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클럽 3곳 몰린 길 우회로 없어… T자형 골목서 엉켜 압사

김보름 기자 2022. 10. 3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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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오후 6시쯤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세계음식문화거리가 핼러윈 축제를 즐기는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SNS 화면캡처
지난 29일 오후 10시 10분쯤 사고가 발생하기 직전 해밀톤호텔 인근 골목에 인파가 빽빽하게 모여 있다. SNS 화면캡처
29일 오후 11시쯤 경찰과 소방요원들이 서울 용산구 해밀톤호텔 골목에서 깔려 있는 시민들을 구조하고 있다. 연합뉴스
30일 오전 1시쯤 시민들이 경찰, 소방요원과 함께 현장에서 구조한 심정지 환자들에게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참사 상황 재구성

폭 3.2m 비탈진 골목에 인파

별도의 우회 · 대피로 없는데

내려오고 올라오며 ‘샌드위치’

경사진 길에서 한 명 넘어지자

순식간에 5∼6겹 쌓이며 압사

일부는 상점 난간 붙잡고 생존

지난 29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발생한 해밀톤호텔과 맞닿은 비탈진 골목길의 폭은 3.2m에 불과했다. 성인 남성 5~6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폭이고, 남성 두 명만 가로방향으로 넘어져도 길이 막히는 좁디좁은 길이었다.

31일 상인들의 말을 종합하면, 사고 당일 수만 명의 인파가 이 골목에 한 번에 몰린 이유는 위쪽 폭 5m, 길이 100m에 이르는 세계음식문화거리에 ‘파운틴’ ‘프로스트’ ‘글램’ 등 이태원 3대 대형 클럽이 몰려 있었던 영향이 컸다. 각종 주점도 곳곳에 있었다.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내려 이곳에 가기 위해 참사가 난 골목을 지나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해당 골목을 평면도로 보면, T자 모양이다. 세계음식문화거리에서 이태원역 방향으로 내려오는 시민,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나와 해당 거리로 향하는 시민, 인파로 북적이는 이 골목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시민들이 한데 뒤엉켰다. 일종의 병목현상이 발생해 위아래가 꽉 막힌 채 순식간에 몇 사람이 넘어지자 비탈진 길에 5~6겹으로 사람들이 쌓이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길가에 놓인 불법 시설물도 골목 폭을 더 좁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사고 직후 해당 골목을 확인한 결과, 한 상점에서 내놓은 물건을 나르는 바구니가 3열로 쌓여있었다. 판촉물 입간판도 입구 양옆에 서 있는 등 통행하다 걸려 넘어질 장애물 요소가 곳곳에 있었다. 인근의 다른 골목에도 소주 박스 7~8개 등이 어른 키 높이로 쌓여있었다.

핼러윈 행사를 여는 상점들이 좁은 골목길에 붙어있는 구조이지만 길 구조상 우회로와 대피로는 별도로 없었다. 150m가량 위쪽의 세계음식문화거리에서 이태원역 삼거리 대로로 나올 수 있는 길은 사고가 난 곳을 포함해 2곳에 불과했다. 사고 발생 골목은 이태원역 1번 출구와 통한다. 게다가 이 길의 우측은 해밀톤호텔의 외벽이어서 사람들이 피할 틈이 없었다. 이미 사고 골목을 둘러싼 인접 골목 모두가 발 디딜 틈이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실제 SNS 등 사고 목격담에는 “위에서 아래로 도미노처럼 쓰러졌다”는 진술이 나온다. 당시 참사 현장에 있던 한 외국인은 “뒤에서부터 일시에 사람들이 쓰러졌다”며 “해밀톤호텔 인근 한 골목에 있는 술집에서 나오려는 사람과 들어가려는 사람이 겹치면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사실상 원하는 방향으로 걸을 수 없는 상태가 됐다고 전하고 있다. 실제 길은 오르막 경사가 있고 위로 올라갈수록 골목은 좁아지는 구조라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진 것으로 보인다.

30대 여성 C 씨는 29일 오후 10시쯤 인스타그램에 “집에 가고 싶다”며 해밀톤호텔 근처 골목 인파 속에 갇혀 있는 영상의 스토리를 게재했다. 이태원역 2번 출구와 통하는 해밀턴호텔 좌측 골목 역시 인파가 몰렸지만, 폭이 6m가량으로 사고 지점보다는 넓어 참사를 피했다.

빠져나갈 수 있는 모든 통로가 막힌 속수무책인 상황에서 사고 당시 상점 근처에 있던 생존자들은 난간을 붙잡고 버텼다. 일부 공간이 있는 상가는 사람들을 지하로 임시 대피시키기도 했다. 클럽·술집 관계자들은 가게 안으로 심정지된 사람들을 눕혀 심폐소생술(CPR)을 했다고 한다.

사고 발생 골목의 클럽 관계자는 “사고 당시 지하로 100여 명 넘게 대피시켰고, 5명은 이미 의식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29일 오후 10시쯤 저희라도 안 열면 더 큰 사고가 생기니까 가게 문을 열고 사람들을 들어오게 했다”며 “어린 아기를 안고 있는 사람도 있었는데, 사람 살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직원들이 나와서 (골목 인파를 클럽 안쪽으로) 당겼는데, 다 입장할 수가 없었다”며 “팔다리를 잡고 살려달라고 하는데 그게 생각나 마음이 아프더라”라며 울먹였다. 해당 클럽과 근처 술집 관계자들에 대해 “칭찬해 드려야 한다”는 내용의 목격담도 인터넷에 올라오기도 했다.

김보름·권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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