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내는 ‘서해 피살 공무원’ 수사...신구 권력 갈등 최고조
국감에서 난타전…文 외교·안보라인 반박
(시사저널=김현지 기자)
서해 피살 공무원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문재인 정부 고위 공직자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건 당시 서욱 국방부 장관과 김홍희 해양경찰청장을 전격 구속했다. 이들은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의 '자진 월북'에 중점을 둔 수사 결과를 발표했었다. 검찰 수사는 문재인 정부의 조직적 사건 은폐 의혹을 제기한 감사원 발표 이후 급물살을 탔다. 이제 국방부·해경 수장을 넘어 국가정보원과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주목받고 있다. 결국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칼끝이 향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문재인 외교·안보라인 고위급 인사들은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를 비판했다. 서해 피살 공무원 사건을 계기로 신구 권력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文 '시신 소각 발표 단정적' 말하자 국방부 입장 바꿨다"
쟁점은 문재인 정부의 월북 판단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문 정부 인사들이 사건을 은폐·조작하려고 시도했는지도 수사 대상이다. 문 정부 고위급 인사들은 자신들의 직권을 남용해 실무진에 자료 삭제 등을 지시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받고 있다. 이는 문 정부 시절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법행정권 남용 등 혐의로 박근혜 정부 인사들이 구속 기소된 전례와 판박이다.
서욱 전 국방부 장관도 구속을 피해 가지 못했다. 서울중앙지법 김상우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0월22일 새벽 서욱 전 국방부 장관과 김홍희 전 해경청장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들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갈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서 전 장관은 이씨 사망 경위와 관련한 감청 정보 등이 담긴 군사기밀을 군사통합정보처리체계(MIMS·밈스)에서 삭제할 것을 지시하고 국방부 종합분석보고서에 자진 월북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을 담도록 지시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등)를 받고 있다. 김 전 청장은 표류 예측 실험·분석 결과 왜곡 등으로 이씨의 자진 월북 수사 결과를 발표하도록 지시한 혐의(직권남용등)를 받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서해 피살 사건에 대해 빠르게 움직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유족과 만나 사건 실체 규명을 약속했다. 윤 정부가 들어선 직후인 6월16일 국방부와 해경은 "월북을 인정할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며 2년여 전 발표를 뒤집었다. 감사원은 기다렸다는 듯 국방부, 해경 등 9개 기관을 대상으로 감사를 실시했다. 감사원의 감사 착수(6월17일) 및 결과 발표(10월13일)와 맞물려 검찰은 서 전 장관 등에 대한 소환조사를 진행했다. 윤 정부의 발표 이후 4개월여 만에 문 정부 고위급 인사들이 줄지어 구속됐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 이희동)는 구속 이틀 만에 서 전 장관 등을 불러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칼끝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감사원은 10월13일 문 정부의 사건 은폐·조작 의혹이 담긴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씨가 사망한 다음 날인 2020년 9월23일 새벽 서욱 전 국방부 장관 지시에 따라 밈스에 탑재된 군 첩보 관련 보고서 60건이 삭제됐다는 내용이다. 같은 날 새벽 국정원에서도 첩보보고서 등 총 46건의 자료가 무단 삭제됐다. 이에 감사원은 국가안보실 3명, 국정원 1명 등 모두 20명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수사해 달라고 검찰에 요청했다.
다만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요청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 전 대통령은 2020년 9월27일 관계장관회의에서 국방부에 이씨 시신 소각을 재분석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감사 결과 드러났다. 문 전 대통령이 당시 "9월24일 국방부가 시신 소각과 관련해 발표한 내용이 너무 단정적이었다"고 언급했다는 것이다. 이후 국방부는 2020년 10월7일 국정감사 등에서 시신 소각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방향으로 입장을 바꿨다. 안보실 등에 대한 수사 끝에는 결국 국정운영 최종 결정권자인 문 전 대통령이 남는다.
文 외교·안보라인 반박 기자회견 "월북몰이" vs "정치보복"
윤 정부 첫 국정감사에서도 여야는 이 문제로 매번 부딪쳤다. 국민의힘은 전 정부의 '월북몰이'를 비판했고, 민주당은 '원본이 남아있는 만큼 자료가 삭제된 것은 아니다'고 맞섰다. 장외전도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라인은 이례적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 박지원 전 국정원장, 서훈 전 청와대 안보실장 등은 10월27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현 정부는 실체적 진실을 외면한 채 관련 사실들을 자의적·선택적으로 짜맞추면서 사건을 왜곡·재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SI 첩보 자료를 삭제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국방부와 해경이 안보실 지침에 따라 월북으로 판단했다'는 의혹도 부인했다. 서훈 전 실장은 이와 관련해 "그러한 지시나 협의가 없었고, 자료 삭제 논의 자체가 없었다"고 했다. 이들은 문 정부 당시 판단이 합당하다고 강조했다.
유족 측은 격앙했다. 고(故) 이대준씨 친형 이래진씨는 10월21일 서욱 전 장관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당시 서 전 장관에게 공개 항의했다. 10월27일 외교·안보라인의 기자회견 직후에는 통화에서 "지난 3년 동안 진실 규명 요구를 해왔는데, 서욱 전 장관 등이 구속되자 이제야 국회에서 말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앞서 유족 측은 10월26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를 찾아 이씨가 착용한 것으로 알려진 한자가 적힌 구명조끼와 중국 어선 등을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감사원은 이씨가 실종돼 표류했을 가능성의 증거로 '구명조끼'를 언급했다. 이는 문 정부 조사 당시 알려지지 않은 증거다.
문 전 대통령은 서면조사 요구에 불쾌감을 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0월3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9월 감사원의 서면조사 관련 보고를 문 전 대통령에게 전했다고 했다. 이때 문 전 대통령은 "대단히 무례하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10월2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조사받을 일 있으면 다 같이 조사받고, 처벌받을 일 있으면 다 같이 처벌받아야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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