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정책, 외교·안보 정책과 상충하지 않도록 해야

강영진 2022. 10. 3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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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독일 한스자이델 재단 한국 사무소장 기고문에서 강조
"대담한 계획, 대담하지 않고 계획이랄 수 없어도 현실적"

[서울=뉴시스] 홍효식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2022.08.15. yes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베른하르트 젤리거 한스 자이델 재단 한국사무소장이 28일(현지시간) 한반도 현 상황을 분석하는 글을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38 노스(38 NORTH)에 기고했다. 정부의 대북정책이 통일정책과 안보, 외교정책 사이에 충돌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내용이다.

한반도 안보 상황이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이래 최악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외교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담한 계획"을 발표했지만 북한이 입장을 바꾸려는 조짐은 전혀 없다. 현재와 같은 대치 상황은 한국의 통일 목표가 안보 및 외교 정책과 상충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한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이 흥미롭다. 외부 관찰자들은 한반도 분단 상황을 중시하지만 한국인들은 그렇지 않다. 북한의 핵위협에도 한국인들의 일상 생활은 크게 영향받지 않는다. 또 선거에서도 중요한 이슈가 되지 못한다. 남북관계 개선을 공약으로 걸었다가 크게 실패한 정동영 전 우리당 대섢후보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가장 최근의 대선에서도 부동산값 급등, 청년층 경제 지원책, 후보와 부인의 결격 사유 등이 통일 정책보다 더 중요했다.

윤석열 대통령 캠프가 올해 대선에서 통일 정책에 침묵한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윤 후보는 전 정부의 통일 정책을 비판했으나 구체적인 통일 정책을 제시한 적이 없다. 북한이 극초음속 미사일 실험을 하자 윤대통령이 "선제 타격"을 언급했고 북한이 지난 달 핵선제공격을 위협했다.

윤석열 대통령 정부의 통일 정책은 권영세 통일부 장관 청문회부터 윤곽을 갖추기 시작했다. 권 장관은 모든 사람의 예상을 깨고 새로운 독트린을 발표하는 대신 통일은 장기적 인내가 필요한 게임으로 양당의 지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전임 정부 정책을 기반으로 통일 정책을 펴겠다고 강조한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권장관이 북한 매체 열람 전면 허용을 선언한 일이다. 이 조치는 외부의 관찰자들이 오래도록 기대해왔던 일이다.

북한이 40발 이상의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는 와중에도 윤대통령은 "대담한 계획"이라는 대북 정책을 발표했다. 5월10일 취임사에서 처음 언급했으나 광복절 연설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대담한 계획은 대규모 식량, 전력, 의료 지원과 국제 투자 유도를 강조한다. 북한이 핵개발을 중단하고 비핵화를 상당히 진전하는 것이 전제 조건으로 돼 있다. 그러나 완전한 비핵화는 요구하지 않으며 최종 목표로 제시되고 있다.

대담한 계획에 대해 국내에서는 회의적 반응이, 북한으로부터는 적대적 반응이 나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핵개방 300' 정책을 닮았다는 비판이 많았다. 이 전대통령 정책이 전혀 실천되지 않은 것처럼 대담한 계획도 북한이 경제 발전보다 체제 안보를 중시하는 한 같은 운명에 처할 수 있다.

북한은 경제 발전을 위해 개방할 경우 직면할 체제 위협을 더 두려워한다. 북한이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윤대통령의 광복절 연설이 있은 지 3일만에 김여정이 "대담한 계획"이 "역도 이명박"을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옥수수 빵조각에 운명을 걸 사람은 없다고 했다.

지난달 초 김정은이 핵독트린과 관련 법을 개정해 선재 핵공격 위협을 한 것이 "대담한 계획"에 대한 최종적 대응일 수 있다. "한국과는 어떤 핵협상도 없다. 전면 중단한다"고 한 것이다.

그렇다고 "대담한 계획"이 완전히 죽었다고 보긴 어렵다. 사실 대담한 계획은 분명한 계획이라기보다 애매한 약속이었고 그 약속조차 대담하게 강조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1조원이 넘는 통일기금을 지난 20년 이상 보유해왔지만 행사 비용 이외에 쓰인 적이 거의 없다.

대담한 계획은 북한의 핵포기를 기대한다기보다는 오히려 북한이 어떤 것도 포기할 것 같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담한 계획은 현실성을 가졌다기보다 북한 주민들에게 환상을 심어주기 위한 애매한 정책에 가깝다. 1인당 소득이 2000달러든 4000달러든 북한에 대대적 투자를 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북한 정권이 안정적인한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한국 정부가 하는 일 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등 국제협력 강화를 모색하고 있다. 통일부가 이를 주도하지만 외교부와 국방부가 큰 역할을 담당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 시절 한미간에 대북정책을 두고 이견이 있었더라도 동맹이 약화된 적은 없었다. 문대통령이 안보 문제와 관련해 미국 입장을 지지한 것이 평화정책이 실패한 이유이기도 했다. 윤정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확고한 지지로 가치 기반에 입각한 안보 협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 때문에 남북한이 적어도 당분간은 대화를 재개할 것 같지 않지만 재개된다면 북한은 한국을 보다 신뢰할 만한 협상 상대로 삼을 수 있다.

남북간에는 미미하지만 미개척 분야가 남아 있다. 지난달초 통일부가 주최한 평화국제포럼의 한 분과가 "그린 데탕트-환경, 지역 개발, 생물 다양성, 기후 변화에서 남북 및 국제 협력"였다. 이 분야에선 남북이 모두 참여하는 실질적인 국제협력이 가능하다. 남북 공동 사업과는 다르지만 이 역시 남북간 신뢰구축과 협력증진에 기여할 수 있다.

나아가 한국 정부는 3자 또는 다자간 간접적 협력에 적극적인 것처럼 보인다. 한국이 산림, 수자원 등에 대대적으로 투자해온 이유다. 아직은 성과가 크지 않지만 앞으로 기대해볼 만하다.

과거 남북관계에서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처럼 북한의 "우리 민족끼리"를 너무 쉽게 받아들인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통일 정책은 안보 및 외교정책과 유리돼 상호 정보 교환조차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서로 상충되기 일쑤였다. 통일 정책은 북한에 유화적이고 외교안보정책은 미국에 유화적인 식으로 말이다.

남북간 민간 접촉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의 통일전선 전략이 한국의 안보와 외교 우선순위와 충돌하는 일이 많았다. 통일정책이 남북한 사이만의 정책이 아니며 국제적 차원이 통일정책과 안보정책의 분리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북한과 민간 접촉 확대, 일관된 정책 표명과 발언이 중요하다. 북한 매체 접근 허용이 첫 단계이며 보다 대범한 정책이 필요하다.

한국 정부와 정치인들은 여러차례 북한에 협력을 강화하자고 간절히 호소한 적이 많았지만 북한의 냉대를 받아왔다. 따라서 현재로선 새로운 제안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일 수도 있다. 윤대통령의 대담한 계획이 대담하지도, 계획도 아니지만 현재 한반도에 필요한 만큼 만의 요구를 담고 있다. 진정한 대범한 계획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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