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발 일진광풍! 리그 판도 바꾼다
‘아시아 쿼터’ 제도를 통해 KBL무대로 들어온 필리핀 선수들의 시즌초 돌풍이 심상치않다. 벌써부터 일부팀의 상승세를 이끌며 대박조짐이 보이고 있다. 팀 순위에 끼치는 영향력이 상당한지라 필리핀 선수들을 영입하지 않은 팀이 실수했다고 느껴질만큼 전력 변화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야말로 ‘신풍(新風)’ 혹은 ‘일진광풍(一陣狂風)’을 연상케하고 있다.
지난 시즌까지만해도 아시아 쿼터는 일본 선수만 대상이었던지라 크게 관심을 끌지못했다. 참여 숫자도 적었고 효과도 미비했던지라 유명무실한 제도라는 혹평도 적지않았다. 하지만 이번시즌을 앞두고 필리핀으로 확대되면서 원주 DB, 서울 삼성, 창원 LG, 안양 KGC인삼공사, 대구 한국가스공사, 울산 현대모비스 등 무려 6개팀이 필리핀 선수를 영입했다.
삼성과 LG는 포워드를 나머지 4개팀은 가드를 데려왔으며 아시아쿼터에 참여한 팀중 캐롯 점퍼스만이 필리핀이 아닌 일본 선수 모리구치 히사시(23‧180cm)를 영입했다. 당초 필리핀 선수들이 영입된다고 할때부터 팬들 사이에서는 관심이 높았다. 특히 국제대회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을 긴장시켰던 가드 포지션에 대한 궁금증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팀플레이에 특화된 한국과 달리 필리핀 가드들은 운동능력, 개인기 등에서 돋보이는 플레이를 펼친다. 테로니오 알프레드, 짐 알라팍, 찬 제프리엘 알렌, 제이슨 카스트로 윌리엄, 테렌스 로메오 등이 대표적이다. 체격조건은 아시아권에서도 작은 편이나 하나같이 돌파와 3점슛 등에 강점을 보이며 공격적인 플레이를 통해 게임을 풀어나가는지라 국제무대에서 만나게되면 꽤나 부담스럽고 까다로운 상대들이었다.
KBL에 입성한 필리핀 선수중 가장 좋은 스타트를 끊고있는 선수로는 단연 현대모비스 론 제이 아바리엔토스(23‧178cm)와 DB 이선 알바노(26‧185cm)를 들 수 있다. 31일 현재 아바리엔토스는 득점 10위(15.83점), 어시스트 3위(6개), 스틸 3위(1.83개)로 전방위 활약을 과시중이다. 알바노 또한 득점 12위(15점), 어시스트 2위(6.50)로 아바리엔토스와 함께 필리핀 선수중 투탑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들의 소속팀 또한 공동 2위에 오르며 개인 성적 뿐만 아니라 팀 순위에 있어서도 치열한 라이벌 구도가 만들어지고있는 모습이다. 당초 현대모비스와 DB는 좋은 전력에 비해 성적이 나오지않아 고민이 많았지만 이들이 가장 앞선에서 활약해주며 팀의 에너지 레벨 자체가 달라졌다는 평가다.
현대모비스는 2개의 팀도 가능하다는 말이 나올만큼 두터운 선수층과 무서운 높이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선수 외 확실한 에이스의 부재가 아쉬웠다. 이를 아바리엔토스가 완벽하게 메워주며 강팀으로서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다. 아바리엔토스는 그간 팀을 우승으로 이끈 가드 강동희, 양동근과는 다른 타입이다.
강동희처럼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경기조율과 패싱게임으로 동료들을 업시켜주는 것도, 양동근처럼 공수양면에서 안정감넘치는 유형도 아니지만 무시무시한 공격력(득점+패스)을 앞세워 돌격대장으로서 팀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초창기 강동희 이후 양동근의 장기집권 속에서 1번 걱정이 없는 팀이었는데, 양동근 은퇴 이후 잠깐 생겼던 공백을 필리핀에서 날아온 아바리엔토스가 완벽하게 메워주고있는 모습이다.
대부분 필리핀 가드가 그렇듯 아바리엔토스 역시 공격형 1번쪽에 가깝다. 신명나게 코트를 종횡무진 휘젓고다니며 슛과 돌파로 존재감을 알린다. 신장은 작지만 워낙 부지런하고 빠른지라 조금의 틈만 있어도 상대 수비에 균열을 일으킨다. 눈앞에 림이 보이면 속공 상황에서도 과감하게 딥쓰리를 던지는가하면 원체 밸런스가 좋아 자세가 무너진 듯한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공격을 마무리하는 능력이 좋다.
난사기질을 지적받고 있지만 지난 KCC전에서 결승 역전 3점포를 작렬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무서운 클러치 능력을 자랑한다. 급하게 옆으로 이동하며 수비수를 달고 페이드웨이 슛을 던졌는데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않고 메이드시켰다. 잘 안들어간다면 문제가 될 수 있겠으나 승부처에서 더욱 집중력이 강해진다는 점에서 에이스 기질이 돋보인다.
그렇다고 아바리엔토스가 득점에만 특화된 단신 공격수는 아니다. 동료들 쪽에 찬스가 보이면 여지없이 날카로운 패스를 찔러준다. 시야가 넓어 정신없이 달리는 사이에서도 꽤나 안정적으로 패싱게임을 펼친다. 아이훼이크나 훼이크 스탭 등으로 금방이라도 공격을 할 듯 수비를 속이고 내외곽 빈곳 이곳저곳에 넣어주는 노룩패스가 일품이다. 속공, 지공을 가리지않고 판단이 섯다싶으면 망설이지않고 빠르게 패스가 들어가는 과감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알바노는 아바리엔토스와 비슷한 듯 다르다. 득점, 어시스트 등 현재 기록만 놓고보면 두 선수는 정말 비슷하다. 득점, 패스가 다 된다는 점에서는 궤를 함께 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경기를 보면 기본적인 플레이 스타일은 조금 다르다. 아바리엔토스가 득점력을 앞세워 그 안에서 패싱게임까지 창출해내는 유형이라면 알바노는 득점보다는 패싱게임 등을 먼저 염두에 두면서 플레이하는 스타일이다.
아바리엔토스는 플레이 자체가 화려하다. 그런만큼 잘될 때와 안될 때의 기복도 다소 있다. 반면 알바노는 화려한 맛은 덜하지만 안정적으로 게임을 풀어나간다. 아바리엔토스처럼 노룩패스를 남발(?)하기보다는 팀 패턴과 동료의 움직임을 살피며 안정적으로 공을 띄우고 바운드 패스를 넣어준다. 패스가 나갈 쪽으로 수비가 몰려있다 싶으면 무리해서 빈틈을 찌르기보다는 미드레인지 점퍼 등으로 직접 해결한다. 기본기에 충실한 교과서적인 포인트가드라고 할 수 있다.
현재로서는 아바리엔토스와 알바노가 가장 빛나고있지만 정규리그는 이제 시작됐을 뿐이다. 하나같이 20대 한창 나이이고 각팀에서 충분히 체크를 하고 영입한 선수들이니만큼 적응기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느 정도 제몫은 할 것으로 기대된다.
경미한 부상으로 인해 이제 슬슬 발동을 걸기 시작하는 KGC 렌즈 아반도(24‧188cm)는 필리핀 선수 중에서도 운동신경이 빼어난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컵 대회 당시 골밑에서 단 한 번의 스텝만으로 투 핸드 덩크슛을 꽂아넣으며 지켜보는 이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한국가스공사 샘조세프 벨란겔(22‧177cm) 또한 폭발적 외곽슛을 앞세워 경기가 거듭될수록 뜨거운 손끝을 자랑중이다. 시즌초 무섭게 불어닥치는 필리핀발 광풍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기대해보자.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박상혁 기자, 김경태 기자, 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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