를 던지는 거죠.” 그렇게 되면 5년 단임제 대통령과 4년 주기로 치러지는 국회의원선거의 시기상 불균형이 해소된다는 주장이다.

즉 윤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1년을 ‘희생’하는 대신 개헌에 성공하면 2024년 총선-2026년 대선-2028년 총선과 같이 앞으로 2년 주기로 큰 선거를 치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선거의 불균형과 쏠림 현상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당선된 대통령이 2년 동안 국정운영에 성공한다면 설령 여소야대의 조건에서 당선된 대통령이라도, 다시 2년 후 총선이라는 ‘중간평가’를 통해 국정운영의 동력을 추가로 얻을 수 있고 중임제이므로 두 번째 대통령 도전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만약 대통령의 국정운영 능력이 형편없다면? 역시 2년 뒤 총선에서 패배하고 2년 뒤 대선에서는 집권당 후보경선에서 배제될 것이다. 요컨대 윤 대통령이 개헌에 자신의 임기 1년을 걸면 ‘원포인트 개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 승부수 될 ‘명퇴개헌’

1987년 소위 6공화국 헌법이 만들어진 이래 ‘원포인트 개헌론’은 과거에도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말이었던 2007년 1월 9일 대국민 특별담화문을 통해 원포인트 개헌안을 제시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5년 단임제가 역사적 소임을 다했으니 오래전부터 공론화돼온 ‘4년 연임제’로 개헌이 필요한데, 4년인 국회의원 임기와 5년인 대통령 임기의 불일치 때문에 현실적으로 다음 정부에서 개헌은 어렵다고 주장했다. 2008년부터 시작하는 차기 대통령의 임기는 2013년 3월에 임기가 만료되는데 국회의원 임기는 2012년 5월에 만료되기 때문에 단임 대통령의 임기를 1년 가까이 줄이지 않으면 개헌이 불가능한 구조가 돼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임기를 줄이는 것을 수용하기 어려우므로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며 헌법상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특별히 줄이지 않고 개헌할 수 있는 기회는 20년 만에 한 번밖에 없는데, 이번을 넘기면 다시 20년을 기다려야 하므로 원포인트 개헌을 하자는 제안이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대답 없는 외침이었다. 만약 그때 개헌했다면 노태우 대통령 집권 시기부터 시작한 6공화국의 역사는 2008년에 마무리됐을 것이다. 6공화국 대통령들은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탄생했다.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그리고 윤석열까지. 윤 대통령은 6공화국 체제의 8번째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을 이을 다음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새로 출범하는 7공화국 체제를 여는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난망해보인다.

문재인 정부 시기 ‘내 삶을 바꾸는 개헌’을 모토로 ‘국민헌법’이라는 이름의 개헌을 추진했다. 2018년 2월에는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가 발족해 개헌안을 만들어 국회로 넘겼지만, 최종적으로 개헌은 불발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나름의 ‘원포인트 방안’을 내놓았다. 2018년 지방선거 때 개헌국민투표를 같이 실시해 2020년 총선-2022년 대선·지방 동시선거-2024년 총선의 정치스케줄 조정으로 ‘대선과 지방선거를 동시에 치르고, 국회의원 선거는 중간평가로 하자’는 안이었다. 이 역시 결국 불발에 그쳤다. 올해 3월 대선을 치렀고, 3개월 뒤인 6월 지방선거를 치렀다.

“개헌까지는… 아직은 논의대상이 아니다.” 10월 27일 통화한 김찬휘 ‘2024정치개혁공동행동’ 공동대표의 말이다. 2024정치개혁공동행동은 민주노총·참여연대 등 690개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2024년 22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개혁과 선거제도개혁을 이루기 위해 만든 조직체다. ▲정당설립 완화와 지역정당 허용 ▲대통령·지자체 단체장 결선투표제 도입 ▲교원·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 보장 등 10개항의 선거제도개혁과제를 제시했지만, 아직 개헌까지 이야기할 만큼 논의가 숙성되지는 못했다는 진단이다.

“라디오에 출연해 33%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 60%를 가져가는 현행 연동형 비례제도의 개선을 주장했더니 당장 ‘정의당 좋은 일 시켜주려고?’와 같은 댓글이 쏟아졌다. 당연 특정정당에 유리하게 할 목적으로 만든 연대체가 아니다.”

합의 후 불발된 ‘복합선거구제’

“개인적인 견해를 말한다면 4년 중임제에 반대한다.” 최광웅 데이터정경연구원 원장의 말이다.

“우리나라 대통령제는 미국이나 프랑스보다 권력이 훨씬 센 대통령제다. 4년 중임제는 결국 대통령 임기만 8년으로 연장하는 제도다. 개인적으로는 현행 5년 단임제가 맞고 대신 대통령 권한을 약화시키고 국무총리 권한을 강화해 국회에서 총리를 선출하는 제도가 맞다고 생각한다.”

‘선거제도개혁을 위한 준비모임’이라는 선거제도개편·개헌 연구모임을 몇년 전부터 운영해온 최 원장은 “선거구제와 개헌은 한묶음으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개헌과 7공화국은 더 극적으로 실현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2000년 총선을 앞두고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야당 측의 이회창 총재가 합의한 선거구제가 있다. 대도시·구 단위는 2~4인의 중선거구제로 치르되, 농촌지역에서는 현행 소선거구제 방식으로 치르자는 복합선거구제 합의였다.” 이럴 경우 도시지역에서는 1위부터 최대 4위까지 후보가 당선될 수 있다. 각각 호남과 영남권이 불모지인 국민의힘과 민주당도 상대지역 텃밭에서 당선인을 낼 수 있고, 소수정당의 원내진출도 지금보다는 수월해진다.

“…잠정합의된 상태였는데 최종적으로 당시 공동여당이었던 자민련의 김종필 총재가 막판에 틀어서 결국 좌절됐다. 그때 선거구제를 개편했다면 대한민국 정치발전에서 획을 긋는 사건이었을 텐데 여러모로 아쉽다.” 최 소장의 말이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교수는 “개헌을 이루려면 여야 합의가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주도권을 야당에 줘야 하는 측면이 있다”라며 “현재 여당 내 자기세력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윤석열 정부로선 꺼내기 쉽지 않은 어젠다”라고 말했다.

최 소장이 참여하는 연구모임 이외에도 7공화국 체제를 고민하는 모임은 여럿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거쳐 기득권화된 양당체제로 귀결된 1987년의 6공화국 체제를 과학화를 통해 극복하자’는 모토를 내걸고 재야정치인 함운경·양선묵씨 등이 주도하는 칠공주(제7공화국 주도) 정책포럼은 10월 29일 군산에서 창립 공공정책 토론·제안 발표회를 열었다.

앞서 개헌 화두는 김진표 국회의장이 던졌다. 김 의장은 지난 10월 16일 국회방송 등과 인터뷰에서 “연말까지 개헌을 위한 준비를 마치고 내년부터 본격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두수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는 “여야가 극한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현 정치상황은 분명 7공화국 체제 창출이라는 시대적 과제와 멀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럼에도 역설적으로 정치권뿐만 아니라 국민으로부터도 이 체제에서는 협치가 제도적으로 불가능하게 돼 있다는 것을 깨달아 정치제도 개혁을 압박하는 흐름으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년은 총선을 앞둔 1년이자 선거가 없는 1년이기 때문에 거꾸로 논의의 호기일 수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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