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곳서 발생한 이태원 참사..."몰린 인파, 유체처럼 움직였을 것"
지난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핼러윈 축제를 즐기기 위해 방문한 사람들이 좁은 골목길에 몰리면서 31일 기준 사망자 154명, 부상자 132명이 발생하는 대형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이태원에는 1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움직이는 사람들의 행동패턴을 예측하는 일은 쉽지 않다. 마치 유체역학처럼 분석할 수도 있지만 사람은 액체와 달리 개인의 의사에 따라 움직임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무리를 이뤄 움직이기도, 가끔 뭔가를 잃어버려 방향을 틀기도 한다.
군중이 일정수준 이상 밀집돼 개인의 움직임이 제한되면 한 명이 쓰러졌을 때 전체의 압력이 높아지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일정 밀도를 넘어서면 마치 유체와 같은 움직임을 보인다.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성지순례 압사사고 참사 이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에드윈 갈레아 영국 그리니치대 공학 및 과학과 교수(화재안전공학그룹 리더)는 사우디아라비아 성지순례 압사사고가 발생했던 2015년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해 분석한 결과 사람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기준이 단위면적(1m2)당 4명 미만일 때까지"라고 말했다.
만약 단위면적당 인구가 4명을 넘어서면 점차 개인의 움직임에 제약이 생기며 '볼 베어링'이 돌아가듯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지역에서는 이슬람 성지순례(하지) 행사 도중 압사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성지순례 과정 중 하나인 돌기둥을 돌며 돌을 던지는 의식을 하던 중 이슬람 신자 수십만 명이 한꺼번에 몰리며 2400명 이상이 질식하거나 짓눌려 사망했다.
갈레아 교수는 군중 밀도가 단위면적당 6명을 넘어서면 '점진적 군중붕괴(progressive crowd collapse)'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 사람이 넘어졌을 때 발생하는 충격파로 주변이 모두 함께 미끄러지는 현상을 말한다. 사람들이 도미노처럼 넘어지면 군중 속 압력이 전체적으로 증가한다.
이런 현상은 많은 군중이 제한된 경로를 통해 이동할 때 발생한다. 이태원역 부근 좁은 골목길에 인파가 한꺼번에 몰렸던 이태원 참사가 여기 해당된다. 갈레아 교수는 "만약 군중이 밀집돼 유체처럼 움직이는 상황이 온다면 이미 위험에 처한 것"이라고 말했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몰리면 아무리 개인이 침착하게 행동해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의미다.
2003년 미국 로드아일랜드에서 발생했던 나이트클럽 화재사고 사례도 대표적이다. 당시 화재를 감지한 사람들이 비상구 표시나 주변 창문을 찾지 않고 좁은 통로에 몰렸는데 이는 다른 이들의 통로를 막아 3분 만에 1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인파가 몰리며 호흡을 하기 힘들 정도로 압력이 높아지면 심정지로 이어지게 된다. 심정지의 경우 환자가 후유증 없이 회복할 수 있는 치료 골든타임은 4분에 불과하다. 이태원 참사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대원들이 2분 안에 출동했지만 몰린 인파로 피해자에게 신속히 접근하기 어려워 제때 응급조치를 취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골든타임이 짧은 압사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상황 발생 자체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대표적으로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인구밀도를 측정하는 방법이 있다. 박재성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폐쇄회로(CC)TV를 통해 군중 혼잡도를 판단하는 등 위험 상황을 인지하는 기술은 등은 이미 개발돼 있다"면서 "장비 설치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관리·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규모 행사장 관리는 기술에만 의존할 수는 없고 결국은 사람이 함께 통제해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영애 기자 ya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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